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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진처럼 읽기

우리 사의 통념과 상식에 대한 전복적인 성찰

by 박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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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이름을 책 제목으로 사용하기에는 상당한 자신감과 배포가 필요하다 생각되는데 이 책을 읽다보면 수긍이 간다.


독서가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사람인데 나는 얼마전 읽은 서평에 관한 책에서 이 책이 많이 인용되는것을 보고 관심을 갖게 되었다. 저자는 평화학.여성학 연구자로 학문간 경계를 넘나드는 공부와 글쓰기를 지향하는 사람으로 소개되어 있다. 사랑받음이 권력, 자기도취, 당연함이 아닌 사회,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이 자원이 되지않는 사회, 중심과 주변의 경계가 불안정한 사회, '세련'이 진정성으로 '우아'가 치열함으로 인식되는 사회를 꿈꾼다고 한다. '정희진처럼 읽기'는 [다르게 읽기]를 통해 어떻게 글을 읽을 것인가에 관한 새로운 시각과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은 79권의 독후감 형식을 통한 자기 탐구의 기록이자 우리 사회의 통념과 상식에 대한 전복적인 성찰의 기록이다. 그는 지배 규범을 '객관'으로 간주하고 자기 의견을 가진 집단을 편협하다고 낙인찍는 우리 사회를 비판한다. 책 읽기는 삶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자극, 고통, 상처를 해석하는 힘을 주는 것이다. 각종 관습과 규범에 대한 도전이며 권력의 주관성인 '보편성'을 해체하는 자기만의 고유한 인식을 확장해 가는 행위임을 깨닫게 해준다는 것이다.



저자가 습득한 책읽는 습관은 아래와 같다.

1. 눈을 감아야 보인다.

2. 새로운 것을 얻으려면 기존의 인식을 잠시 유보하라.

3. 한계와 관점은 언어와 사유의 본질적인 속성이지, 결함이 아니다.

4. 인식이란 결국 자기 눈을 통해 보는것이다. 그러므로 문제는 나의 시각을 객관화 하는 것이다.

5. 본질적인 나는 없다. 내가 추구하는 것이 나다.

6. 선택 밖에서 선택하라.

7. 궤도 밖에서 사유해야 궤도 안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8. 대중적인 책은 나를 소외시킨다.

9. 독서는 읽기라기보다는 생각하는 노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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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븐노와 평화는 그 자체로는 아무런 뜻이 없다. 누구의 분노, 누구의 평화인가가 의미를 결정한다. 따라서 나는 용서가 저주보다 바람직한 가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가해자의 권력은 자기 회개와 피해자의 용서를 같은 의무로 간주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 누구의 인생도 피해 경험이 없는 경우는 없으며 동시에 평생 피해자인 사람도 없다. 피해는 상황이지 정체성이나 지칭이 될 수 없다. 타자화는 나를 기준으로 타인을 정의하는 것. 그 자체가 폭력이다.


- 희망은 마음의 욕망이다. 현실이 아니다. 사람은 희망 없이 못산다 하지만 착각없이, 이데올로기 없이, 통념없이 못 살 뿐이다. 희망보다는 신앙을 갖는게 낫다. 희망은 관념론이고 신앙은 유물론이다.


- 한국사회에서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는 적대하거나 논쟁하는 세력이 아니다. 정상적인 국가건설이라는 동일한 목표를 추구하되 방법이 다를 뿐이다. 공통점은 성차별과 주류 지향이고, 차이는 '종북'이라는 기이한 용어에서 보듯 제대로 된 국가를 만드는 일에 통일을 포함하는가 여부와 그 방식일 것이다.


- 약자 혐오는 작금의 자본주의는 물론이고 이제까지 인류(서구) 역사를 유지시켜 온 기반이다. 빈곤과 고립이 평화의 본질에 가장 가까운 이유다. 사람들의 바람과 달리 선한과 강함, 힘과 정의는 양립할 수 없다. 선과 정의는 객관적인 가치가 아니라 저마다 생각이 다른 경쟁적인 담론이기 때문이다.


- 기권은 선택이 아니다. 개인이 기본의 권리마저 두려워하게 만든 권력의 승리다.


- 正論은 定論이 아니라 政論이다. 정론은 당위가 아니라 경합과 갈등으로 획득하는 가치다.


- 객관성은 권력자의 주관성이다. 익명성은 가장 무서운 서명이고 객관성은 가장 강력한 편파성이다.


- 비상과 정상은 인식자의 입장이 다를 뿐, 같은 말이다. 문제는 비상/정상 개념이 아니라 누가 누구를 위협하는 비상사태인가이다. 고통받는 사람에겐 인생의 시시각각이 비상이고,민중의 고통으로 품위를 유지하는 지배자의 입장에서는 민중의 각성이 비상이다.


- 線을 구획하는 것은 자연도 神도 아닌 사소하고 우연한 권력들이다. 이 권력을 가시화 해야 한다. 선택 밖에서 선택하라! 제도 안에 머물게 되면 그 안에서 또 다른 배제가 진행되고 굴욕적인 자기 조정을 계속 요구 받게 된다. 변해야 할 것은 그대로고 '그들'을 위한 나의 변화만 강제된다.


- 큰 정치와 작은 정치, 구조와 개인, 사회의 안과 밖이 분리되어 있다는 사고. 그래서 건장한 몇몇 개인은 변화의 주체이고, 소수자로 불리는 나머지 대다수 사람들이 겪는 사소한 문제는 전체 운동이 성공한 이후 해결'해준다'는 발상. 이분법과 고통의 서열화가 반혁명이다. 이런 인식이 인류의 계속적인 혁명 시도가 정권 교체에 불과하게 된 이유이며, 결국 사회 변화에 대한 민중의 절망과 무관심을 초래했다.


- 역사는 기원의 전파가 아니라 동시적 파생이다.


- 理解는 읽는 이의 利害 관계와 관련이 있다. 그러니 이해는 難易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영역이다. under/standing, 이해하려는 대상 아래 서 있으려는 겸손한 마음, 이것이 첫번째 자세다. 이해는 사랑과 지식을 아우른다. 사랑은 수용이고 상대를 수용할 때 이해는 따라온다. 이해는 선입견이든 지식이든 기존의 앎을 버리는 것이다.


- 진짜 미안할 때는 할 말이 없거나 멀리서 오랫동안 미안해 한다.


- 삶의 의미는 인간이 묻는 것이 아니라, 삶이 우리에게 묻는 것이다. 이 질문에 답하려는 몸부림이 의미 있는 삶이다.


- 연습은 정신력으로 몸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연습된 몸으로 정신(적 실수)를 '없애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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