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장 - 65%

소설 도시는 배우지 않는다. 17장: 65%

by 마나월드ManaWorld
main.png 3부 2장: 65%

2주 후.

화요일. 저녁 7시.

아카데미에 사람들이 모였다.

열여덟 명. 지난주보다 다섯 명 줄었다.

정민은 문 앞에 서서 세어봤다.

빈 의자가 있었다. 일곱 개. 흰 플라스틱. 줄 끝에 나란히.

지난주엔 꽉 찼었다.

하린이 옆에 섰다. 명단을 들고 있었다.

종이 모서리가 접혀 있었다. 많이 넘긴 자국.

“줄었네요.”

“응.”

“괜찮아요?”

정민은 대답하지 않았다. 빈 의자를 보고 있었다.

창문으로 저녁 햇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주황색. 먼지가 떠다녔다.

지난번보다 적었다. 누가 청소한 것 같았다. 바닥에 빗자루 자국이 있었다.


앞으로 걸어갔다. 테이블 옆에 섰다.

발소리가 났다. 딱. 딱. 콘크리트 바닥에.

벽에 보드가 걸려 있었다. 코르크보드. 갈색. 지난주에 달아놓은 것.

종이가 붙어 있었다. 포스트잇. 메모. 손글씨. 삐뚤삐뚤.

그 옆에 새 종이가 있었다. A3 크기. 흰 것. 테이프로 붙여놓았다.

정민이 아침에 붙인 것.

원이 그려져 있었다. 파란 펜. 굵은 선. 안에 숫자가 적혀 있었다.

65%

정민이 마이크를 들었다. 차가웠다. 금속. 지난주보다 무겁게 느껴졌다.

“오늘은 규칙 얘기를 할 겁니다.”

“규칙이요?”

앞줄에서 목소리가 났다. 노인이었다.

지난주에 부채 들고 있던. 오늘도 부채가 있었다.

무릎 위에 놓여 있었다.

“네.”

정민이 보드를 가리켰다. 65%가 적힌 종이.

“저희가 뭔가 결정할 때. 기준이 필요해요.”

“무슨 기준?”

“언제 실행하고. 언제 기다릴지.”

노인이 종이를 봤다. 눈을 가늘게 떴다. 숫자가 잘 안 보이는 것 같았다.

“65%가 뭔데요?”

“3분의 2예요. 대략.”

정민이 종이를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톡.

“뭔가 제안이 나오면. 손을 들어요. 찬성하는 사람.”

사람들이 정민을 봤다.

“65% 넘으면 실행해요. 안 넘으면 안 해요.”

노인이 손을 들었다.

“왜 65%요? 절반 넘으면 되는 거 아니오?”

“절반은 너무 아슬아슬해요.”

정민이 말했다.

“51 대 49면. 거의 반이 반대하는 거잖아요.”

“그래도 다수결 아니오?”

“다수결이 다가 아니에요.”

정민이 사람들을 봤다. 한 명씩.

“반대하는 사람이 너무 많으면. 결정해도 안 움직여요. 경험상.”

노인이 부채를 들었다. 턱을 긁었다.

“경험이라.”

입을 다물었다.


뒷줄에서 목소리가 났다.

“근데요.”

미정이었다.

서류 폴더를 열고 있었다. 펜을 들고 있었다. 펜 끝이 종이 위에서 멈춰 있었다.

“65%요. 그거 근거가 뭐예요?”

정민이 미정을 봤다.

“근거요?”

“네. 논문이요? 연구요? 전례요?”

“없어요.”

미정이 펜을 멈췄다. 펜 끝이 종이에서 떨어졌다.

“없어요?”

“네.”

“그럼 그냥 정한 거예요?”

“경험이요.”

미정이 서류 폴더를 봤다.

손가락으로 모서리를 눌렀다. 톡. 톡. 소리가 났다.

“경험이요.”

“네.”

“누구 경험이요?”

정민은 대답하지 않았다.

1초. 2초.

“제 경험이요.”

미정이 정민을 봤다. 눈이 가늘어졌다.

“정민 연구위원 경험이요?”

“네.”

“6년이요?”

“네.”

미정이 펜을 내려놓았다. 서류 위에. 탁. 소리가 울렸다.

“그 6년 동안. 성공한 게 뭐예요?”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누가 기침을 했다. 중간줄에서. 작은 소리.

사람들이 미정을 봤다. 정민을 봤다. 다시 미정을 봤다.

정민은 입을 열지 않았다.

손이 마이크를 쥐고 있었다. 손가락이 하얘졌다. 너무 세게 쥐고 있었다.

하린이 일어섰다.

의자가 바닥에 끌렸다. 끼익. 소리가 길었다.

“잠깐요.”

미정이 하린을 봤다.

하린이 앞으로 걸어갔다. 발소리가 났다. 딱. 딱. 정민 옆에 섰다.

“성공이요.”

하린이 미정을 봤다. 눈을 피하지 않았다.

“뭐가 성공이에요?”

“네?”

“상생협약이요. 성공했어요?”

미정이 대답하지 않았다. 입술이 움직였다. 멈췄다.

“유지율 44.7%. 그거 성공이에요?”

“그건-”

“도시재생센터요. 4년 하고 예산 끊겼잖아요. 성공이에요?”

미정이 입을 다물었다. 손가락이 서류 폴더를 잡고 있었다.

손가락 마디가 하얬다.

하린이 사람들을 봤다.

“저요. 카페 했었어요. 3년.”

사람들이 하린을 봤다. 노인이 부채를 내려놓았다.

“상생협약 믿었어요. 함께 간다고. 같이 버티자고.”

하린이 숨을 들이쉬었다. 어깨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문 닫았어요. 작년에.”

조용했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창문 밖에서 차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멀리.

“근데요.”

하린이 정민을 봤다. 1초.

“이 사람이요. 그때 반성했어요.”

정민이 하린을 봤다.

“뭐가 안 됐는지. 왜 안 됐는지.

한달 반 동안 돌아다녔어요. 다른 도시들. 배우려고.”

하린이 다시 미정을 봤다.

“그래서 65%예요.”

“그게 무슨-”

“완벽하면 늦어요.”

하린이 말했다. 목소리가 높아졌다. 조금.

“100% 맞을 때까지 기다리면.

아무것도 못 해요. 다 아는 거잖아요. 행정에서.”

미정이 대답하지 않았다. 펜을 집었다. 다시 내려놓았다.

하린이 보드를 가리켰다. 65%.

“65%면 해보는 거예요. 안 되면 고치고. 또 안 되면 또 고치고.”

“그게 되나요?”

“안 해봤잖아요.”

하린이 말했다.

“안 해보고 안 된다고 하면. 그건 그냥 변명이에요.”

회의실이 조용했다.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천천히.

미정이 서류 폴더를 닫았다. 탁.

일어섰다.

“기록은 해주세요.”

정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뭘 했는지. 결과가 뭔지. 숫자로.”

“그렇게 할게요.”

미정이 정민을 봤다. 2초.

돌아섰다. 나갔다. 발소리가 멀어졌다. 딱. 딱. 딱.

문이 닫혔다. 삐걱.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뭐야, 저 사람.”

“구청에서 왔대.”

“분위기 싸하네.”

정민이 마이크를 들었다. 손가락이 풀렸다. 아까보다 힘이 빠져 있었다.

“계속할게요.”

정민이 사람들을 봤다.

“65%요. 동의하시는 분?”

손이 올라갔다. 하나. 둘. 셋.

노인이 손을 들었다.

밀가루 손 여자가 손을 들었다. 지난주에 빵 가져온다고 한.

하나씩 올라갔다.

정민이 세어봤다. 열둘. 열여덟 명 중에.

“66%.”

정민이 말했다.

“통과예요.”

노인이 웃었다. 주름이 잡혔다.

“딱 맞네.”

“그래서요.”

뒷줄에서 목소리가 났다.

정민이 봤다.

동욱이었다.

1부. 구청 회의실. 넥타이가 비뚤어져 있던. 건물주협의회 대표.

와 있었다. 뒷줄 구석에. 아까부터 있었던 것 같았다.

정민은 몰랐다. 팔짱을 끼고 있었다. 표정이 없었다.

정민이 봤다.

“언제 오셨어요?”

“처음부터요.”

동욱이 팔짱을 풀지 않았다.

“65% 통과됐으니까. 그래서 뭐 할 건데요?”

“지금부터 정하죠.”


정민이 보드를 가리켰다.

“제안 있으면. 포스트잇에 써서 붙여요.”

하린이 포스트잇을 들었다. 여러 색. 노란색. 분홍색. 초록색. 손에 한 움큼.

나눠주기 시작했다. 한 명씩.

“펜도요.”

펜도 나눠줬다. 검은 펜. 파란 펜.

사람들이 펜을 받았다. 포스트잇을 받았다.

잠깐 서로를 봤다.

아무도 먼저 쓰지 않았다.

조용했다. 5초. 10초.

노인이 먼저 썼다.

손이 느렸다. 펜이 떨렸다. 글씨가 삐뚤었다.

‘골목 청소 당번’

떼서 일어났다. 천천히. 보드 앞으로 걸어갔다. 붙였다.

찰싹.

소리가 났다. 조용한 방에서.

노인이 돌아섰다. 자리로 갔다. 앉았다.

다른 사람이 썼다. 밀가루 손 여자.

‘가게 앞 화분’

일어났다. 붙였다.

찰싹.

하나씩 붙기 시작했다.

젊은 남자가 썼다. 붙였다. 찰싹.

중년 여자가 썼다. 붙였다. 찰싹.

찰싹. 찰싹.

정민은 서서 봤다.

포스트잇이 붙어갔다.

노란색. 분홍색. 초록색. 보드가 채워지고 있었다. 색깔이 섞였다.


“이거요.”

동욱이 말했다. 앉은 채로.

정민이 봤다.

동욱이 팔짱을 풀었다. 일어섰다.

“이거 해서 뭐가 좋아요?”

정민이 동욱을 봤다.

“좋아요?”

“나는 건물주요. 솔직히.”

동욱이 사람들을 봤다. 천천히.

“청소 당번이요. 화분이요. 그거 해서 임대료가 올라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공실이 줄어요? 손님이 늘어요?”

동욱이 정민을 봤다.

“숫자로 보여줘요. 그러면 믿죠.”

정민은 동욱을 봤다.

3년 전 얼굴이 떠올랐다. 구청 회의실. 파란 PPT. 원그래프.

‘이탈 26개. 유지율 44.7%.’

동욱이 서류를 테이블에 내려놓았던. 탁. 협의회 의결서.

지금도 같은 얼굴이었다. 같은 눈. 믿지 않는 눈.

정민이 입을 열었다.

“숫자요.”

“네.”

“보여드릴게요.”

동욱이 눈썹을 올렸다.

“어떻게?”

“여기요.”

정민이 보드 옆을 가리켰다. 빈 공간. 벽.

“대시보드 붙일 거예요. 매주 업데이트.”

“뭘요?”

“유동인구. 매출 변화. 공실률. 체류 시간.”

동욱이 팔짱을 꼈다.

“그거 되나?”

“해볼게요.”

“안 되면?”

“기록하죠.”

정민이 말했다.

“뭐가 안 됐는지. 왜 안 됐는지.”

동욱이 정민을 봤다. 3초. 4초.

“…알았어요.”

앉았다.


하린이 정민 옆으로 왔다. 작은 목소리.

“대시보드요. 그거 있어요?”

“아니.”

“그럼 어떻게요?”

“만들어야지.”

하린이 정민을 봤다. 눈썹이 올라갔다.

정민이 보드를 봤다.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열다섯 장쯤. 색깔이 섞여 있었다.

“하나씩 하죠.”

하린이 대답하지 않았다.

잠깐.

“정민 씨.”

“응.”

“그거요. 대시보드.”

하린이 보드를 봤다.

“숫자만 보여주면 안 돼요.”

“뭐가요?”

“사람이 보여야 해요.”

정민이 하린을 봤다.

하린이 포스트잇을 봤다. 노란 것. ‘골목 청소 당번’.

“숫자는 결과잖아요.

근데 사람들이 왜 모이는지. 왜 남는지. 그건 숫자가 아니에요.”

“…”

“숫자만 보여주면. 그냥 장사잖아요.”

하린이 정민을 봤다.

“이건 장사 아니잖아요. 그쵸?”

정민은 대답하지 않았다.

1초. 2초.

“그래요.”

고개를 끄덕였다.

“장사 아니에요.”



아홉 시.

회의가 끝났다.

사람들이 일어났다. 웅성거렸다. 나가기 시작했다.

“다음 주에 봐요.”

“화요일이요?”

“네.”

동욱이 문 앞에서 멈췄다.

정민을 봤다.

“정민 연구위원.”

“네.”

“숫자요.”

“네.”

“다음 달까지 보여줘요. 뭐라도.”

나갔다.

문이 닫혔다. 삐걱.

정민과 하린만 남았다.

하린이 의자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하나씩. 접어서.

찰칵.

정민은 보드 앞에 섰다.

포스트잇을 봤다.

‘골목 청소 당번’

‘가게 앞 화분’

‘주말 장터’

‘어린이 프로그램’

‘노인 쉼터’

열다섯 개.

정민은 주머니에서 펜을 꺼냈다.

보드 옆 빈 종이에 적었다.

‘제안: 15건’‘다음 단계: 투표 (65%)’

적고 나서 봤다.

손이 떨렸다. 조금. 펜 끝이 흔들렸다.

펜을 내려놓았다. 테이블에. 탁.

하린이 다가왔다.

정민 옆에 섰다. 보드를 봤다.

“떨려요?”

“뭐가?”

“손이요.”

정민이 손을 봤다. 떨림이 멈춰 있었다.

“조금.”

“왜요?”

정민은 대답하지 않았다.

창문을 봤다. 어두웠다. 밖에 가로등 불빛이 있었다. 주황색. 하나.

“모르겠어요.”

“뭘요?”

“되는지.”

하린이 정민을 봤다.

“65%요?”

“아니.”

정민이 고개를 저었다.

“내가.”

하린이 대답하지 않았다.

잠깐. 5초.

“정민 씨.”

“네.”

“저도 몰라요.”

정민이 하린을 봤다.

하린이 보드를 봤다. 포스트잇들. 색깔들.

“근데요.”

“응.”

“모르니까 해보는 거잖아요.”


하린이 정민을 봤다.

“정민 씨가 그랬잖아요. 떠나기 전에.”

정민은 기억났다.

버스. 창밖. 마나브리지.

‘모른다. 모르니까 가는 거다.’

그랬다.

“그랬죠.”

“그러니까요.”

하린이 웃었다. 입꼬리가 올라갔다. 조금. 피곤한 웃음.

“모르니까 해보는 거예요.”

정민은 보드를 봤다.

포스트잇 열다섯 개. 손글씨들. 삐뚤삐뚤한 것. 반듯한 것. 떨리는 것.

손을 들어 한 장을 만졌다. 노란 것.

‘골목 청소 당번’

노인이 쓴 것. 글씨가 떨렸다. 손이 떨렸으니까.

정민은 손을 내렸다.

주머니에 넣었다. 장판 조각이 있었다. 손끝에 닿았다.

꽃무늬. 모서리가 헤어져 있었다.

아직 있다.

창문 밖에서 불빛이 깜빡였다. 가로등. 한 번. 두 번.

세 번째에 안정됐다.

켜졌다.


-계속-




"근거가 뭐예요?" "경험이요"

"안 해보고 안 된다고 하면. 그건 그냥 변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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