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억이 156억이 되는 마법" - 일본 부동산 버블의 실체
닛케이 지수가 38,915엔으로 마감했다. 사상 최고가.
같은 날, 미쓰비시 지소(地所)가 뉴욕 록펠러센터를 2,200억 엔(약 14억 달러)에 매입했다.
"일본이 미국을 사들이고 있다!"
미국 언론이 비명을 질렀다.
그런데 더 충격적인 건 따로 있었다.
도쿄 황궁의 부지 가격이 캘리포니아 주 전체와 맞먹는다는 계산이 나왔다.
미쳤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믿었다. "토지 신화"를.
"일본 땅값은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
18개월 후, 이 신화는 산산조각 났다.
1985년 9월 22일, 플라자 호텔.
G5 재무장관들이 모였다. 의제는 하나. "달러 가치를 떨어뜨리자."
일본이 동의했다.
플라자 합의 결과:
엔화 가치: 1년 만에 50% 상승
1달러 = 240엔 → 120엔 (1986~7년 150엔, 1988년 120엔)
일본 수출: 직격탄
경제가 휘청거렸다.
일본은행의 선택은?
금리 인하.
일본은행 기준금리:
1985년: 5.0%
1987년: 2.5%
역사상 최저 금리.
돈이 넘쳐났다. 그 돈은 어디로 갔을까?
부동산.
여기서부터가 진짜다.
1988년, 도쿄의 한 부동산 개발업자 다나카(가명, 45세).
그가 눈독 들인 땅. 시부야 인근 100평.
다나카의 계산:
토지 가격: 10억 엔 (100억원)
자기 자본: 1억 엔 (10억원, 10%)
필요 자금: 9억 엔 (90억원)
은행에 갔다.
"100억원 땅인데 대출 좀..."
은행 직원이 웃었다.
"120억원까지 가능합니다."
뭐?
LTV 120%의 구조:
토지 담보 평가: 100억원
대출 가능액: 120억원
토지 구입: 100억원
남는 현금: 20억원
20억원이 손에 들어왔다.
이 돈으로 뭘 할까?
설계비, 인허가, 초기 공사비...
건물은? 그것도 대출. PF(Project Financing).
다나카의 프로젝트를 따라가보자.
[기본 가정 - 이후는 이해를 위해 원화로 표시]
토지: 10억 엔 (LTV 120% = 120억원 대출)
건축비: 10억 엔 (공사비 PF 대출)
자기자본: 1억 엔
초기 현금: 3억 엔 (자기자본 10억원 + 토지대출 잉여 20억원)
금리: 2.5% (변동금리)
사업 기간: 32개월
[32개월 타임라인]
Phase 1: 인허가 (1~12개월)
매월 현금 흐름:
토지대출 이자: 2억5천만원 (2.5억원)
토지대출 원금: 4천만원 (0.4억원, 20년 상환)
월 지출: 2억9천만원 (2.9억원)
1개월차: 현금 30억원 → 27.1억
6개월차: 현금 27.1억원 → 12.4억원
12개월차: 현금 12.4억원 → 잔액 3억원
"아직 괜찮아. PF 들어오면 된다."
Phase 2: 착공 (13~24개월)
PF 실행. 기성 공정률에 따라 대출. (공사 완성 진행율)
(실제 PF대출시에는 실제 공정율보다 적은 비율로 지급된다.
예를 들어 50% 공정율이면 45% 지급된다고 생각하면 된다.
계산을 쉽게 하기위해서 단순화했음)
골조 공사 (13~24개월): 12개월 / 공정율 50% 가정
매월 PF 집행: 4.17억원 (50억원 / 12개월)
누적 PF: 50억원 (전체의 50%)
13개월차: 건축공사 1개월차.
PF 잔액: 4.17억원 (4억1700백만운)
PF 이자: 0.009억 (90만원)
토지 원리금: 2.9억원 (2억9천만원)
13개월차 월 지출: 2.909억 (2억9천9십만원)
18개월차: 건축공사 6개월차
PF 잔액: 25억원 (6개월 누적)
PF 이자: 0.052억 (5백2십만원. 6개월 누적)
토지 원리금: 2.9억
18개월 월 지출: 2.952억 (2억9천5백2십만원)
24개월차: 건축공사 12개월차 / 골조공사 완료. 공정율 50%
PF 잔액: 50억원 (12개월차 누적)
PF 이자: 0.104억 (1천4십만원, 12개월차 누적)
토지 원리금: 2.9억
24개월차 월 지출: 3.004억 (3억4십만원)
현금이 바닥나기 시작한다.
Phase 3: 마감 (25~30개월)
외장/마감 (25~30개월): 6개월 / 공정율 100%
매월 PF 집행: 8.33억원 (50억원 / 6개월)
누적 PF: 100억원 (30개월차에)
25개월차: 건축공사 13개월차
PF 잔액: 58.33억 (13개월차 누적)
PF 이자: 0.121억
토지 원리금: 2.9억
25개월차 월 총 지출: 3.021억
30개월차: 건축공사 18개월차
PF 잔액: 100억 (18개월차 누적)
PF 이자: 0.208억
토지 원리금: 2.9억
30개월차 월 총 지출: 3.108억
현금 잔액: 7.5억원
버텼다. 이제 완공이다.
Phase 4: 완공 후 대환대출 혹은 전환대출 (32개월)
건물이 완성됐다.
감정평가를 받는다.
감정평가 결과:
원가: 200억원 (토지 100억원 + 건물 100억원)
거래사례비교법: 원가의 2.75배 (분양 가정시)
원가법: 원가의 1.4배 (가정)
평균 멀티플: 2.075배 (거래사례비교법+원가법 평균)
감정가: 415억원
하지만 토지는 이미 담보다. 건물만 보자.
건물 감정가:
건물 원가: 100억원
멀티플 적용: 100 × 2.075 = 207.5억원
LTV 120% 적용:
대출 가능액: 207.5 × 1.2 = 249억원
PF 상환:
PF 원금: 100억원 (건물 공사비)
상환 후 잔액: 149억원
최종 정산:
대환 현금: 149억원
남은 현금: 7.5억원 (토지 120% 대출. 자기자본 10억+대출후 잔금 20억원)
총 현금: 156.5억원
투자 수익률: 1565%
10억이 156억이 됐다.
"10억이 156억이 되는 마법" 이 일어났다.
이게 가능했다.
다나카만 이런 게 아니었다.
1989년 일본:
도쿄 상업용 부동산: 연 30% 상승
주택 가격: 연 20% 상승
은행 대출: GDP의 100% 돌파
모두가 다나카가 되고 싶었다.
회사원도, 주부도, 심지어 야쿠자도.
당시 유행어:
"돈이 돈을 번다" (카네가 카네오 우무)
"24시간 일할 수 있습니까?" (24지칸 타타카에마스카)
"재테크" (자이테쿠)
NHK 앵커의 증언:
"매일 부동산 투자 성공담이 나왔습니다.
평범한 주부가 아파트 3채를 사서 억만장자가 됐다는 식이죠.
모두가 믿었어요. 이게 영원할 거라고."
일본은행 총재 미에노 야스시(三重野康).
기자회견장에 나타났다.
금리 인상 시작: (BOJ, 1985~1990)
1989년 5월: 2.5% → 3.25% (+0.75%p) - 자이언트 스텝
1989년 10월: 3.25% → 3.75% (+0.5%p) - 빅 스텝
1989년 12월: 3.75% → 4.25% (+0.5%p) - 빅 스텝
1990년 3월: 4.25% → 5.25% (+1.0%p) - 슈퍼 자이언트 스텝
1990년 8월: 5.25% → 6.0% (+0.75%p) - 자이언트 스텝
시장은 처음엔 무시했다.
"일시적일 거야."
다나카와 똑같은 조건. 단, 16개월차부터 금리 상승.
[금리 변화]
1~15개월: 2.5%
16개월: 3.25%
20개월: 4.25%
24개월: 5.25%
28개월: 6.0%
변화된 현금 흐름:
16개월차 (금리 3.25%):
PF 이자: 0.045억 → 0.058억
토지 이자: 2.5억 → 3.25억
월 지출: 2.95억 → 3.71억
24개월차 (금리 5.25%):
PF 이자: 0.104억 → 0.219억
토지 이자: 2.5억 → 5.25억
월 지출: 3.0억 → 5.47억
30개월차 (금리 6.0%):
PF 이자: 0.208억 → 0.5억
토지 이자: 2.5억 → 6.0억
월 지출: 3.1억 → 6.5억
현금 잔액: -15억원
마이너스다.
추가 자금이 필요하다.
은행에 갔다.
"추가 대출이 필요합니다."
"죄송합니다. 더 이상은..."
다나카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1990년 1월 4일
닛케이 지수 첫 거래.
전일 대비 -202엔.
"조정이겠지."
1990년 3월
대장성(재무부) 발표: "부동산 관련 대출 총량 규제"
은행들이 대출을 멈췄다.
1990년 10월
닛케이 20,000엔 붕괴. (-48%)
1년도 안 돼 반토막.
1991년
도쿄 상업용 부동산: -20% 주택 가격: -15%
다나카의 건물도 마찬가지.
재평가:
기존 감정가: 415억원
1년 후: 332억원 (-20%)
대출 잔액: 220억원
LTV: 66% → 83%
아직은 버틸만하다?
1992년
추가 하락 -30%.
감정가: 232억 엔 대출 잔액: 220억 엔 LTV: 95%
위험 수위.
1993년
감정가: 180억 엔 대출 잔액: 220억 엔 LTV: 122%
끝났다.
다나카는 파산했다.
그만이 아니었다.
부실 규모(추정치):(1990년대 후반 IMF·OECD 기준)
부동산 대출: 100조 엔
부실 채권: 40조 엔
GDP 대비: 10%
은행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주요 은행 파산:
1997년 11월: 홋카이도 타쿠쇼쿠 은행 (파산) (자산규모 전국 10위권)
1998년 10월: 일본장기신용은행 (국유화)
1999년 12월: 일본채권신용은행 (국유화)
금융 시스템이 마비됐다.
기업이 돈을 못 빌린다. 투자가 멈춘다. 고용이 줄어든다. 소비가 죽는다.
디플레이션 시작: (IMF WEO Database 2023)
1995년: -0.1%
1998년: -0.3%
1999년: -0.3%
2000년: -0.7%
2001년: -0.7%
물가가 떨어진다. 빚의 실질 가치는 올라간다. 더 갚기 어려워진다.
악순환.
이게 30년 계속됐다. 이게 잃어버린 30년의 시작과 실체다.
일본 버블의 핵심은 뭐였나?
1. LTV 120%
자기 돈 없이 사업이 가능했다. 감정가 이상 LTV 120%, 대출이 빈번했다.
리스크? 그런 거 없다. 모두가 투기꾼이 됐다.
2. 금융감독 부재
LTV 규제? 없었다. DTI? 몰랐다. 리스크 관리? 그게 뭔데?
-1998년 6월: 금융감독청(금감청, Financial Supervisory Agency) 신설.
-2000년 7월: 금융감독청이 확대·개편되어 현재의 금융청(FSA, Financial Services Agency) 출범.
3. 변동금리 + 일시상환
금리 오르면? 이자 폭증. 원금 상환? 나중에. 나중은 언제? 모른다.
4. 획일적 대응
버블 잡는다고 금리만 올렸다. 수술이 필요한데 폭탄을 터뜨렸다. 결과? 30년 혼수상태.
"한국도 일본처럼 된다?"
한국의 현실:
LTV: 최대 70% (투기지역 40%)
DTI: 소득 대비 상환액 제한
DSR: 모든 빚 합산 관리
고정금리 비중: 증가 추세
결정적 차이:
일본: 자기 돈 0원 → 200억 사업
한국: 자기 돈 30% 이상 필수
일본: 이자만 내면 OK (일부)
한국: 원리금 균등상환 의무
일본: 금융감독 없음 (일본 버블당시)
한국: 금감원이 숨통 조절
구조가 다르다.
따라서 결과도 다르다.
하지만, 방심하면 안 된다.
한국에도 구멍이 있다.
한국의 취약점:
전세 레버리지
갭투자
PF 대출 부실화
가계부채 GDP 대비 105%
일본과 다른 방식의 위험이다.
버블은 반복되지만, 형태는 항상 다르다.
다음 편에서는 미국 서브프라임을 해부한다.
그리고 한국만의 독특한 리스크를 파헤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