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 반올림

소설 도시는 배우지 않는다. 5장: 불 꺼지는 카페

by 마나월드ManaWorld
main.png 1부 5장: 불 꺼지는 카페

3월 17일. 저녁 여섯 시.

하림지구. 카페 프래그먼트.

정민은 문 앞에 서 있었다.

해가 지고 있었다. 하늘이 주황색이었다.

건물 사이로 햇빛이 비스듬히 들어왔다.

골목에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 있었다.

유리문 너머로 안이 보였다.

하린이 움직이고 있었다. 천천히.

테이블을 닦고 있었다. 행주로.

의자를 올리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 다리가 위를 향하게.

마지막 정리.

오늘이 마지막 영업일이었다.

협약 만료일. 임대료 인상 시행일.

내일부터 이 자리는 공실이 된다.

정민은 문을 밀었다.

풍경 소리가 났다. 딸랑. 작고 낮은 소리.



하린이 고개를 돌렸다.

정민을 보았다.

표정이 없었다. 놀라지 않았다.

예상했다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봤다.

“닫았는데요.”

“알아요.”

정민은 안으로 들어섰다. 문이 닫혔다.

풍경이 다시 한번 흔들렸다. 작은 소리.

“커피 안 돼요. 기계 정리했어요.”

“괜찮아요.”

하린은 정민을 2초쯤 보았다.

시선을 거뒀다. 다시 테이블을 닦았다.

정민은 카운터 쪽으로 걸었다.


카운터 옆에 박스가 있었다.

세 개. 테이프로 봉해진 것. 갈색 박스.

박스에 글씨가 적혀 있었다. 매직으로. 하린의 글씨.

‘컵/소서’‘도구류’‘장부/서류’

세 박스가 하린의 3년이었다.

정민은 박스를 보았다. 테이프가 붙어 있었다. 투명 테이프.

그런데 ‘장부/서류’ 박스는 테이프가 한쪽에서 떨어져 있었다.

모서리가 벌어져 있었다.

카운터 뒤 선반을 보았다. 어제 왔을 때 있던 것들이 없었다.

컵들. 원두통들. 작은 화분. 다 사라져 있었다.

선반이 비어 있었다.

그 대신 먼지 자국이 있었다. 물건이 있던 자리.

동그란 것. 네모난 것.

3년 동안 같은 자리에 있던 물건들의 흔적.


벽에 걸린 것이 있었다.

액자. 작은 것. A5 크기쯤.

액자 안에 종이가 있었다.

하린이 직접 쓴 것 같았다. 손글씨.

‘프래그먼트’‘조각이 모여 전체가 된다’‘2022.04 ~’

끝 날짜가 비어 있었다.

정민은 그 빈자리를 보았다.


하린이 테이블 닦는 것을 멈추었다.

행주를 내려놓았다. 테이블 위에.

카운터 쪽으로 왔다. 천천히. 정민 맞은편에 섰다.

두 사람 사이에 카운터가 있었다. 나무 카운터.

3년 동안 닦아서 반질반질한 것.

모서리에 흠집이 있었다.

하린이 처음 이야기했던 그 흠집.

“뭐 하러 온 거예요.”

하린의 목소리가 낮았다. 평평했다. 감정이 없는 것 같았다.

아니, 감정을 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

“마지막이라서요.”

“뭐가요.”

“여기.”

하린은 웃지 않았다. 표정이 없었다.

“마지막 맞아요. 근데 그게 정민 씨한테 무슨 의미가 있어요.”

정민은 대답하지 않았다.

손을 카운터 위에 올렸다. 나무가 차가웠다. 반질반질했다.


정민은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테이프 롤.

작은 것. 투명 테이프. 새것.

카운터 위에 올렸다.

“이거요.”

하린이 테이프를 보았다.

“뭐예요.”

“테이프요.”

“알아요. 왜요.”

정민이 카운터 옆 박스를 가리켰다. ‘장부/서류’ 박스.

테이프가 떨어진 것.

“저거. 안 붙어 있어서요.”

하린은 박스를 보았다. 테이프가 떨어진 모서리를.

정민은 박스 앞으로 갔다. 무릎을 꿇었다.

테이프를 뜯었다. 끝을 잡고 당겼다.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치직. 박스 모서리에 붙였다. 손바닥으로 눌렀다. 단단하게.

일어섰다.

하린은 말이 없었다. 정민을 보고 있었다.

“이사하려면 박스가 튼튼해야 하니까요.”

하린이 테이프 롤을 집었다. 손에 들었다. 가벼웠다.

“고마워요.”

목소리가 낮았다. 거의 들리지 않았다.


정민은 주머니에서 다른 것을 꺼냈다.

장판 조각.

손가락 세 개 크기. 꽃무늬. 색이 바랬다. 모서리가 닳았다.

카운터 위에 올렸다. 테이프 옆에.

하린이 그것을 보았다.

“그건 뭐예요.”

“철거지에서 주웠어요.”

“어디요?”

“김씨네 철물. 4블록에 있던 데.”

“알아요. 거기.”

하린이 장판 조각을 보았다. 손을 뻗지 않았다.

“거기 바닥에 있던 거예요. 40년 됐대요.”

“…”

“주인 아저씨가 줬어요. 가져가래요. 어차피 버릴 거라고.”

하린은 장판 조각을 보았다. 꽃무늬를. 바랜 색을.

“왜 나한테요.”

“어디 붙이세요.”

“뭐예요. 갑자기.”

정민은 장판 조각을 손가락으로 밀었다. 하린 쪽으로. 조금.

“붙일 데 있으면 붙이세요.”


하린이 카운터 뒤로 갔다.

선반 아래 서랍을 열었다.

뭔가를 꺼냈다.

장부. 낡은 것. 표지가 해어져 있었다.

모서리가 찢어져 있었다. 갈색 표지.

카운터 위에 올렸다.

“이거요.”

장부를 펼쳤다.

“개업 때부터 쓰던 거예요. 매출 장부.”

페이지가 넘어갔다. 숫자가 빼곡했다. 날짜별로. 손글씨로.

“첫 달이요.”

손가락으로 숫자를 짚었다.

“182만원.”

페이지를 넘겼다.

“1년 지나니까 300 됐어요.”

페이지를 넘겼다.

“2년 차에 400.”

페이지를 넘겼다.

“3년 차. 420.”

멈췄다.

“근데 월세가 45에서 55 됐어요. 2년 차에.”

“…”

“그래도 괜찮았어요. 420이면 55 내고도 남으니까.”

장부를 닫았다.

“근데 내년부터 72예요.”

“…”

“420에서 72 빼고. 원두값 빼고.

전기세 빼고. 인건비 빼고. 남는 게 없어요.”

하린이 장부 표지를 보았다. 찢어진 모서리를.

“그래서 접는 거예요.”


정민은 장부 표지를 보았다.

모서리가 찢어져 있었다. 오래된 것. 닳아서 찢어진 것.

“거기요.”

“네?”

“찢어진 데.”

정민이 장판 조각을 가리켰다.

“거기 붙이세요.”

하린이 장판 조각을 보았다. 장부 표지를 보았다. 다시 장판 조각을 보았다.

“이상하잖아요. 장판을 장부에 붙이는 게.”

“네.”

“40년 된 바닥을 3년 된 장부에.”

“네.”

하린은 정민을 보았다. 표정을 읽으려 했다. 읽히지 않았다.

“왜요.”

정민은 창밖을 보았다. 해가 거의 졌다. 하늘이 주황에서 보라로 바뀌고 있었다.

“그냥요.”

“그냥?”

“붙이면 뭔가 남으니까요.”


하린이 장판 조각을 집었다.

손에 들었다. 가벼웠다. 먼지가 조금 묻었다.

뒤집어 보았다. 접착제 자국. 누렇게 마른 것.

카운터 서랍에서 본드를 꺼냈다. 작은 것. 문구용. 노란 뚜껑.

장판 조각 뒷면에 본드를 발랐다. 얇게.

장부 표지에 눌렀다. 찢어진 모서리에.

손바닥으로 꾹 눌렀다.

10초.

손을 뗐다.

장판 조각이 장부 표지에 붙어 있었다.

꽃무늬가 보였다. 바랜 빨간색. 바랜 노란색.

“됐다.”

하린의 목소리가 작았다.

정민은 그것을 보았다.

40년 된 바닥이 3년 된 장부에 붙어 있었다.


창밖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해가 졌다. 하늘이 남색이 됐다.

가로등이 켜지기 시작했다. 주황색 불빛. 하나씩.

카페 안에는 조명이 켜져 있었다.

천장의 작은 전구. 세 개. 따뜻한 빛.

하린이 카운터에 기대 섰다.

팔짱을 끼지 않았다. 손을 카운터 위에 올렸다.

“정민 씨.”

“네.”

“'기타 개인 사정’이요.”

정민은 하린을 보았다.

“저도 거기 들어가는 거죠?”

“…”

“월세 올라서 나가는 거. 그것도 '기타 개인 사정’이잖아요.”

정민의 손이 카운터 위에 있었다. 손가락이 나무결을 따라 움직였다. 무의식적으로.

“네.”

“누가 그렇게 분류했는데요.”

정민은 손을 멈췄다.

“저요.”

하린이 정민을 보았다. 눈이 움직이지 않았다.

“4년 전이요. 상생협약 처음 만들 때.

이탈 사유 분류가 필요했어요.”

“…”

“임대료, 매출, 건강, 가정. 네 개로 나눴어요.

근데 거기 안 들어가는 것도 있었어요.”

“…”

“복잡한 거. 여러 개 섞인 거. 한마디로 안 되는 거.”

정민이 손을 카운터에서 뗐다.

“그래서 만들었어요. ‘기타 개인 사정’. 뭐든 넣을 수 있게.”

하린은 대답하지 않았다.

“편했어요. 그 칸이. 복잡한 걸 안 풀어도 되니까.”

“…”

“죄송해요.”


하린이 창밖을 보았다.

가로등 불빛. 어두운 골목. 셔터 내린 가게들.

“사과가 뭘 바꿔요.”

“안 바꿔요.”

“그럼 왜 해요.”

정민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린이 고개를 돌렸다. 정민을 보았다.

“그래도 하는 거예요?”

“네.”

“왜요.”

“해야 할 것 같아서요.”

하린은 웃지 않았다. 웃음 같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그냥 입술이 움직였다. 조금.


하린이 스위치 쪽으로 걸어갔다.

카운터 옆. 벽에 스위치가 있었다. 하얀 것. 플라스틱.

멈췄다.

“정민 씨.”

“네.”

“불 끌 거예요.”

“네.”

“마지막이에요. 이 불.”

하린의 손이 스위치 위에 있었다. 닿지 않았다. 1센티미터쯤 떨어져 있었다.

“3년 동안 켰던 건데.”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손님 올 때마다 켜고. 문 닫을 때 끄고. 매일 그랬어요.”

“…”

“근데 오늘은.”

목소리가 작아졌다.

“끄면 끝이에요.”


정민은 하린의 뒷모습을 보았다.

어깨가 움직였다. 숨을 들이쉬는 것 같았다. 내쉬는 것 같았다.

정민은 걸어갔다.

하린 옆에 섰다.

스위치 앞에 두 사람이 나란히 섰다.

“같이 꺼요.”

하린이 고개를 돌렸다.

“왜요.”

“혼자 끄면 더 어두울 것 같아서요.”

하린이 정민을 보았다. 2초. 3초.

웃었다. 작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조금.

“그게 무슨 말이에요. 같이 끄나 혼자 끄나 어두운 건 똑같잖아요.”

“그래도요.”

하린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혼자 끌게요.”

“…”

“이건 제 거예요. 마지막까지.”

정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 발 물러섰다.

하린이 스위치에 손을 올렸다.


“프래그먼트.”

하린이 말했다.

“조각이란 뜻이에요.”

“알아요.”

“조각이 모여야 전체가 된다고 생각했어요.

이 가게가. 하림지구의 조각 하나라고.”

“…”

“근데 조각이 사라지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전체는.”

정민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린의 손이 스위치를 눌렀다.



불이 꺼졌다.

어둠이 왔다.

천장의 전구 세 개가 꺼졌다. 따뜻한 빛이 사라졌다.

창문으로 가로등 빛이 들어왔다.

주황색. 희미한 것. 바닥에 사각형을 만들었다.

두 사람은 어둠 속에 서 있었다.

하린의 숨소리가 들렸다.

고르지 않았다. 들이쉬고. 내쉬고. 조금 떨리는.

정민은 움직이지 않았다.

30초.

바깥에서 오토바이 소리가 났다. 지나갔다.

1분.

하린이 먼저 움직였다. 문 쪽으로 걸어갔다.

정민도 따라 걸었다.


문 앞에 섰다.

하린이 문을 열었다. 풍경 소리가 났다. 딸랑.

밖은 어두웠다. 가로등만 켜져 있었다.

찬 공기가 들어왔다. 3월 밤.

“정민 씨.”

“네.”

“테이프요.”

“네.”

“고마워요.”

하린이 문밖으로 나갔다.

정민도 나갔다.

두 사람이 문 앞에 섰다. 카페 밖. 골목.

하린이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냈다. 작은 것. 은색.

문을 잠갔다.

자물쇠 소리가 났다. 찰칵.

“끝이다.”

하린의 목소리가 작았다.

열쇠를 주머니에 넣었다.



“정민 씨.”

“네.”

“배우는 방법. 찾으면 알려줘요.”

정민은 하린을 보았다.

어둠 속에서 하린의 얼굴이 보였다.

가로등 빛이 반쪽만 비추고 있었다. 반은 밝고 반은 어두운.

“저도 알고 싶어요.”

“…”

“도시가 배우게 하는 방법.”

정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찾을게요.”

“어디서요.”

“여기 말고. 다른 데.”

“…”

“가는 거예요? 어디로?”

“네. 내일 떠나요. 파견.”

“파견?”

“네. 다른 도시로. 6주.”

하린은 대답하지 않았다. 정민을 보았다.

“찾으면요.”

“네.”

“기록 보내줘요. 뭐 찾았는지.”

“…”

“저도 배울게요. 그때.”

정민은 하린을 보았다.

“약속할게요.”


정민이 돌아섰다.

걸었다.

골목을 걷는데 뒤에서 소리가 들렸다.

“정민 씨.”

하린의 목소리.

멈췄다.

돌아보았다.

하린이 서 있었다. 5미터쯤 뒤에. 가로등 아래.

손을 들었다.

흔들었다. 작게.

“잘 가요.”

정민은 손을 들었다.

흔들지 않았다.

그냥 들고 있었다.

2초.

손을 내렸다.

돌아섰다.

다시 걸었다.


골목을 빠져나왔다.

큰길로 나왔다.

버스 정류장이 보였다.

버스를 기다렸다.

버스가 왔다.

탔다.


버스 안.

창문 쪽에 앉았다.

창밖을 보았다.

하림지구가 지나갔다. 가로등. 셔터 내린 가게들. 낮은 건물들.

프래그먼트가 있던 골목이 스쳐 지나갔다.

안 보였다. 건물에 가려서. 불도 꺼져서.

마나브리지가 보였다. 다리.

다리를 건넜다.

미래구가 나왔다. 유리 건물들. 불빛들.

정민은 창밖을 보았다.

손을 봤다.

빈손이었다.

장판 조각은 카페에 두고 왔다. 장부에 붙였다. 하린의 장부에.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빨간 봉투가 있었다. 파견 신청서.

버스 창문에 자기 얼굴이 비쳤다. 희미하게.

창밖으로 불빛이 지나갔다.


-계속-


"붙이면 뭔가 남으니까요."

"이건 제 거예요. 마지막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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