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 7.7

소설 도시는 배우지 않는다. 2장: 구청의 형광등

by 마나월드ManaWorld
main.png 1부 2장: 구청의 형광등


다음 날. 오후 한 시 오십분.

미래구청. 3층. 도시재생본부.

정민은 복도를 걸었다.

발소리가 났다. 구두 소리. 딱. 딱. 딱. 바닥이 왁스로 닦여 있었다.

반짝거렸다. 형광등 빛이 반사되고 있었다. 눈이 부셨다.

복도가 길었다. 양쪽에 문이 있었다. 닫혀 있었다.

문마다 명패가 붙어 있었다. 플라스틱. 흰 바탕에 검은 글씨.

‘도시계획과’‘건축허가과’‘재생사업1팀’‘재생사업2팀’

정민은 명패들을 지나쳤다. 읽지 않았다. 다 아는 이름들이었다.

복도 끝에 문이 있었다.

‘대회의실’

정민은 문 앞에서 멈췄다.

손목시계를 보았다.

1시 53분. 7분 남았다.

숨을 들이쉬었다. 내쉬었다.

문을 밀었다.




안에 사람이 있었다.

회의실이 넓었다. 창문이 컸다. 햇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런데도 형광등이 켜져 있었다.

윙. 소리가 났다. 낮고 고른 소리.

테이블이 하나 있었다. 긴 것. 10명쯤 앉을 수 있는.

나무 아니었다. 합성 재질. 표면이 매끄러웠다.

한쪽에 세 명이 앉아 있었다.

미정. 정민과 같은 팀. 노트북을 열고 있었다.

화면에 파란 빛. 뭔가 타이핑하고 있었다.

동욱. 건물주협의회 대표. 양복을 입고 있었다.

회색. 넥타이가 비뚤어져 있었다. 본인은 모르는 것 같았다.

그리고 하린.

어제 카페에서 본 얼굴. 오늘은 앞치마가 없었다.

청바지에 니트. 베이지색. 손에 서류를 들고 있었다. 어제 그 서류철. 낡은 것.

정민은 빈자리에 앉았다. 테이블 맞은편. 하린과 마주 보는 자리.

하린이 정민을 보았다. 눈이 마주쳤다. 2초. 하린이 먼저 시선을 거뒀다.

표정이 없었다.


문이 열렸다.

김 팀장이 들어왔다.

오십 대. 머리가 희끗희끗했다.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파란색. 단정했다.

서류 폴더를 들고 있었다. 두꺼웠다.

“시작하죠.”

자리에 앉았다. 테이블 상석.

미정이 노트북을 돌렸다. 벽에 스크린이 있었다.

하얀 것. 빔프로젝터가 천장에 달려 있었다. 화면이 떴다.

‘상생협약 3년차 평가 보고’

정민이 만든 자료였다.

정민은 자료 표지를 보았다.

자기가 만든 것. 어젯밤에 수정한 것.

새벽 두 시까지. 숫자를 확인하고. 그래프를 다듬고.


“현황부터.”

김 팀장이 말했다.

정민이 일어섰다.

스크린 옆에 섰다. 리모컨을 들었다.

“3년 전 체결 당시 참여 업체 47개.”

슬라이드가 바뀌었다. 숫자가 떴다. 파란 막대그래프.

“현재 유지 21개. 이탈 26개.”

막대그래프가 움직였다. 애니메이션. 47에서 21로 줄어드는.

“유지율 44.7%입니다.”

숫자가 화면 가운데 떴다. 빨간색. 크게.

44.7%

절반도 안 됐다.

동욱이 고개를 저었다. 혀를 찼다. 쯧.

“절반도 안 되네.”

“네.”

정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탈 사유 분석입니다.”

슬라이드가 바뀌었다. 원그래프가 떴다.

“임대료 상승 61.5%.”

가장 큰 조각. 빨간색.

“매출 부진 19.2%.”

두 번째 조각. 주황색.

“건강 및 가정 사정 11.5%.”

세 번째 조각. 노란색.

“기타 개인 사정 7.7%.”

가장 작은 조각. 회색.

정민은 리모컨을 내렸다.

손가락이 버튼 위에 있었다. 움직이지 않았다.


하린이 손을 들었다.

“질문 있어요.”

정민이 하린을 보았다.

하린이 서류를 들어 보였다. 어제 그 서류철에서 뺀 종이. 한 장.

“이탈 사유 조사서요. 이거.”

“네.”

“여기 선택지가 네 개잖아요.”

하린이 종이를 읽었다.

“1번. 임대료 상승.

2번. 매출 부진.

3번. 건강 및 가정 사정.

4번. 기타 개인 사정.”

종이를 내렸다.

“그럼 복잡한 이유는요?”

정민의 손가락이 리모컨 버튼 위에서 멈췄다.

하린이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임대료도 올랐고, 매출도 떨어졌고,

몸도 안 좋은 사람은요. 어디 체크해요?”

“…”

“세 개 다 해당되는 사람은요?”

“…”

“한 개만 골라야 하잖아요. 이 조사서.”

정민이 입을 열었다.

“복수 선택이 안 되는 건-”

“알아요. 통계 처리 때문이라고 하셨잖아요. 3년 전에.”

하린이 종이를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탁. 소리가 났다.

“그럼 복잡한 이유는 어디로 가요?”

정민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린이 화면을 가리켰다. 원그래프. 가장 작은 조각.

“기타요. 기타 개인 사정.”

“…”

“편하죠. 그 칸이. 뭐든 넣을 수 있으니까.”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형광등이 윙 소리를 냈다. 그 소리만 들렸다.


정민은 화면을 보았다.

‘기타 개인 사정 7.7%’

저 항목을 만든 건 자기였다.

4년 전. 상생협약 처음 만들 때.

이탈 사유 분류가 필요했다. 회의를 했다.

김 팀장이 물었다. “이탈 사유 어떻게 분류할 거야?”

정민이 대답했다. “임대료, 매출, 건강, 가정으로 나누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거기 안 들어가는 것도 있었다.

분류가 안 되는 것. 복잡한 것. 한마디로 정리 안 되는 것.

그래서 만들었다. ‘기타 개인 사정’.

편했다. 그 칸이. 복잡한 걸 안 풀어도 되니까.

분석 안 해도 되니까. 그냥 거기 넣으면 되니까.

저 문구, 내가 만들었지.

정민은 시선을 내렸다. 테이블 위에 손이 있었다.

자기 손. 리모컨을 쥐고 있었다.

손가락이 하얘져 있었다. 너무 세게 쥐고 있었다.

손에 힘을 뺐다.


동욱이 손을 들었다.

“제가 말해도 되겠습니까?”

김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욱이 일어섰다. 양복 단추를 풀었다.

“건물주 입장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테이블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미정. 정민. 하린. 김 팀장.

“협약이 건물주한테 뭘 줬습니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세금 혜택이요? 재산세 1.5% 감면. 그게 다예요.”

동욱이 손가락을 펴 보였다. 하나.

“1.5%. 한 달에 몇 만 원. 그걸로 뭘 합니까.”

손가락을 내렸다.

“임대료 동결하면 손해가 얼마인 줄 아세요?

5년 동결이면 20~30% 손해예요.

물가 상승, 금리 상승, 다 감안하면.”

“…”

“1.5%로 20% 손해를 메꿀 수 있습니까?”

하린이 말했다.

“그래서 안 하시겠다는 거죠.”

“당연하죠.”

동욱이 하린을 보았다.

“저도 먹고살아야죠.

건물주라고 봉사자예요? 자선사업가예요?”

하린이 대답하지 않았다. 입술을 다물고 있었다. 꽉.

동욱이 김 팀장을 보았다.

“우리 협의회는 다음 기수 협약 불참입니다.

공식적으로 통보드립니다.”

서류를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탁.

“여기 협의회 의결서 있습니다. 전원 동의.”


회의가 끝났다.

두 시 사십분.

사람들이 일어났다. 서류를 챙겼다. 나갔다.

동욱이 먼저 나갔다. 양복 단추를 잠그며.

미정이 나갔다. “정민 씨, 수고했어.” 어깨를 한 번 두드리고.

김 팀장이 나갔다. 아무 말 없이.

정민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노트북이 열려 있었다. 화면에 원그래프가 떠 있었다. ‘기타 개인 사정 7.7%’.

마우스를 움직였다. 커서가 그 항목 위에 멈췄다. 회색 조각.

손가락이 터치패드 위에 있었다. 움직이지 않았다.


“정민 씨.”

고개를 들었다.

하린이 문 앞에 서 있었다. 나가려다 멈춘 것 같았다.

“그 항목이요.”

“네.”

“저도 거기 들어가는 거죠?”

정민은 노트북 모서리를 잡았다.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하린이 한 발 다가왔다. 테이블 끝에 손을 올렸다.

“임대료 올라서 나가는 거. 그것도 기타 개인 사정이잖아요.”

“…”

“월세 72 못 내서 문 닫는 거. 그것도 개인 사정이고.”

“…”

“제 삶이 7.7%인 거네요.”

정민은 노트북을 닫았다. 화면이 꺼졌다. 검은 화면.

“네.”

“뭐가 네예요.”

“맞아요. 거기 들어가요.”

하린이 웃었다. 웃음 같지 않았다.

입꼬리만 올라갔다가 내려갔다.


하린이 문을 잡았다. 문고리.

“함께요.”

“네?”

“함께 간다고 했잖아요. 3년 전에. 상생. 협약. 함께.”

정민은 하린을 보았다.

하린의 손이 문고리를 잡고 있었다.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관절이 하얘져 있었다.

“근데 함께 간 사람이 절반도 안 남았어요.”

문을 열었다.

“함께가 이렇게 외로운 단어였나.”

나갔다.

문이 닫혔다.




정민은 회의실에 혼자 앉아 있었다.

형광등이 윙 소리를 냈다. 고르지 않았다.

한쪽 형광등이 깜빡였다. 불규칙하게.

창밖에 햇빛이 있었다. 오후 햇빛. 밝았다.

회의실은 어두웠다. 형광등이 켜져 있는데도.

정민은 테이블 위에 손을 올렸다.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한 번 두드렸다.

톡.

소리가 났다. 작은 소리. 울리지 않는 소리.

그것뿐이었다.


정민은 일어섰다.

노트북을 가방에 넣었다. 서류를 챙겼다.

문 쪽으로 걸었다.

문 앞에서 멈췄다.

뒤를 돌아보았다.

빈 회의실. 긴 테이블. 빈 의자들. 형광등 불빛. 깜빡이는 것.

화면이 꺼진 스크린.

정민은 문을 열었다.

나갔다.

복도를 걸었다.

형광등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반짝거렸다. 발소리가 울렸다. 딱. 딱. 딱.

같은 소리. 매일 같은 소리. 매년 같은 소리.


-계속-



“제 삶이 7.7%인 거네요.”

“함께가 이렇게 외로운 단어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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