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한 자의식
아주 사소한 하루였다. 좋은 음악을 들려주는 유튜브 영상에 댓글을 하나 달았지만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유튜브 채널 주인으로부터 내 댓글이 좋아요를 받지 못했다. 채널 주인이 댓글에 좋아요를 누르면 손가락 버튼 옆에 채널 주인이 좋아요를 눌렀다는 표시로 크고 동그란 이미지가 생긴다. 그 이미지가 나만 없다는 사실에 무의식적 슬픔이 올라왔다.
자의식이 큰사람의 특징이다.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아야 하고, 다른 사람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사랑 저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 자의식이 큰 사람은 거절당할 때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했다는 느낌을 받는다. '나는 마땅히 존중받아야 하고 사랑받아야 할 사람인데 왜 거절당했지?'라는 생각으로 작은 의미에도 거창한 의미를 부여한다. 자존심 상할 일 만들고 싶지 않아 거절당할 일에는 시작도 하지 않게 된다.
어제는 누군가 자해하고 있다는 아주 은밀하고 슬픈 속사정을 늘어놓은 댓글을 우연히 보았다. 자해를 한다는 말에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 나라는 존재를 접착제로 붙인 것 마냥 뒤로 가기를 누를 수가 없었다. 많은 생각이 스쳤다.
'아마 이 친구는 너무나도 외로워 인터넷이라는 익명의 공간을 빌려 위로를 받고, 아픔을 훌훌 털어버리려 했겠지. 얼마나 서글플까..'
힘이 되는 위로 한마디 하려 댓글을 쓰기 시작했다.
알 수 없는 사명감에 의해 대댓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내 댓글이 무시당하면 어쩌지? 그리고 기분이 상하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물밀듯 밀려와 지웠다 썼다를 반복했다. 댓글을 쓰려 마음먹은 이유는 '이 사람에게 아는 정보를 공유함으로써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였지만 결국, 내가 상처받고 되려 도움을 거절당할까 봐 두려웠다. 더 이상 가엾은 상대를 도와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후에 가엾어질 나를 위해 위로하기를 포기하는 마음만이 남았다.
위로의 마음 55%는 45%의 두려움에 의해 좌지우지되었지만 평소 알아차림(mindfulness)을 훈련하고 있어 순간적으로 거부당하는 두려움이 앞선다는 것을 깨달았다. 두려움을 깨닫고 직면하기 위해 댓글을 완성했다. 만약 작성자가 기분이 나빠 응답조차 하지 않았다면 알 수 없지만 이유가 있을 테고 응답을 받아도 나의 대단한 위로 때문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상대의 반응에 대한 기대심리를 한 풀 꺾었다.
거절당하는 두려움을 해결하기 위해서 익명의 공간에서 사람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는 대댓글을 쓸 계획이다. 수십 번 댓글을 쓰면 반응이 있는 댓글이 있고 없는 댓글이 있다는 것이 크게 다가오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는 응답을 하지 않을 수 있고, 비난을 할 수 있는 반면 때로는 좋은 반응과 응답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적응을 하고, 나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에 '그렇구나'하고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훈련을 해보려 한다. 이 방법을 통해 존중받아야 한다는 거대한 자의식을 점점 작게 만들 계획이다.
자의식이 비대하면 특권의식을 가진다. 세상과 타자로부터 마땅히 받아야 할 대접을 기대하고 또한 자신이 만든 페르소나(가면)에 자신을 국한한다. 그렇게 자신을 제한함으로써 개인의 욕망 즉, 자유의지 또한 억압시킨다.
자유의지의 억압은 본연의 색을 잃고 남들의 삶에 따라 살게 된다.
__매너티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