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도시는 배우지 않는다. 4장: 행정의 심장
1월 28일. 목요일.
정민은 구청에 도착했다. 오전 여덟 시 사십분.
4층. 도시재생과.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복도를 걸었다. 형광등이 켜져 있었다.
아직 사람이 별로 없었다.
사무실 문을 열었다.
안으로 들어갔다.
책상 스물네 개. 절반은 비어 있었다. 이른 시간이니까.
정민 자리. 창가 쪽. 네 번째 줄.
앉았다.
컴퓨터를 켰다.
화면이 떴다. 바탕화면. 폴더들.
‘상생협약_3년차_평가보고서_v7.xlsx’
어제 작업하던 파일.
정민은 화면을 봤다.
v7.
일곱 번째 수정본.
첫 번째 버전은 2주 전이었다. 그때부터 계속 고쳤다.
팀장 피드백. 과장 피드백. 또 고치고. 또 고치고.
파일을 열었다.
엑셀 화면.
표. 행과 열. 숫자들.
‘상생협약 체결 업소 현황’
‘최초 체결: 47개소’
‘현재 유지: 21개소’
‘이탈: 26개소’
‘유지율: 44.7%’
정민은 숫자를 봤다.
44.7.
47개 중 21개.
절반도 안 남았다.
스크롤을 내렸다.
‘이탈 사유 분석’
‘임대료 인상: 16개소 (61.5%)’
‘매출 감소: 5개소 (19.2%)’
‘건강/가정 사유: 3개소 (11.5%)’
‘기타 개인 사정: 2개소 (7.7%)’
정민은 '기타 개인 사정’에서 멈췄다.
7.7%.
2개 업소.
뭐가 '기타’일까.
왜 떠났을까.
서류에는 안 나와 있었다. '기타’라고만 되어 있었다.
정민이 마우스를 움직였다.
커서가 ‘44.7%’ 위에 멈췄다.
“정민 씨.”
목소리.
정민이 고개를 들었다.
박 팀장. 오십대 초반.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커피를 들고 있었다.
“보고서 다 됐어요?”
“거의요. 마지막 검토 중이에요.”
박 팀장이 정민 옆으로 왔다.
화면을 봤다.
“44.7%.”
“네.”
“…”
박 팀장이 커피를 마셨다. 한 모금.
“이거 이대로 올려요?”
정민이 박 팀장을 봤다.
“네?”
“44.7%. 이 숫자.”
“… 네. 실제 수치니까요.”
박 팀장이 화면을 봤다.
“45%로 하면 안 돼요?”
정민이 입을 다물었다.
“반올림이잖아. 44.7이면 45 아니에요?”
“…”
“45%가 보기 좋아요. 절반은 아니지만, 거의 절반. 그렇게 읽히잖아.”
정민은 대답하지 못했다.
박 팀장이 커피를 마셨다.
“아니면 47.7%로 해요.”
“네?”
“이탈 사유 있잖아. ‘기타 개인 사정’ 2개.”
“…”
“그거 빼면 돼요. 개인 사정은 협약 문제가 아니잖아. 본인 사정이잖아.”
정민이 화면을 봤다.
‘기타 개인 사정: 2개소 (7.7%)’
“그거 빼면 유지율 47.7%. 거의 절반. 훨씬 좋아 보여요.”
박 팀장이 정민 어깨를 가볍게 쳤다.
“생각해 봐요.”
걸어갔다.
자기 자리로.
정민은 화면을 봤다.
‘유지율: 44.7%’
커서가 깜빡였다.
마우스를 움직였다.
'44.7’을 선택했다.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 있었다.
'45’를 누르면 됐다.
두 글자.
누르면 끝.
정민은 키보드를 봤다.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다.
하린의 목소리가 들렸다.
“협약에 법적 구속력은 없습니다. 그러더라고요.”
“다들 그래요. 죄송하다고. 근데 아무것도 안 바뀌어요.”
하린의 목소리.
“기타 개인 사정이요? 그게 제 사연이에요.”
“100% 삶이에요. 누구 거 아닌 내 삶.”
정민은 손을 뗐다. 키보드에서.
선택을 해제했다.
44.7.
그대로.
파일을 저장했다.
‘상생협약_3년차_평가보고서_v7_final.xlsx’
정민은 파일명을 봤다.
‘v7_final.’
final.
이게 마지막일까.
또 수정하라고 하면?
45로 바꾸라고 하면?
47.7로 바꾸라고 하면?
정민은 화면을 봤다.
폴더 안.
‘v1.xlsx’
‘v2.xlsx’
‘v3_수정.xlsx’
‘v4_과장검토.xlsx’
‘v5_재수정.xlsx’
‘v6_최종.xlsx’
‘v7_final.xlsx’
일곱 개.
2주 동안 일곱 번.
매번 조금씩 바뀌었다.
문장이 바뀌고. 표현이 바뀌고. 숫자 위치가 바뀌고.
핵심은 안 바뀌었다.
44.7%.
절반도 안 남았다.
그건 바뀌지 않았다.
열두 시.
점심시간.
정민은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책상에 앉아 있었다.
편의점 삼각김밥. 두 개. 커피. 캔커피.
삼각김밥을 먹었다. 참치마요.
씹었다. 삼켰다.
맛이 없었다. 맛을 모르겠었다.
화면을 봤다.
‘v7_final.xlsx’
열려 있었다.
44.7.
커서가 깜빡였다.
창밖을 봤다.
구청 4층.
맞은편 건물. 유리 건물. 새 건물. 미래구 재개발 사업으로 지어진 건물.
아래로 마나교가 보였다. 멀리.
하림지구는 보이지 않았다.
“정민아.”
목소리.
정민이 고개를 들었다.
미정. 같은 과 동기. 옆자리.
점심 봉투를 들고 있었다. 샌드위치. 주스.
“밥 안 먹었어?”
“먹었어. 삼각김밥.”
“그걸 밥이라고.”
미정이 자기 자리에 앉았다.
샌드위치를 꺼냈다. 먹기 시작했다.
정민은 화면을 봤다.
“야.”
미정이 말했다. 씹으면서.
“너 요즘 얼굴 안 좋아.”
“…”
“평가회의 때문이야?”
정민이 대답하지 않았다.
미정이 샌드위치를 삼켰다.
“팀장이 뭐라고 했어?”
“…”
“숫자 올리래?”
정민이 미정을 봤다.
미정이 어깨를 으쓱했다.
“다 알아. 맨날 그러잖아.”
주스를 마셨다.
“작년에 나도 그랬어. 환경정화사업 보고서. 참여율 38%였는데 40%로 올리래.”
“…”
“올렸어?”
미정이 정민을 봤다.
“올렸지. 뭐.”
샌드위치를 베어 물었다.
“안 올리면 어떻게 돼. 계속 수정하라고 하지.”
미정이 샌드위치를 다 먹었다.
봉투를 버렸다.
“야, 너 이거 봤어?”
휴대폰을 꺼냈다. 화면을 보여줬다.
메일.
‘해외 도시운영 연수 파견 프로그램 참가자 모집 (6주)’
정민이 화면을 봤다.
“뭐야 이거.”
“행안부에서 온 거. 오늘 아침에.”
미정이 스크롤을 내렸다.
“독일, 일본, 대만. 외 추가 연구도시 6주 파견. 도시재생 선진 사례 연수.”
“…”
“프라이부르크, 도야마, 타이베이.일단 이 세 도시래.”
정민이 화면을 봤다.
프라이부르크. 독일. 환경수도. 들어본 적 있었다.
도야마. 일본. 콤팩트시티. 책에서 읽었다.
타이베이. 대만. 도시재생. 뭔가 하고 있다고 들었다.
“너 가봐.”
미정이 말했다.
정민이 미정을 봤다.
“뭐?”
“파견. 신청해 봐.”
“갑자기 왜.”
미정이 휴대폰을 내렸다.
정민을 봤다.
“너 여기서 계속 이럴 거야?”
“…”
“44.7을 45로 바꿀지 말지 고민하면서?”
정민은 대답하지 못했다.
미정이 한숨을 쉬었다.
“나도 가고 싶은데. 경력이 안 돼. 5년 이상이래.”
“…”
“너 7년 차잖아.”
정민이 화면을 봤다.
‘해외 도시운영 연수 파견 프로그램’
‘자격요건: 도시재생 관련 업무 5년 이상’
7년.
하림지구에서 7년.
“가서 뭘 배워와.”
미정이 말했다.
“다른 도시들은 어떻게 하는지.”
정민은 화면을 봤다.
오후.
정민은 일을 했다.
메일을 확인했다. 서류를 검토했다. 전화를 받았다.
손은 움직였다.
머리는 다른 데 있었다.
“다른 도시들은 어떻게 하는지.”
미정의 말.
“가서 뭘 배워와.”
프라이부르크. 도야마. 타이베이.
그 도시들은 어떻게 했을까.
상생협약 같은 게 있을까.
있으면 유지율이 얼마일까.
44.7%보다 높을까.
높으면 왜 높을까.
뭐가 다를까.
정민은 창밖을 봤다.
해가 기울고 있었다.
오후 여섯 시.
퇴근 시간.
정민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사람들이 하나둘 나갔다. 인사를 하고. 가방을 들고.
미정이 지나갔다.
“나 먼저 간다.”
“응.”
“파견 생각해 봐. 진짜로.”
미정이 나갔다.
사무실이 조용해졌다.
정민은 화면을 봤다.
‘v7_final.xlsx’
44.7.
저장되어 있었다.
내일 평가회의.
이 숫자로 보고하면.
팀장이 뭐라고 할까.
과장이 뭐라고 할까.
45로 바꾸라고 할까.
바꾸면?
바꾸면 뭐가 달라질까.
숫자가 달라진다.
그래서?
하림지구가 달라지나.
하린이 달라지나.
임대료가 내려가나.
아무것도 안 달라진다.
정민은 컴퓨터를 끄지 않았다.
메일함을 열었다.
‘해외 도시운영 연수 파견 프로그램 참가자 모집’
열었다.
읽었다.
정민은 메일을 읽었다.
‘파견 기간: 6주’
‘파견 도시: 프라이부르크(독일) / 도야마(일본) / 타이베이(대만)’ 외 추가 연구 도시'
‘연수 내용: 도시재생 정책 현장 연구, 사례 수집, 보고서 작성’
‘자격요건: 관련 업무 5년 이상’
‘신청 마감: 2월 3일’
1월 30일.
4일 남았다.
정민은 화면을 봤다.
스크롤을 내렸다.
‘신청서 양식’
첨부파일.
클릭했다. 다운로드.
파일이 열렸다.
‘해외 파견 신청서’
‘소속:’
‘성명:’
‘경력:’
‘지원 동기:’
정민은 '지원 동기’에서 멈췄다.
커서가 깜빡였다.
왜 가고 싶은가.
뭘 배우고 싶은가.
정민은 창밖을 봤다.
어두워지고 있었다.
구청 맞은편 건물. 불이 켜져 있었다.
마나교. 불빛이 반짝였다.
하림지구는 보이지 않았다.
왜 가고 싶은가.
손이 키보드 위에 있었다.
적었다.
‘7년간 도시재생 업무를 담당하며, 정책과 현장의 괴리를 느꼈습니다.’
멈췄다.
지웠다.
적었다.
‘상생협약 3년차를 맞아, 44.7%라는 유지율 앞에서 질문이 생겼습니다.’
멈췰다.
지웠다.
적었다.
‘다른 도시들은 어떻게 배우는지 알고 싶습니다.’
멈췄다.
봤다.
‘다른 도시들은 어떻게 배우는지 알고 싶습니다.’
지우지 않았다.
정민은 화면을 봤다.
하린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들 그래요. 죄송하다고. 근데 아무것도 안 바뀌어요.”
죄송하다고 했다.
7년 동안.
바뀐 게 없었다.
47개가 21개가 됐다.
김씨 철물점이 문을 닫았다.
프래그먼트가 문을 닫으려 한다.
정민이 뭘 했나.
보고서를 썼다.
숫자를 집계했다.
회의에 참석했다.
죄송하다고 했다.
그래서?
44.7%.
정민은 키보드를 봤다.
‘다른 도시들은 어떻게 배우는지 알고 싶습니다.’
적었다.
‘이 도시가 왜 배우지 않는지 알고 싶습니다.’
적었다.
‘돌아와서, 뭔가 다르게 해보고 싶습니다.’
정민은 신청서를 봤다.
‘소속: 마나시 도시재생과’
‘성명: 서정민’
‘경력: 7년’
‘지원 동기:’
‘다른 도시들은 어떻게 배우는지 알고 싶습니다.’
‘이 도시가 왜 배우지 않는지 알고 싶습니다.’
‘돌아와서, 뭔가 다르게 해보고 싶습니다.’
파일을 저장했다.
‘파견신청서_서정민.docx’
정민은 화면을 봤다.
옆에 다른 파일이 있었다.
‘상생협약_3년차_평가보고서_v7_final.xlsx’
두 개의 파일.
44.7%.
파견 신청서.
정민은 둘 다 봤다.
컴퓨터를 껐다.
일어났다.
가방을 들었다.
사무실이 비어 있었다. 혼자였다.
형광등이 윙윙거렸다.
나갔다.
복도. 엘리베이터. 1층. 현관.
밖으로 나왔다.
밤이었다.
차가웠다. 1월 밤공기.
버스 정류장으로 걸었다.
버스를 기다렸다.
휴대폰을 꺼냈다.
메시지.
하린: 내일 회의 잘 되길 바랍니다.
정민이 화면을 봤다.
하린.
엊그제 번호를 교환했다. 실태조사 때.
답장을 적었다.
정민: 감사합니다.
멈췄다.
적었다.
정민: 저, 파견 신청하려고요.
정민: 해외로. 6주.
정민: 다른 도시들 보고 오려고요.
보냈다.
버스가 왔다.
탔다.
버스 안.
창가에 앉았다.
버스가 출발했다.
휴대폰이 울렸다.
하린: 해외요?
정민: 네. 독일, 일본, 대만.
정민: 도시재생 사례 연수래요.
하린: …
하린: 거기 가면 뭐가 달라져요?
정민이 화면을 봤다.
뭐가 달라져요?
적었다.
정민: 모르겠어요.
정민: 근데 여기 있으면 아무것도 안 달라지는 건 알아요.
하린: …
하린: 그렇죠.
하린: 여기 있으면 아무것도 안 달라지죠.
버스가 마나교를 건넜다.
창밖으로 물이 보였다. 검은 물. 가로등 불빛.
하린: 가서 뭐 보고 오실 건데요?
정민: 다른 도시들이 어떻게 하는지.
정민: 왜 그렇게 하게 됐는지.
정민: 뭘 보고 바뀌기로 했는지.
하린: …
하린: 그거 알면 뭐가 달라질까요.
정민: 모르겠어요.
정민: 근데 알아야 할 것 같아요.
정민: 알아야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창밖을 봤다.
하림지구가 멀리 보였다. 어둠 속에.
하린: …
하린: 가세요.
하린: 가서 뭐라도 보고 오세요.
하린: 기다릴게요.
집에 도착했다.
원룸. 미래구 외곽. 7층. 전용 7평.
문을 열었다. 불을 켰다.
책상 위.
서류들. 메모들.
장판 조각.
진옥이네 손칼국수. 40년 전 장판. 꽃무늬.
정민은 장판을 손으로 만졌다.
표면이 거칠었다. 닳아 있었다.
이 조각을 주운 날.
철거 현장. 새벽. 포클레인이 오기 전.
무릎을 꿇고 바닥에서 뜯어냈다.
왜 주웠을까.
몰랐다.
지금은 조금 알 것 같았다.
사라지는 것들.
기록해야 했다.
가져가야 했다.
정민은 장판을 내려놓았다.
휴대폰을 꺼냈다.
메일함을 열었다.
‘파견신청서_서정민.docx’
‘다른 도시들은 어떻게 배우는지 알고 싶습니다.’
‘이 도시가 왜 배우지 않는지 알고 싶습니다.’
‘돌아와서, 뭔가 다르게 해보고 싶습니다.’
이렇게 보냈었다.
정민은 창밖을 봤다.
미래구의 불빛이 반짝였다.
하림지구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거기 있었다.
다리 건너. 어둠 속에.
하린이 거기 있었다.
기다린다고 했다.
6주.
돌아오면.
뭔가 달라질 수 있을까.
모른다.
모르니까 가는 거다.
정민은 불을 껐다.
-계속-
[ 정민은 손을 뗐다. 키보드에서. ]
"이 도시가 왜 배우지 않는지 알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