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사람이 돌아오는 도시를 만드는 법
2025년 여름, 전국 지자체장 회의.
한 단체장이 손을 들었다.
"성안길도 해봤고, 리빙랩도 해봤습니다.
그런데 지속이 안 됩니다. 담당자 바뀌면 끝이에요."
맞는 말이다. 한국 행정의 고질병. '담당자 의존증'.
그런데 한 작은 도시의 시장이 일어났다.
"우리는 다릅니다. 시스템으로 만들었거든요."
충남 홍성군. 인구 10만의 작은 도시. 하지만 그들이 보여준 가능성은 컸다.
(일부 상황·인물·대사는 재구성되었습니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착각했다. 도시가 완성될 수 있다고.
기존 도시 개발 방식을 보자.
계획을 세우고, 건설하고, 완성하고, 유지보수한다.
마치 제품을 만들듯이.
하지만 이 방식의 문제는 명확하다.
완성되는 순간부터 노후화가 시작되고,
변화하는 시민의 요구를 반영하지 못하며,
주민은 그저 수동적인 거주자로 전락한다.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도시는 영원한 베타버전이다"라는 관점이다.
베타버전. IT 용어다.
완성되지 않은 소프트웨어를 사용자가 써보면서 개선해나가는 것.
도시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
계속 업데이트되고,
사용자인 주민의 피드백을 받으며,
실험하고 수정하면서 진화하는 도시.
이게 왜 중요한가?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하기 때문이다.
10년 전 누가 예상했겠는가.
모든 사람이 스마트폰을 들고 다닐 줄.
배달앱이 상권을 바꿀 줄.
코로나가 도시를 멈출 줄.
미리 예측하고 계획할 수 없다면, 빠르게 적응하는 수밖에 없다.
베타버전 도시에서 시민의 역할은 무엇인가? 단순한 사용자가 아니다. 공동 개발자다.
성안길을 다시 보자.
메르스로 텅 빈 거리를 살린 건 정부의 정책이 아니었다.
시민들이 시작한 거리공연이었다.
홍성군을 보자.
스마트도시 서비스를 만든 건 전문가의 계획이 아니었다.
주민들이 제시한 생활 속 불편함이었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명확하다.
도시의 진짜 전문가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여전히 많은 도시에서 시민은 구경꾼이다.
공청회를 열어도 형식적이고, 의견을 받아도 반영되지 않으며, 결정은 이미 다 내려져 있다.
이걸 바꿔야 한다. 어떻게?
첫째, 시민 제안을 상시화하라. 일 년에 한 번 공청회가 아니라, 365일 언제나 아이디어를 낼 수 있도록.
둘째, 작은 실험을 허용하라. 거창한 계획이 아니어도 된다. 골목 하나, 공원 한 귀퉁이부터.
셋째,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라. 모든 실험이 성공할 순 없다. 중요한 건 배우는 것이다.
넷째, 성과를 공유하라. 성공도, 실패도 투명하게. 그래야 신뢰가 쌓인다.
그렇다면 도시의 역할은 무엇인가? 실험의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좋은 플랫폼의 조건을 생각해보자.
유튜브가 왜 성공했나?
누구나 콘텐츠를 올릴 수 있고,
실패해도 다시 도전할 수 있으며,
좋은 콘텐츠는 자연스럽게 확산되고,
계속해서 새로운 시도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도시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열려있어야 하고,
실패를 허용하는 문화가 있어야 하며,
성공한 실험이 확산될 수 있는 구조를 갖춰야 하고,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가능해야 한다.
우리가 본 성공 사례들을 다시 보라.
성안길은 누구나 공연할 수 있는 열린 무대였고,
홍성군은 주민 아이디어를 실험하는 리빙랩이었다.
모두 플랫폼의 조건을 갖췄다.
"그래도 개인이 할 수 있는 건 한계가 있지 않나요?"
맞다. 하지만 역사를 보라. 모든 큰 변화는 작은 시작에서 비롯됐다.
부산 감천문화마을을 아는가?
한국전쟁 때 피난민들이 모여 살던 달동네였다.
2009년, 마을 주민 몇 명과 예술가들이 '마을미술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빈집 하나를 갤러리로 만들고, 계단 하나를 작품으로 바꿨다.
처음엔 "이게 뭐가 되겠나" 했다.
하지만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넷이 되면서 마을 전체가 바뀌었다.
지금은 연간 200만명이 넘게 찾는 관광명소가 됐다.
전주 한옥마을도 그랬고, 통영 동피랑도 그랬다. 모두 작은 시작이었다.
중요한 건 뭘까? 시작하는 용기다.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끈기다.
스마트도시 이야기를 하면 늘 나오는 오해가 있다. "첨단 기술이 있어야 한다"는 것.
틀렸다. 기술은 도구일 뿐이다.
홍성군 리빙랩에서 나온 아이디어들을 다시 보자.
악취 측정 앱, IoT 독거노인 관리, AR 관광 안내. 모두 기술을 활용한다.
하지만 시작은 기술이 아니었다.
"축사 냄새가 심하다"
"혼자 사는 어르신이 걱정된다"
"관광객이 길을 못 찾는다"는 주민들의 불편함이었다.
기술은 이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이었을 뿐이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에도 도시 혁신은 있었다.
중요한 건 문제를 발견하는 눈과 해결하려는 의지다.
오히려 기술에 매몰되면 위험하다.
화려한 기술에 현혹되어 정작 시민이 원하는 게 뭔지 놓치기 쉽다.
천안역이 그랬다. 거창한 축제보다 지하상가 연결통로가 더 필요했는데.
그래서 지속가능한 도시의 조건은 무엇인가?
첫째, 다양성이다.
하나에 의존하면 위험하다. 양산 디자인공원을 기억하라.
앵커시설인 영화관 하나가 문을 닫자 전체가 무너졌다.
다양한 앵커, 다양한 프로그램, 다양한 참여자가 필요하다.
둘째, 회복탄력성이다.
위기는 반드시 온다. 코로나처럼 예상치 못한 충격이.
중요한 건 얼마나 빨리 회복하느냐다.
성안길은 코로나 이후 다시 일어섰지만, 많은 상권은 그러지 못했다.
차이는? 커뮤니티의 힘이었다.
셋째, 적응력이다.
도시는 계속 변한다. 인구구조도, 산업도, 문화도.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쇠퇴한다. 천안역처럼.
넷째,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주인의식이다.
시민이 "내 도시"라고 느낄 때, 도시는 살아난다.
남의 도시엔 관심이 없지만, 내 도시는 다르다.
우리나라는 특별한 조건을 가지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도시화됐고, 가장 빠르게 고령화되고 있으며,
가장 높은 교육 수준과 IT 인프라를 갖췄다.
이런 조건에서 우리만의 도시 혁신 모델을 만들 수 있다.
첫째, 세대 융합형 접근이다.
디지털에 익숙한 청년과 경험이 풍부한 노년이 함께하는 것.
홍성군 리빙랩이 좋은 예다.
어르신들의 지혜와 청년들의 기술이 만났을 때 시너지가 났다.
둘째, 온오프라인 하이브리드다.
대면 모임의 깊이와 온라인의 확장성을 결합하는 것.
한국의 높은 스마트폰 보급률과 인터넷 속도가 이를 가능하게 한다.
셋째, 빠른 실행과 피드백이다.
한국인의 '빨리빨리' 문화를 장점으로 활용하는 것.
다른 나라에서 1년 걸릴 일을 3개월에 해낼 수 있다.
넷째, 공동체 문화의 현대적 재해석이다.
품앗이, 계, 두레 같은 전통적 상호부조 문화를 현대적으로 되살리는 것.
개인주의가 강한 서구와는 다른 우리만의 강점이다.
도시 혁신에서 가장 큰 적은 무엇인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다.
"실패하면 어떡해?"
"예산 낭비라고 욕먹으면?"
"책임은 누가 져?"
이런 두려움이 혁신을 막는다.
하지만 실리콘밸리의 격언을 기억하라.
"빨리 실패하고, 싸게 실패하고, 자주 실패하라."
실패는 끝이 아니라 배움의 시작이다.
중요한 건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본 사례들도 모두 실패를 겪었다.
성안길도 처음엔 호응이 적었고, 홍성군도 시행착오가 있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했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2024년 현재, 전국 곳곳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서울은 '걷고 싶은 도시'를 만들고 있고,
부산은 '15분 도시'를 추진하며,
대전은 '시민 주도 도시재생'을 진행한다.
작은 도시들도 움직인다.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의 속도로.
완벽한 모델은 없다.
서울의 방식이 홍성군에 맞지 않고, 홍성군의 방식이 부산에 맞지 않는다.
중요한 건 각자의 조건에 맞는 길을 찾는 것이다.
공통점은 하나다.
시민이 중심이라는 것.
시민이 제안하고,
시민이 실행하며,
시민이 평가한다.
그래서 우리가 만들어갈 도시는 어떤 모습일까?
정답은 없다. 아니, 있어서도 안 된다.
각 도시마다, 각 동네마다 다른 답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방향은 있다.
사람이 중심인 도시. 걸어서 행복한 도시. 이웃을 만날 수 있는 도시.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도시.
다양성이 존중받는 도시. 계속 진화하는 도시.
이런 도시는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만들어가는 것이다. 당신도 그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