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 “구청의 형광등”
S# 11. 구청 3층 복도 / 1월 29일.(다음 날), 오후 1시 50분
복도.
바닥이 왁스로 닦여 있다. 반짝거린다.
형광등 빛이 반사된다. 눈이 부시다.
출입 게이트가 있다. 스테인리스. 허리 높이.
정민이 출입증을 찍는다. 삑.
게이트가 열린다.
발소리가 난다. 딱. 딱. 딱.
구두 소리. 바닥에 울린다.
정민이 복도를 걷는다.
문마다 명패가 붙어 있다.
플라스틱. 흰 바탕에 검은 글씨.
‘도시계획과’ ‘건축허가과’ ‘재생사업1팀’ ‘재생사업2팀’
벽에 포스터가 붙어 있다.
‘미래구 – 함께 만드는 지속가능한 도시’
새 포스터. 광택지. 색이 선명하다.
복도 끝에 문이 있다.
‘대회의실’
정민이 문 앞에서 멈춘다.
손목시계를 본다.
1시 53분.
숨을 들이쉰다. 내쉰다.
문을 민다.
S# 12. 대회의실 / 오후
회의실이 넓다.
창문이 크다. 햇빛이 들어온다.
그런데도 형광등이 켜져 있다. 윙. 낮고 고른 소리.
테이블이 하나 있다. 긴 것. 10명쯤 앉을 수 있는.
나무 아닌 합성 재질. 표면이 매끄럽다.
한쪽에 세 명이 앉아 있다.
미정. 노트북을 열고 있다. 화면에 파란 빛.
뭔가 타이핑하고 있다.
동욱. 양복을 입고 있다. 회색. 넥타이가 비뚤어져 있다.
본인은 모르는 것 같다.
하린. 청바지에 니트. 베이지색.
손에 서류철을 들고 있다. 낡은 것. 모서리가 해어져 있다.
정민이 빈자리에 앉는다.
테이블 맞은편. 하린과 마주 보는 자리.
하린이 정민을 본다.
눈이 마주친다. 2초.
하린이 먼저 시선을 거둔다.
문이 열린다.
김 팀장이 들어온다.
오십 대. 머리가 희끗희끗하다.
넥타이. 파란색. 단정하다.
서류 폴더를 들고 있다. 두꺼운 것.
김 팀장 : 시작하죠.
S#13. 대회의실 - 발표 / 오후
스크린에 화면이 뜬다. '상생협약 3년차 평가 보고'
정민이 스크린 옆에 선다. 리모컨을 든다.
정민 : 3년 전 체결 당시 참여 업체 47개. 현재 유지 21개. 이탈 26개.
슬라이드가 바뀐다. 막대그래프. 파란색. 47에서 21로 줄어드는. 애니메이션으로 움직인다.
정민 : 유지율 44.7%입니다.
슬라이드가 바뀐다. 화면 전체가 빨갛게 물든다. 숫자가 뜬다. 44.7%. 크다. 회의실 벽 절반을 채운다. 빨간 빛이 테이블 위에 번진다. 사람들 얼굴에 비친다. 정민 얼굴. 빨간 빛.
동욱이 고개를 젓는다. 혀를 찬다. 쯧.
동욱 : 절반도 안 되네.
정민 : 네.
슬라이드가 바뀐다. 원그래프.
정민 : 이탈 사유 분석입니다. 임대료 상승 61.5%. 매출 부진 19.2%. 건강 및 가정 사유 11.5%. 기타 개인 사정 7.7%.
가장 큰 조각. 빨간색. 임대료. 가장 작은 조각. 회색. 기타.
정민이 리모컨을 내린다.
S# 14. 대회의실 - “기타 개인 사정” / 오후
하린이 손을 든다.
하린 : 질문 있어요.
정민이 하린을 본다.
하린이 서류를 들어 보인다.
서류철에서 뺀 종이. 한 장.
하린 : 이탈 사유 조사서요. 이거. 여기 선택지가 네 개잖아요.
종이를 읽는다.
하린 : 1번. 임대료 상승. 2번. 매출 부진. 3번. 건강 및 가정 사정. 4번. 기타 개인 사정.
종이를 내린다.
하린 : 그럼 복잡한 이유는요? 임대료도 올랐고, 매출도 떨어졌고, 몸도 안 좋은 사람은요. 어디 체크해요?
정민 : …
하린 : 한 개만 골라야 하잖아요. 이 조사서.
정민 : 복수 선택이 안 되는 건-
하린 : 알아요. 통계 처리 때문이라고 하셨잖아요. 3년 전에.
하린이 종이를 테이블에 내려놓는다. 탁. 소리가 난다.
하린 : 그럼 복잡한 이유는 어디로 가요?
정민이 대답하지 않는다.
하린이 화면을 가리킨다. 원그래프. 가장 작은 조각.
하린 : 기타요. 기타 개인 사정. 편하죠. 그 칸이. 뭐든 넣을 수 있으니까.
회의실이 조용해진다.
형광등이 윙 소리를 낸다. 그 소리만 들린다.
하린 : 제 삶이 7.7%인 거네요.
정민이 입을 다문다.
S# 15. 대회의실 - 동욱 발언 + 회의 종료 / 오후
동욱이 손을 든다.
동욱 : 제가 말해도 되겠습니까?
동욱이 일어선다. 양복 단추를 푼다.
동욱 : 건물주 입장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협약이 건물주한테 뭘 줬습니까?
테이블을 한 바퀴 둘러본다. 미정. 정민. 하린. 김 팀장.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
동욱 : 세금 혜택이요? 재산세 1.5% 감면. 그게 다예요. 1.5%로 20% 손해를 메꿀 수 있습니까?
동욱이 한 발 앞으로 나온다.
동욱 : 저도 대출이자 내고, 세금 내고, 수선비 내요. 공실 나면 그 달부터 마이너스예요. 착한 임대인? 착하면 뭐 합니까. 은행이 착하게 봐줍니까?
동욱이 서류를 테이블에 내려놓는다. 탁.
동욱 : 우리 협의회는 다음 기수 협약 불참입니다. 공식적으로 통보드립니다.
회의가 끝난다.
사람들이 일어난다. 서류를 챙긴다. 나간다.
동욱이 먼저 나간다. 양복 단추를 잠그며.
미정이 나간다.
김 팀장이 나간다. 아무 말 없이.
정민이 자리에 앉아 있다.
빈 회의실.
형광등이 깜빡인다. 불규칙하게.
한쪽 형광등이 지지직거린다.
정민이 테이블 위에 손을 올린다.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한 번 두드린다.
톡.
소리가 난다. 작은 소리. 울리지 않는다.
S# 16. 대회의실 문 앞 / 오후
정민이 일어선다.
가방을 든다.
문 쪽으로 걷는다.
문 앞에 하린이 서 있다.
나가려다 멈춘 것 같다.
하린 : 정민 씨.
정민 : 네.
하린 : 그 항목이요.
정민 : 네.
하린 : 저도 거기 들어가는 거죠?
정민이 입을 다문다.
하린 : 월세 72 못 내서 문 닫는 거. 그것도 개인 사정이고.
하린이 문고리를 잡는다.
손가락에 힘이 들어간다.
관절이 하얘진다.
하린 : 함께요. 함께 간다고 했잖아요. 3년 전에. 상생. 협약. 함께.
정민 : …
하린 : 근데 함께 간 사람이 절반도 안 남았어요.
문을 연다.
하린 : 함께가 이렇게 외로운 단어였나.
나간다.
문이 닫힌다.
이 시나리오의 지문은
시각과 청각 너머의 감각을 포함합니다.
촉각, 후각, 온도, 질감. 촬영 지시가 아니라
이 공간이 어떤 감각으로 존재해야 하는지를 정한 것입니다.
감정 지문대신
배우의 손에 사물을 주고,
장면에 물리적 시간을 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