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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망물고기 Mar 23. 2019

새싹에게 보내는 응원

빼앗긴 공기 속에서도 봄은 오는가. 온다!


삼월도 이제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나는 언제나처럼 삼월의 시작과 함께 봄맞이 산책을 마음껏 즐기려 했으나 시작은 미세먼지 덩어리와 함께였고 나는 절망했었다.
아이가 아직 어린 나는 바깥에 나갈 일이 있어도 마스크와 모자로 무장한 채 최대한 자동차를 이용해야만 했고 불가피하게 걸을 일이 생길 때에는 아이를 안은 채 경보 선수와도 같은 걸음걸이로 목적지만 바라보고 질주했어야만 했다. 우울했고 짜증스러웠으며 봄맞이 따위는 생각할 수도 없었다. 새싹이 돋았는지 어떤지 주변을 볼 여유 따위는 실시간 미세먼지 수치 확인으로 바빴던 나에겐 찾을 수 없었고 봄 냄새는 무슨 봄 냄새. 마스크에 막혀 아무 냄새도 맡을 수 없었는걸.

바깥에 나가지 못하게 되는 걸 아닐까 정말 무섭기까지 했던 숨 막히는 미세먼지의 나날들이 지나고 비로소 환기를 할 수 있게 되자 나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바깥으로 쏘다니기 시작했다. 이제 막 30개월에 접어든 딸아이 또한 자다가도 바깥에 나가자고 하면 벌떡 일어날 정도로 산책을 좋아했고 나는 딸아이 손을 이끌고 근처 놀이터로, 공원으로, 길거리로 봄을 맞이하러 나갔다.
며칠만의 산책은 아주 상쾌했고 겨울이 한 발짝 물러나 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추위가 채 가시지 않은 날카로운 삼월의 바람이지만 겨울의 묵직한 그것과는 사뭇 달랐고 냄새 또한 한층 싱그러웠다. 얼음의 냄새가 아닌, 생명의 냄새였다.

그저 공기와 바람과 냄새를 느끼며 놀이터에서 아이와 놀아주던 중, 나뭇가지 사이로 빼꼼히 고개를 내민 새싹을 발견했다. 어? 벌써 싹이 돋아나는 건가?
나는 다른 나뭇가지들도 찬찬히 살피며 놀이터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단풍나무도, 플라타너스도, 철쭉도, 이름 모를 나무들과 풀들도 제법 돋아나 있었고 민들레와 산수유는 노오란 꽃망울까지 활짝 피우고 있어 나를 놀라게 했다.

희뿌연 먼지에 가려져 내가 차마 보지 못했을 뿐, 봄은 이미 제법 와 있었던 것이었다.



쉴 새 없이 울려대던 미세먼지 '매우 나쁨' 경보음 속에서도, 드라이클리닝을 맡겨 넣어둔 겨울 패딩을 다시 꺼내 입게 만드는 칼날 같은 꽃샘추위 바람 속에서도 지지 않고 싹을 틔운 식물들의 생명력이 새삼 경이로웠다. 아직은 추워 한껏 웅크리고 있음에도 채 가려지지 않는 연둣빛 몽우리는 막 아침 세안을 끝낸 소녀의 민낯처럼 싱그럽고도 눈부셨다.

나는 한껏 들떠서 아이에게 새싹들을 보여주며 신나했다. 아이 또한 이제 제법 말을 알아듣게 되어서인지 새싹을 만져보고 냄새도 맡아보며 내게 이것저것 물어보았고 나는 도시에서나마 소소하게라도 계절의 변화를 느끼며 살아가고자 하는 내 삶의 방식에 아이가 들어와 함께 하고 있다는 것에 마음이 벅차올랐다. 봄은 신비롭고 새롭다. 괜스레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고 싶어지기도 하고, 서른일곱의 아기 엄마에게 상큼 발랄한 밝은 색 단발머리를 하고 싶어지게도 만드는 주책맞은 계절.




첫 새싹을 본 후로 며칠이 더 지났다. 나와 아이가 열심히 들여다보고 응원해서인지 놀이터 주변의 녹색 생명들은 한껏 자라났다. 요 며칠은 꽤 추웠지만 나와 아이는 어김없이 새싹들을 보러 나갔고 그들은 하루가 다르게 익어가고 있다. 설령 아주 큰 먼지 덩어리들이 공격해 와도 절대 굴하지 않기를. 무럭무럭 자라나서 겨우내 준비했던 아름다운 꽃망울을 마음껏 터뜨려볼 수 있기를. 새싹들아,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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