가라앉는 감정

by 매너티연



정확히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현재까지 기본적으로 갖춰진 감정이 있다.

즐겁고 화목할 땐 과하게 행복했던 가정이지만 그렇지 않을 땐 집안에 찬바람이 불었다.

들쑥날쑥한 가족 구성원의 기분 변화가 지겨워서

나는 그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디폴트 감정을 만들어야 했다.


그 감정은 ‘가라앉는 감정’이다.


대략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이 가라앉는 감정을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어야만 안정적으로 살 수 있었다.


이 가라앉는 감정은 나를 너무 높게 떠오르지 않게 했다.

너무 큰 실망에 절망하게 하지도 기대감이 풍선처럼 가득 부풀지 않도록 날 붙잡아 주었다.


자아 존중감이라는 걸 몰랐던 시기에는 때때로 이 감정 속에서 매몰되곤 했다.

매몰된 채로 얼굴만 내밀고 그 상태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냥 ‘사라지면 좋겠다’고 생각이 든다면 그땐 시간이 많이 지체된 것이다.


다행히 성인이 되어서 이 감정에서 매몰되지 않도록 적절히 조절하는 법을 터득했다.


행복한 일이 있어도, 금세 이 기분으로 돌아온다.

이 감정은 기대감을 낮춘다. 하지만 우울하지도 않다. 이 세상이 엿 먹일 때도 오랜 시간 분노하고 증오하지 않도록 한다.

그렇다고 자신감을 주지도 않고, 미래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을 주지도 않는다. 긍정적인 감정 또한 아니다.


요즘 다시 이 감정에서 요동치고 있다.

이곳에 있는 시간이 오래 지날수록 점점 행동하기 쉽지 않다.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건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구나 한다.


부디 이 감정이 오래가지 않길 빌어본다.




__매너티연


작가의 이전글나는 피해자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