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장 - 수업

소설 도시는 배우지 않는다. 16장: 마나밸리 도시 아카데미

by 마나월드ManaWorld
main.png 3부 1장: 마나밸리 도시 아카데미


가을.

마나밸리.

정민은 건물 앞에 섰다.

2층짜리. 벽돌. 낡았다. 벽에 금이 가 있었다.

비가 오면 스며들 것 같은 금. 창문이 넓었다.

유리에 먼지가 끼어 있었다. 손가락으로 그으면 자국이 날 것 같았다.

1층 문 옆에 테이프 자국이 있었다. 뭔가 붙어 있다가 떨어진 자국.

부동산 번호였을 것이다.

간판이 없었다.

대신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흰 천. 파란 글씨.

‘마나밸리 도시 아카데미 개소식’

바람이 불었다. 현수막이 펄럭였다. 글씨가 흔들렸다.

천이 건물 벽에 부딪혔다. 퍽. 퍽.

정민은 현수막을 봤다.

6개월 전에는 없던 것.

6개월 전에는 이 건물도 비어 있었다.

공실. 창문에 먼지가 더 두껍게 쌓여 있었다.

거미줄도 있었다. 구석에.

지금은 달랐다.

문이 열려 있었다. 안에서 소리가 났다.

사람 소리. 의자 끄는 소리. 웅성거림.

커피 냄새가 났다. 누가 타온 것 같았다.


정민은 문으로 걸어갔다.

발소리가 났다. 콘크리트 바닥에. 딱. 딱. 딱.

안에 사람들이 있었다.

스무 명쯤.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있었다.

접이식. 흰색. 줄이 맞지 않았다.

비뚤비뚤. 누가 대충 놓은 것 같았다.

앞에 테이블이 하나 있었다. 나무. 중고. 긁힌 자국이 있었다.

다리 하나가 짧은지 흔들렸다. 누가 종이를 접어서 밑에 끼워놓았다.

그 위에 마이크가 놓여 있었다.

스탠드 마이크. 낡은 것. 스펀지가 해어져 있었다.

창문으로 햇빛이 들어왔다.

오후 햇빛. 비스듬하게. 먼지가 떠다녔다. 금빛으로 반짝였다.

형광등은 꺼져 있었다.

정민은 그걸 봤다. 꺼진 형광등.

미래구청 회의실이 떠올랐다.

형광등. 윙. 소리. 파란 PPT. 사람 말이 얇아지던.

여기는 달랐다.

햇빛이 있었다. 먼지가 있었다. 사람 냄새가 있었다.

사람들이 서로를 봤다.

어색했다. 아는 사이도 있었고, 모르는 사이도 있었다.

앞줄에 노인이 앉아 있었다. 남자. 칠십 대쯤.

모자를 쓰고 있었다. 낡은 야구모자.

손에 부채를 들고 있었다. 가을인데. 더운가.

옆에 여자가 앉아 있었다. 오십 대.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가게에서 바로 온 것 같았다.

손에 뭔가 묻어 있었다. 밀가루 같았다.

중간줄에 젊은 사람이 있었다. 남자. 삼십 대.

정장을 입고 있었다. 넥타이는 없었다.

셔츠 단추가 하나 풀려 있었다.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뒷줄에 미정이 앉아 있었다.

서류 폴더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펜을 들고 있었다. 뭔가 적을 준비.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이게 뭐 하는 거래요?”

“도시 뭐라고?”

“아카데미? 학원이에요?”

정민은 들었다. 대답하지 않았다.

“정민 씨.”

고개를 돌렸다.

하린이 있었다.

청바지. 흰 티셔츠. 앞치마는 없었다.

손에 종이를 들고 있었다. A4. 여러 장.

손가락에 종이 자국이 나 있었다. 많이 만진 것 같았다.

“왔어요.”

“응.”

하린이 종이를 흔들었다.

“명단이에요. 오늘 온 사람들.”

“몇 명?”

“스물셋.”

정민은 의자들을 봤다. 세어봤다. 스무 개 좀 넘었다.

“의자가 모자라겠네.”

“가져올게요.”

하린이 뒤로 갔다. 구석에 접힌 의자가 쌓여 있었다.

먼지가 쌓여 있었다. 하린이 손으로 먼지를 털었다.

손바닥이 회색이 됐다. 바지에 닦았다.

의자를 하나 들었다. 펼쳤다. 찰칵. 소리가 났다.

정민도 갔다. 의자를 들었다. 펼쳤다. 찰칵.

두 사람이 의자를 날랐다. 네 개. 다섯 개.

줄 끝에 놓았다.

앞줄 노인이 정민을 봤다.

“젊은 사람이 힘이 좋네.”

정민이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노인이 부채를 흔들었다. 팔랑팔랑.


“정민 연구위원.”

뒤에서 목소리가 났다.

돌아봤다.

미정이 서 있었다.

정장. 회색. 구청 명찰이 달려 있었다.

손에 서류 폴더를 들고 있었다. 파란색. 모서리가 접혀 있었다.

“오셨어요.”

정민이 말했다.

미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실내를 둘러봤다.

천천히. 천장. 벽. 창문. 의자. 금 간 벽. 먼지.

“여기서 해요?”

“네.”

“…”

미정이 창문을 봤다. 금 간 유리. 테이프로 붙여 놓은 곳.

“예산이 얼마였죠?”

“공간 임대료 월 80. 집기 200. 운영비 월 50.”

“적네요.”

“일부러요.”

미정이 정민을 봤다.

“실패하면?”

“기록하죠.”

“기록이요?”

“네. 뭐가 안 됐는지. 왜 안 됐는지. 다음에 어떻게 할지.”

미정이 서류 폴더를 봤다. 손가락으로 모서리를 눌렀다. 톡. 톡.

“위에서 물으면요?”

“보여드리죠. 기록을.”

미정이 대답하지 않았다.

입술이 움직였다. 뭔가 말하려다 멈춘 것 같았다.

돌아섰다. 뒤쪽 의자로 갔다. 앉았다.

서류 폴더를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펜을 들었다.


두 시.

사람들이 다 앉았다.

스물세 명.

의자가 딱 맞았다. 빈자리가 없었다.

정민은 앞에 섰다. 테이블 옆.

마이크를 잡았다. 차가웠다. 금속. 무게가 있었다.

숨을 들이쉬었다. 내쉬었다.

“안녕하세요.”

소리가 울렸다. 스피커에서.

약간 찢어지는 소리. 삐-- 하고 피드백이 났다.

“아, 죄송해요.”

정민이 마이크를 입에서 떼었다. 스피커 쪽을 봤다. 누군가 볼륨을 낮췄다.

다시 입에 댔다.

“마나밸리 도시 아카데미 첫날입니다.”

사람들을 봤다.

앞줄. 노인이 부채를 멈추고 정민을 봤다.

중간줄. 밀가루 손 여자가 앞치마 끈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뒷줄. 정장 남자가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처음으로.

미정이 펜을 들고 있었다. 서류에 뭔가 적고 있었다.

하린이 옆에 서 있었다. 명단을 들고.

손가락으로 종이 모서리를 만지고 있었다. 긴장한 것 같았다.

정민이 말했다.

“저희가 하려는 건 사업이 아닙니다.”

잠깐 멈췄다. 사람들을 봤다.

“운영입니다.”

앞줄 노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가 다른데요?”

“사업은 끝이 있어요. 예산 쓰고, 보고하고, 끝.”

정민이 사람들을 봤다.

“운영은 끝이 없어요. 계속 돌아가요.

문제가 생기면 고치고.

또 문제가 생기면 또 고치고.”

밀가루 손 여자가 손을 들었다.

“그래서 뭘 하자는 거예요?”

“배우자는 겁니다.”

“뭘?”

“도시를요.”

조용해졌다.

사람들이 서로를 봤다.

어떤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사람은 눈썹을 찌푸렸다.

정장 남자가 팔짱을 꼈다.

“도시를 배워요?”

“네.”

“그게 되나요?”

“해봐야 알죠.”

정민이 테이블 위에서 뭔가를 들었다.

종이. 한 장. A3 크기.

들어 보였다.

“시간표입니다.”

칸이 나뉘어 있었다. 요일. 시간. 내용.

손글씨로 적혀 있었다. 정민이 어젯밤에 쓴 것.

“매주 화요일 저녁 7시. 여기서 모입니다.”

사람들이 종이를 봤다.

“뭘 하는데요?”

“처음 한 달은 서로 얘기해요.

뭐가 문제인지. 뭘 바꾸고 싶은지.”

“그다음엔?”

“해보는 거죠.”

정장 남자가 웃었다. 코웃음.

“해본다고 되나?”

“안 될 수도 있어요.”

정민이 말했다.

“근데 안 해보면 몰라요.”

정장 남자가 입을 다물었다. 팔짱을 푸는 않았다.


하린이 앞으로 나왔다.

손에 뭔가를 들고 있었다. 작은 것. 여러 개.

스티커였다.

동그란 것. 파란색. 흰색. 노란색. 반짝거렸다.

“이거요.”

하린이 스티커를 들어 보였다.

“오늘 참석하신 분들한테 드려요.”

“그게 뭔데요?”

밀가루 손 여자가 물었다.

“출석 스티커요.”

하린이 웃었다. 입꼬리가 올라갔다.

“모을 수 있어요. 나중에 뭔가 될 수도 있고요.”

노인이 손을 들었다.

“뭐가 되는데?”

“아직 몰라요.”

하린이 말했다.

“같이 정해요. 다음에.”

노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옆 사람을 봤다.

밀가루 손 여자. 밀가루 손 여자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다 웃었다.

“재밌네.”

노인도 웃었다. 주름이 잡혔다.

“그래, 재밌어.”

하린이 스티커를 나눠주기 시작했다.

한 명씩. 손에 쥐여줬다.

“감사합니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람들이 스티커를 받았다. 봤다.

어떤 사람은 옷에 붙였다. 어떤 사람은 주머니에 넣었다.

노인이 스티커를 모자에 붙였다. 파란 스티커. 낡은 야구모자에.

“이게 첫 번째다.”

혼잣말. 정민은 들었다.


세 시.

개소식이 끝났다.

사람들이 일어났다. 웅성거렸다. 나가기 시작했다.

“다음 주에 봐요.”

“화요일이요?”

“네, 화요일.”

밀가루 손 여자가 하린에게 다가왔다.

“아가씨, 수고했어요.”

“감사합니다.”

“빵 가져올게요. 다음에. 우리 가게 빵.”

“아, 감사합니다.”

여자가 나갔다. 앞치마가 펄럭였다.

미정이 다가왔다.

서류 폴더를 닫고 있었다.

“수고하셨어요.”

“감사합니다. 와주셔서.”

미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보고는 제가 할게요.”

“네.”

“근데.”

미정이 정민을 봤다.

“스티커요. 그거.”

“네.”

“뭐가 될지 모른다면서요.”

“네. 아직은요.”

미정이 서류 폴더 모서리를 손가락으로 눌렀다. 톡. 톡.

“위에서 물으면 뭐라고 해요?”

“같이 정한다고요.”

“그게 답이에요?”

“지금은요.”

미정이 대답하지 않았다.

잠깐 정민을 봤다. 2초. 3초.

고개를 돌렸다. 나갔다.

문이 닫혔다. 삐걱.


정민은 실내에 서 있었다.

하린이 의자를 정리하고 있었다.

하나씩. 접어서. 구석에 쌓고.

찰칵. 찰칵.

정민도 갔다. 의자를 접었다.

찰칵.

“하린 씨.”

“네.”

“사람들이 웃었어요.”

하린이 손을 멈췄다. 의자를 들고 있었다.

“웃었나요?”

“스티커 받을 때. 노인분이 웃었어요. 빵집 사장님도.”

하린이 의자를 내려놓았다.

“웃으면 뭐가 달라요?”

“들은 거예요.”

“네?”

“웃으면 들은 거예요. 뭔진 모르겠는데, 일단 들은 거.”

하린이 정민을 봤다.

잠깐. 3초.

“그러면 되는 거예요?”

“시작은요.”

하린이 고개를 돌렸다. 창문을 봤다.

해가 기울고 있었다. 주황색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먼지가 떠다녔다. 금빛에서 주황빛으로 바뀌고 있었다.

“시작.”

하린이 말했다.

“오래 안 해봤네요. 시작.”


정민은 창문으로 걸어갔다.

유리에 손을 댔다. 차가웠다.

금이 간 곳을 손가락으로 따라갔다.

밖이 보였다. 마나밸리. 골목. 가게들. 사람들.

저녁 준비하는 가게가 보였다. 불을 켜고 있었다. 하나.

또 하나.

하나씩 불이 켜지고 있었다.

정민은 불빛을 봤다.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장판 조각이 있었다.

꽃무늬. 손끝에 닿았다. 모서리가 헤어져 있었다.

아직 있다.

창문에 정민의 얼굴이 비쳤다. 흐릿하게.

뒤에 하린이 보였다. 의자를 정리하고 있었다.

찰칵.

소리가 났다.

의자 접는 소리.

시작하는 소리.


-계속-



"사업이 아닙니다. 운영입니다."

"모을 수 있어요. 나중에 뭔가 될 수도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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