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 “불 꺼지는 카페”
S# 29. 카페 프래그먼트 앞 / 3월 17일, 저녁 6시
화면에 자막이 뜬다.
‘3월 17일. 저녁 여섯 시.’
하림지구. 카페 프래그먼트.
정민이 문 앞에 서 있다.
해가 지고 있다. 하늘이 주황색.
건물 사이로 햇빛이 비스듬히 들어온다.
골목에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 있다.
유리문 너머로 안이 보인다.
하린이 움직이고 있다. 천천히.
테이블을 닦고 있다. 행주로.
의자를 올리고 있다. 테이블 위에. 다리가 위를 향하게.
마지막 정리.
S#30. 카페 - 진입 / 저녁
정민이 문을 연다.
종이 울린다. 딸랑. 작고 낮은 소리.
하린이 고개를 돌린다.
정민을 본다.
표정이 없다. 놀라지 않는다.
하린 : 닫았는데요.
정민 : 알아요.
정민이 안으로 들어선다.
문이 닫힌다.
풍경이 다시 한번 흔들린다. 작은 소리.
카운터 옆에 박스가 있다.
세 개. 테이프로 봉해진 것. 갈색 박스.
박스에 글씨가 적혀 있다. 매직으로. 하린의 글씨.
‘컵/소서’ ‘도구류’ ‘장부/서류’
‘장부/서류’ 박스는 테이프가 한쪽에서 떨어져 있다.
모서리가 벌어져 있다.
벽에 걸린 것이 보인다.
액자. 작은 것. A5 크기쯤.
액자 안에 종이가 있다. 손글씨.
‘프래그먼트’
‘조각이 모여 전체가 된다’
‘2022.04 ~’
끝 날짜가 비어 있다. 빈칸.
정민이 그 빈칸을 본다. 1초.
하린 : 커피 안 돼요. 기계 정리했어요.
정민 : 괜찮아요.
S# 31. 카페 - 테이프 / 저녁
정민이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낸다.
테이프 롤.
작은 것. 투명 테이프. 새것.
카운터 위에 올린다.
하린 : 이거요. 뭐예요.
정민 : 테이프요.
하린 : 알아요. 왜요.
정민이 박스를 가리킨다. ‘장부/서류’ 박스.
정민 : 저거. 안 붙어 있어서요.
정민이 박스 앞으로 간다.
무릎을 꿇는다.
테이프를 뜯는다. 끝을 잡고 당긴다. 찢어지는 소리. 치직.
박스 모서리에 붙인다.
손바닥으로 누른다. 단단하게.
일어선다.
정민 : 이사하려면 박스가 튼튼해야 하니까요.
하린이 테이프 롤을 집는다.
손에 든다. 가볍다.
하린 : 고마워요.
목소리가 낮다. 거의 안 들린다.
S#32. 카페 - 장판 조각 전달 + 붙이기 / 저녁
정민이 주머니에서 다른 것을 꺼낸다.
장판 조각.
손가락 세 개 크기. 꽃무늬. 색이 바랬다. 모서리가 닳았다.
카운터 위에 올린다. 테이프 옆에.
나무 위에 놓이는 소리. 톡. 작은 소리.
하린이 그것을 본다.
하린 : 그건 뭐예요.
정민 : 철거지에서 주웠어요. 김씨네 철물. 4블록에 있던 데. 거기 바닥에 있던 거예요. 40년 됐대요.
하린 : 왜 나한테요.
정민 : 어디 붙이세요.
하린 : 뭐예요. 갑자기.
정민 : 붙일 데 있으면 붙이세요. 붙이면 뭔가 남으니까요.
하린이 장판 조각을 집는다.
손에 든다. 가볍다. 먼지가 조금 묻는다.
뒤집어 본다. 접착제 자국. 누렇게 마른 것.
손가락으로 표면을 문지른다. 거칠다.
카운터 뒤 서랍에서 장부를 꺼낸다.
낡은 것. 표지가 해어져 있다.
모서리가 찢어져 있다. 갈색 표지. 손때가 묻어 있다.
서랍에서 본드를 꺼낸다.
작은 것. 문구용. 노란 뚜껑.
뚜껑을 연다. 본드 냄새가 난다. 시큼한 냄새.
장판 뒷면에 본드를 바른다. 얇게.
장부 표지에 누른다. 찢어진 모서리에.
손바닥으로 꾹 누른다.
10초.
하린의 손바닥이 장부 위에 있다. 움직이지 않는다.
손을 뗀다.
장판 조각이 장부 표지에 붙어 있다.
꽃무늬. 바랜 빨간색. 바랜 노란색.
장부 표지는 갈색. 장판은 분홍과 크림색.
오래된 것 위에 더 오래된 것이 붙어 있다.
하린이 그것을 본다. 2초.
하린 : 됐다.
목소리가 작다.
S#33. 카페 - 스위치 / 밤
창밖이 어두워지고 있다.
해가 졌다. 하늘이 남색이다.
가로등이 켜지기 시작한다. 주황색 불빛. 하나씩.
하린이 스위치 쪽으로 걸어간다.
카운터 옆 벽. 스위치. 하얀 것. 플라스틱.
멈춘다.
하린 : 정민 씨.
정민 : 네.
하린 : 불 끌 거예요. 마지막이에요. 이 불. 3년 동안 켰던 건데. 끄면 끝이에요.
하린의 손이 스위치 위에 있다.
닿지 않는다. 1센티미터쯤 떨어져.
손끝이 떨린다. 아주 미세하게. 손가락 끝만.
정민 : 같이 꺼요.
하린 : 왜요.
정민 : 혼자 끄면 더 어두울 것 같아서요.
하린이 고개를 돌린다. 정민을 본다.
2초. 3초.
웃는다. 작게. 입꼬리가 올라간다. 조금.
하린 : 그게 무슨 말이에요. 같이 끄나 혼자 끄나 어두운 건 똑같잖아요.
정민 : 그래도요.
하린이 고개를 젓는다.
숨을 들이쉰다. 깊게.
내쉰다. 길게. 어깨가 내려간다.
하린 : 아뇨. 혼자 끌게요. 이건 제 거예요. 마지막까지.
하린이 스위치에 손을 올린다.
손가락이 스위치에 닿는다. 플라스틱. 차갑다.
누른다.
딸깍.
불이 꺼진다.
어둠이 온다.
천장의 전구 세 개가 꺼진다. 따뜻한 빛이 사라진다.
창문으로 가로등 빛이 들어온다. 주황색. 희미한 것.
바닥에 사각형을 만든다.
두 사람이 어둠 속에 서 있다.
하린의 숨소리가 들린다.
고르지 않다. 들이쉬고. 내쉬고. 조금 떨리는.
30초.
아무 말이 없다. 숨소리만.
바깥에서 오토바이 소리가 난다. 지나간다. 멀어진다.
S# 34. 카페 문 앞 - 잠금 / 밤
문 앞.
하린이 문을 연다.
종이 울린다. 딸랑.
밖으로 나온다.
정민도 나온다.
밖은 어둡다. 가로등만 켜져 있다.
찬 공기가 온다. 3월 밤.
하린이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낸다.
작은 것. 은색.
문을 잠근다.
자물쇠 소리가 난다.
찰칵.
하린 : 끝이다.
목소리가 작다.
열쇠를 주머니에 넣는다.
S# 35. 골목 - 이별 / 밤
골목.
가로등만 켜져 있다.
찬 공기. 3월 밤.
하린 : 정민 씨.
정민 : 네.
하린 : 배우는 방법. 찾으면 알려줘요. 저도 알고 싶어요. 도시가 배우게 하는 방법.
정민 : 찾을게요.
하린 : 어디서요.
정민 : 여기 말고. 다른 데. 내일 떠나요. 파견. 6주.
하린이 정민을 본다.
어둠 속에서 하린의 얼굴이 보인다.
가로등 빛이 반쪽만 비추고 있다. 반은 밝고 반은 어둡다.
하린 : 찾으면요. 기록 보내줘요. 뭐 찾았는지. 저도 배울게요. 그때.
정민 : 약속할게요.
정민이 돌아선다.
걷는다.
하린 : 정민 씨.
정민이 멈춘다.
돌아본다.
하린이 서 있다. 5미터쯤 뒤에. 가로등 아래.
손을 든다.
흔든다. 작게.
하린 : 잘 가요.
정민이 손을 든다.
흔들지 않는다.
그냥 들고 있다.
2초.
손을 내린다.
돌아선다.
걷는다.
이 시나리오의 지문은
시각과 청각 너머의 감각을 포함합니다.
촉각, 후각, 온도, 질감. 촬영 지시가 아니라
이 공간이 어떤 감각으로 존재해야 하는지를 정한 것입니다.
감정 지문대신
배우의 손에 사물을 주고,
장면에 물리적 시간을 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