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폐된 감옥 속에서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미세먼지에 대한 경각심은 없었다.
봄이 오면 황사가 있었다는 기억 정도랄까. 그마저도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는 젊음의 패기로 마스크는커녕 여기저기 잘도 돌아다녔던 기억이다.
언제부터인지 미세먼지라는 용어가 생겨났고 사람들이 창문을 닫기 시작했다.
내 경우에는 아이를 낳고 나서였던 것 같다. 젖먹이 시절에는 수유 때문에 대부분 집에서 지냈고-나는 모유 수유를 꽤 오래 했다- 아이가 걸음마를 시작할 무렵부터는 미세먼지 어플을 깔고 수시로 확인했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아이가 30개월을 앞두고 있으니 고작 3년째.
어쩜 그 짧은 시간 동안 이렇게 전 국민의 건강을 위협할 정도로 심해질 수 있었을까.
요 며칠 내 미세먼지 어플은 온통 시뻘겋게 뒤덮였다.
나쁨 수준인 노란색만 되어도 창문을 닫고 아이와의 외출을 자제했었는데, 보기에도 섬뜩한 시뻘건 색이라니.. 나와 아이는 강제 감금이나 다름없었다.
내 아이는 아직 어린이집에 다니지 않는다. 온종일 나와 집에 함께 있으니 먼지를 피할 수 있어 다행이면서도 무료하고 지루함이 지나쳐 오는 좋지 않은 현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평소에 너무 춥거나, 혹은 덥거나, 또는 비가 내리지 않는 날이면 나는 항상 아이와 바깥에 나간다. 집 근처 놀이터들부터 동네 산책, 혹은 서점에 가거나 마트에 간다. 가끔은 키즈카페에 가서 실컷 놀게 하기도 하고, 아빠가 일찍 오는 날이면 몇 시간 드라이브도 서슴지 않는다. 어린이집에 다니지 않으니 다른 쪽으로 여러 가지를 보고 듣고 경험하게 해 주고 싶은 나만의 작은 노력이다.
하지만 환기조차 불가능할 정도의 시뻘건 미세먼지는 우리에게 감금 아닌 감금생활을 하게 했고, 이는 무기력함과 우울함을 불러왔다. 나는 성인인 나에게만 해당하는 문제인 줄 알았는데 이는 안이한 생각이었다. 고작 30개월인 내 아이 역시 무기력했고 우울했으며 종일 축 늘어져 있었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그저 아이가 피곤해서 그러려니 생각했었다.
오늘은 아이 문화센터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어제 예보에서 오늘은 조금 나아질 거라고 했기에 외출을 기대하며 잠이 들었었는데 어느 정도는 예보가 맞았다. 먼지는 약간 가라앉아 있었고 나는 들뜬 마음으로 외출 준비를 했다.
가라앉았다고 해도 예전 같았으면 창문을 꼭꼭 닫아잠글 수치였지만 며칠을 시뻘건 화면과 함께 마치 전쟁이라도 난 양 삑삑 울려대는 재난경보 속에서 지내다 보니 노란 화면이 반갑기 그지없었다. 나는 코가 아직 채 자라지 않아 제대로 맞지도 않는 마스크를 아이에게 억지로 씌우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문화센터에 가는 길은 버스와 도보를 합쳐 20여 분 정도. 나는 자그마한 아이 손을 잡고 열심히 걸었다. 마스크를 통해서 들이마셔야만 하는 숨길이 영 탐탁지 않았지만 그래도 하늘을, 햇살을, 구름을 보니 정말이지 살 것 같았다. 아이는 폴짝폴짝 뛰며 좋아했다. 제대로 된 발음도 아직 하지 못하면서도 아이는 연신 '바깥에 나오니까 기분이 좋아요'를 연발했다. 가슴이 싸하니 아려왔다. 아이는 그동안 피곤했던 것이 아니었다.
그저 당연한 것인 줄로만 알았던 신선한-비록 아주 신선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공기가 이다지도 반갑고 감사할 줄이야. 미세먼지로 인한 며칠간의 감금생활은 내게 새로운 깨달음과 함께 공포를 동반했다. 앞으로 내 아이가 살아갈 세상이 숨 쉬는 것조차 감사해하며 살아가야 할 세상이려나? 그저 티 없이 뛰어놀며 자라게 하기에는 아이의 세상이 그를 허락하지 않으려나? 나는.. 엄마인 나는 그런 아이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문화센터에서 돌아온 나는 온 집안 문을 열어 그동안 못한 환기를 시켰고 이불 빨래를 했다. 노란색 화면이라 오래 열어두진 못했지만 그동안의 밀폐된 우울함의 찌꺼기를 날려버릴 수 있다니 그저 좋았다. 내일은, 모레는 또 어떠려나. 이젠 자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는 일도, 아침에 일어나서 가장 먼저 하는 일도 미세먼지 어플 확인이 되어버렸다.
내일은 정말 오랜만에 아이가 좋아하는 하마 입이 있는 놀이터에 가야지. 놀이터에 가면 제일 먼저 미끄럼틀을 몇 번 타겠지? 그리고 나서는 그네를 밀어달라고 하고 옆자리엔 엄마도 타라고 하겠지. 한참을 그네를 탄 뒤에는 시소를 타자고 할 거야. 시소를 타면 항상 똑같은 노래를 불러달라고 하니까 내일도 역시 그 노래를 불러줘야겠어. 철봉에도 매달려보고 잡기 놀이도 해야지. 돌아오는 길엔 집 근처 식당에서 아이가 좋아하는 칼국수를 한 그릇 나눠먹을까? 다 먹고 집에 가자고 하면 분명 또 다른 놀이터에 가자고 할 거야. 가지 뭐! 큰 거미가 종종 매달려있었던 그 놀이터만 가면 거미를 찾아대니 겨울이라 거미가 코 잔다고 설명해야 해. 사진도 찍어주고 숨바꼭질도 해야지. 이젠 해가 꽤 길어져서 한참을 놀 수 있을 거야. 부디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확인하는 어플이 녹색이기를. 파랑이면 아주 좋겠지만. 녹색이기를.. 녹색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