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우리 삶은 우리가 선택한 결과이다. 탁자 위 종이컵이 기울었다. 미지근한 커피가 종이컵 입구에 고였다. 나는 그걸 보고 있었다.
어딘가의 영화에서 아내가 남편에게 말했다. 넌 네가 선택한 삶을 불평한다고. 그러나 피해자가 아니라고. 관대함 뒤에 숨은 비열함. 야망을 보지 않는 겁. 방관자의 자리. 자존심은 높지만, 아이디어는 시작도 못 하고 포기해버리는 사람. 나이는 마흔. 누굴 탓할 거냐고. 결국 너. 빌어먹을 기준. 실패에 대한 공포. 그런 너가 진실이라고.
나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종이컵 가장자리에 커피 얼룩이 말라가고 있었다. 얇고 또렷한, 갈색의 띠. 맞다. 우리는 선택했다. 매일 조금씩 크고 작은 선택을 하고, 그 조금이 쌓여 풍경이 된다. 버스에서 한 정거장 더 가만히 있었던 날들. 말해야 할 때 침묵한 순간들. 해야 할 일을 메모만 하고 끝낸 저녁들. 나는 그 자잘한 선택들로 지금 여기에 있다.
선택에는 냄새가 있다. 새벽 컴퓨터의 발열 냄새. 미루어진 설거지의 눅진한 냄새. 회의실 바닥의 세제 냄새. 그 냄새들 사이에서 나는 많은 것을 나중으로 밀었다. 나중은 오래 버티는 줄 알았다. 그러다 어느 날, 더는 오지 않았다.
미룬다는 건, 그러면서도 시간이 흘러간다는 건, 냉동고에서 아이스크림을 꺼내먹는 것과 같다. 달콤하고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하나 둘 꺼내먹다보면, 어느샌가 아이스크림을 다 먹을 날이 올 것이다. 그때면 우리는 텅 빈 냉장고 안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지나간 단맛이 씁쓸함으로 돌아오는 것을 느낄 것이다.
그럼에도 영화의 대사는 절반만 맞다. 우리는 우리 삶의 전부를 선택하지는 못한다. 태어난 집, 첫 번째 계절, 처음 배운 말투... 그런건 주어지는 거다. 그러나 그 다음의 문장은 우리가 쓴다. 주어진 것 위에 올리는 한 줄. 그 한 줄이 나의 얼굴이 된다.
나는 겁이 많다. 그래서 자주 멈췄다. 멈추면 안전했다. 안전한 대신,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세상은 나를 빼고 바뀌었다. 하지만 내가 멈춘 자리에는 먼지가 앉았다. 그 먼지는 기준이 된다. 움직이지 않으니 무너지지도 않고, 세워지지도 않는다.
진실이란 칼날은 뻣뻣하다. 그러나 나는 칼날이 필요한 밤이 있다고 믿는다. 자잘한 변명들을 베어내는 밤. 그 밤의 도마는 식탁이고, 식탁 위엔 하루가 올려진다. 썰고, 버리고, 남기는 일. 남기는 것이 내일이 된다.
선택은 거창하지 않다. 오늘의 문장 하나. "하기 싫지만 한다." 혹은 "무너지지 않게 쉰다." 둘 중 어느 걸 택할지는 나의 선택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나"라는 주어이다. 남의 눈, 남의 기준, 남의 시간에 기대어 쓰지 않는 주어. 그 주어가 내일의 책임을 끌어당긴다.
실패는 두려운 것이다. 하지만 실패는 결과가 아닌 장소라는 걸 기억해야 한다. 쓰러진 자리, 땀 냄새, 서늘한 바닥. 그 자리에서 일어나면 선택이 되는 것이다. 눕고 싶으면 눕고, 일어나고 싶으면 일어나는 밤. 그 밤이 쌓여 얼굴이 바뀐다.
그러니 나는 영화의 대사를 바꾸고 싶다. 나에게 필요한 말은 조금 다르니까. "너는 피해자가 아니다"라는 말 대신, "너는 시작할 수 있다." "너는 늦었다" 대신 "너는 오늘에서 다시 쓸 수 있다." 이 말들은 부드럽지만, 더욱 오래 버텨줄 것이다.
종이컵을 세웠다. 커피는 이미 식은지 오래였다. 하지만 식은 커피도 마실 수 있다. 맛은 덜하지만, 끝까지 삼킬 수는 있다. 내려간 설탕으로 인해 다른 맛이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커피를 삼킨다. 삼킨 뒤에는 숨을 고른다. 그러고는 작은 메모를 적는다. '오늘의 선택.' 다음 줄은 비워둔다. 비워둔 줄은 내일의 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