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리오 도시는 배우지 않는다 - S#36 ~ S#40

6장 - “기억의 골목”

by 마나월드ManaWorld
main00.png 6장 - “기억의 골목”

중편 시나리오 - 도시는 배우지 않는다


S# 36. 하림지구 골목 / 3월 11일, 밤

골목이 어둡다.


가로등 세 개 중 하나가 꺼져 있다.

7년 전에도 그랬다. 민원을 넣은 적 있다. 아직도 안 바뀌었다.


정민이 골목을 걷는다.

발걸음 소리가 울린다. 자기 발소리만.


왼쪽에 세탁소. 폐업. 셔터가 내려져 있다.

셔터에 스티커. ‘THANK YOU 30년간 감사했습니다.’

스티커 끝이 말려 있다.


오른쪽에 빈 상가. 유리창에 종이. ‘임대문의.’

아래쪽 숫자가 번져 있다.


더 걷는다.


김씨 철물점.

가게 안이 비어 있다.


정민이 유리창 앞에 선다.

먼지가 껴 있다.

손으로 닦는다. 동그랗게. 손바닥에 먼지가 묻는다.


안쪽을 들여다본다.

카운터. 먼지만 쌓여 있다.

계산대 위에 뭔가. 안경. 드라이버 거치대. 비어 있다.


벽에 뭔가 붙어 있다.

스티커.

‘상생협약 체결 업소.’


스티커는 붙어 있다.

가게는 비었다.


S#37. 골목 벽 - 포스터 / 밤

철물점 옆 벽.


낡은 포스터가 붙어 있다.

‘하림지구 상생협약 – 함께 살아요, 우리 골목!’


색이 바랬다. 원래 주황색이었다. 선명한 주황색.

지금은 누런색. 햇빛에 바랜 것. 비에 젖었다 마른 것.

모서리가 떨어져 나갔다. 왼쪽 위, 오른쪽 아래. 테이프 자국만 남았다.

가운데 접힌 자국. 누가 한번 뜯으려다 만 것 같다.


정민이 포스터 앞에 선다.

손을 뻗는다.

포스터를 만진다.

종이가 눅눅하다. 손끝에 습기가 느껴진다. 먼지가 묻는다.


‘함께 살아요.’


손가락이 글자 위에 멈춘다. 1초.


떼지 않는다.

붙여두지도 않는다.

그냥 둔다.


손을 뗀다.

손가락 끝을 본다. 먼지. 회색.


걷는다.


S# 38. 마나브리지 - 난간 / 밤

마나브리지.

다리 중간.


정민이 난간에 손을 얹는다.

철. 차갑다. 밤이슬이 맺혀 있다. 손바닥이 젖는다.


왼쪽을 본다.

하림지구. 낡은 건물들. 불빛이 드문드문. 대부분 어둠.

철물점이 있던 골목은 보이지 않는다.


오른쪽을 본다.

미래구. 유리 타워들. 밤에도 빛난다.

꼭대기 LED 간판. ‘하림지구 재개발 사업 – 더 나은 내일을 위해.’

글자가 천천히 흐른다. 한 글자씩.


같은 도시다.

다리 하나 차이다.


아래를 본다.

물이 흐른다. 검은 물. 다리 불빛이 흔들린다. 물결 따라.


휴대폰이 울린다. 진동.


정민이 꺼낸다.

화면에 ‘이하린.’


받는다.


하린 : (전화) 정민 씨.


정민 : 네.


하린 : (전화) 지금 어디예요?


정민 : 마나브리지요. 다리 위.


하린 : (전화) …뭐 해요, 거기서?


정민 : 생각 중이었어요. 이 도시가요. 왜 안 바뀔까.


하린 : (전화) 배운 적이 없으니까요.


침묵. 물소리가 들린다. 멀리서.


하린 : (전화) 정민 씨. 파견 가는 거, 확정됐어요?


정민 : 네. 다음 주에 출발해요.


하린 : (전화) 거기서 뭘 보실 건지 모르겠지만. 기록해 주세요. 다른 도시들은 어떻게 하는지. 왜 그렇게 하는지. 뭘 보고 그렇게 하게 됐는지.


정민 : 네.


하린 : (전화) 그걸 보면. 뭔가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도시가 왜 이런지.


정민 : 알겠습니다.


하린 : (전화) 꼭 돌아와서 보여주세요.


정민 : 약속합니다.


전화가 끊긴다.


정민이 휴대폰을 내린다.

화면이 꺼진다.


난간을 잡고 서 있다.

물이 흐른다.


S# 39. 마나브리지 - 메모 / 밤

정민이 주머니에서 메모장을 꺼낸다.

펜을 꺼낸다.


난간에 기대어 선다.


적는다.


‘질문:’

‘도시가 배우려면 뭐가 필요할까.’


펜이 멈춘다.


적는다.


‘이 도시는 왜 배우지 않을까.’


메모장을 닫는다.

주머니에 넣는다.


S# 40. 집 / 밤

집. 원룸.


책상 위.

장판 조각. 파견 서류.


정민이 장판을 손으로 만진다.

표면이 거칠다.


창밖을 본다.

미래구의 불빛이 반짝인다.

하림지구는 보이지 않는다.


불을 끈다.



이 시나리오의 지문은

시각과 청각 너머의 감각을 포함합니다.

촉각, 후각, 온도, 질감. 촬영 지시가 아니라

이 공간이 어떤 감각으로 존재해야 하는지를 정한 것입니다.


감정 지문대신

배우의 손에 사물을 주고,

장면에 물리적 시간을 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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