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의 형상

by 매너티연


셰익스피어 <오셀로>에서 이아고는 질투를 "먹잇감을 농락하며 잡아먹는 녹색 눈의 괴물"이라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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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세기의 유명한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는 시기를 짙고 컴컴한 안개로 둘러싸인 동굴에 사는 사악한 여자로 묘사했다.

__악마와 함께 춤을,
시기, 질투, 분노는 어떻게 삶의 거름이 되는가 <5장, 시기와 질투>


가끔 불쑥 튀어나와 나를 불쾌하게 만드는 감정, '질투'.


내 안에 있는 질투는 여성이다. 나이는 가늠할 수 없다. 할머니나 중년의 여성으로 보이기도 하고, 젊은 여성이라고 말한다면 그렇게도 보인다. 어깨에 닿을 정도의 머리 길이에 앞머리는 길어 눈을 조금 가렸다. 코는 마치 마녀의 코처럼 큰 매부리코에 피부는 달 표면처럼 매끈함과는 정반대의 거친 피부를 가졌다. 끊임없이 타인을 질투해서 입맛을 잃은 그녀는 아무것도 먹지 않아 갈비뼈와 배가 등에 달라붙을 만큼 말랐고, 무엇을 응시하는지 모르지만 웅크리고 앉아 눈만 치켜뜨고 앉았다. 힘 없이 앉아있지만 누군가를 끊임없이 질투해야 하기에 눈을 이리저리 굴린다. 그러나 공격성은 조금도 없다.


내 인생에 가끔 그녀가 주인공이 된 것 마냥 튀어나오면 불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질투의 대상보다 한없이 작아지게 만드는 느낌이 불쾌하다. 질투한다는 걸 누군가가 알아챌까 두려워 그녀가 내 안에서 불쑥 튀어나올 때면 재빨리 꿀꺽 삼켜버린다. 질투를 들킨다는 건, 사회의 부정적인 시선이 나에게로 쏠리고, 어두운 속내가 발각되는 것이다. 나의 약점과 부족함을 한껏 드러낸다는 것은 취약해진다는 것이기도 하다.




'악마와 함께 춤을'이라는 크리스타 k. 토마슨의 책은 인간이 가진 사악한 감정, 보편적으로 외면해 왔고 금기시되어 왔던 감정을 해부하여 설명한 책이다. 많은 철학자들이 이 부정적인 감정을 해부했고, 형상화한 흔적을 보니 질투를 나만의 방식으로 형상화해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형상화해 본 질투라는 감정은 한없이 작고 왜소했다. 질투는 사랑이 필요했다. 내 안에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나로부터도 외면당했던 그녀를 이제는 외면할 수 없다.


질투는 오랜 시간 타인과 나로부터 외면당해 홀로 지금까지 존재해 왔다. 그런 그녀에게 옷을 입히고 ‘이제 혼자 웅크리지 말고 질투할 거면 누워서 해’라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비로소 외면했던 질투라는 감정을 경계밖에서 안으로 친히 모셨다. 이젠 그녀가 원치 않을 때 불쑥 튀어나가도 '너였구나'하며 내 안에 또 다른 나를 반길 수 있기를 바라본다.


질투는 없앨 수 없었다. 수십 년간 숨겨왔던 것일 뿐..

이제는 아픈 손가락처럼 늘 두고두고 바라봐줘야만 하는 감정이다.

인간으로서 타인과의 비교로 이루어지는 질투라는 감정을 두고 ‘괜찮아 나 여기 있어’라고 말했다.

사랑받지 못할까 봐 노심초사하는 불안한 감정에서 이내 벗어나고 그녀는 어디론가 사라진다.


질투는 늘 외면당해 외롭다.



__매너티연


사진: UnsplashK. Mitch Ho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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