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를 철학하다.

21세기 불교를 위한 하나의 초상

by 박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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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굴뚝청소부'를 시작으로 자본주의와 근대성에 대한 심오한 고찰과 저술로 고정 팬을 확보하고 있는 이진경씨의 최근 작품이다.


그는 불교와의 만남을 '영혼' 위로 불교가 쓰나미처럼 덮쳐왔다고 표현했다._ '아상'에 대해, 그 아상이 만드는 세계의 일방성에 대해 눈을 돌리게 되었고 그로 인해 '무아'의 철학에 정신없이 빨려 들어갔다. 그저 세상을 향해 분별하고 재단하던 시선을 비로소 내 자신을 보는데, 내 자신이 만든 세상의 협소함을 보는데 쓸 수 있게 되었다_ 전에 읽고 생각하고 행하 던 모든 것, 가령 '차이의 철학'이니 '공동체'니 하는 것들이 무아의 철학없이는 공허한 것이 될 것임을 직감했고 그 직관 속에서 운명의 지침들이 방향을 바꾸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저자가 2015년 <법보신문>에 일년 간 연재했던 것을 손보아 엮은 책이다.


지은이가 공부한 과학이나 철학, 예술 등이 불교적 사유의 흐름속에서 섞이고 변성 된 21세기 불교의 초상 격이다. 그의 책은 전반적으로 어렵고 고심하며 읽게 된다. 그렇지만 21세기 어떤 현대철학보다 더 현대적인 찰학으로서, 어떤 윤리보다 더 현대적인 삶의 방법으로서 불교가 스스로를 불사르며 재 탄생하기를 바라는 저자의 기원이 담긴 이 책은 불교의 제반 개념에 대한 철학적.예술적 사유의 시간을 고생한 독서의 보람으로 되돌려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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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것은 스스로와도 끊임없이 달라지는 무상한 '차이화' 과정 속에 있다. 무상이란 자기 자신과도 달라지는 차이, 차이화 하는 차이를 뜻한다. 존재하는 것은 오직 차이뿐이다. 이것이 '차이의 존재론적 일차성이다. 무상을 통찰한다 함은 이런 차이의 존재론적 일차성을 보는것이다. '차이의 철학'이린 무상을 통찰하는 눈이 빚어낸 개념적 사유다.


- 연기적 사유란 연기적 조건에 따라 모든 것의 본성이나 작용이 달라짐을 보는것이다. 인과법칙 또한 연기적 조건_과학에서 사용하는 '초기 조건'_에 따라 달라진다. 분석적 인과성이 초기 조건의 차이를 부차적으로 보고 '동일한 조건'이라는 말로 추상하여 그런 조건과는 무관하게 성립하는 보편적 인과성을 찾고자 한다면, 연기적 인과성은 초기 조건의 차이에 따라 인과의 작용이 크게 달라질 수 있음을 강조한다.


- 자아가 안정된다는 말은 사람들이 유연하고 열린 젊음을 잃고 나를 벽 안에 가둔다는 말이다. 무아란 그런 벽을 반복하여 깨고 지금의 '나'를 반복하여 넘어 서는 것을 말한다. 무아란 내게 다가오는 어떤 사건들 앞에서 발생하는 비인칭적 죽음을 반복하여 긍정하는 것이다. 삶이란 그런 사건의 영원한 번복임을 기쁜 긍정의 정신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자아의 죽음은 무수히 많은 다양한 '나'의 탄생이고, 그런 '나'들을 거쳐가는 변이의 과정이다. 그 많은 '나'를 살기 위해 나를 비우는 것이다.


- 무주상보시는 우리의 삶 속에 항상 있는 것이다. 연기에 대한 깨달음이란 자신의 존재가, 매순간 자신의 삶이 이 우주적 연쇄의 존재자가 주는 선물임을 깨닫는 것이다. 부처가 매순간의 삶을 오는 그대로 선물로 받아들이는 기쁨으로 긍정하는 이라면 보살은 이런 매순간의 삶이 '옆'에 있는 존재에게 지혜로운 삶을 촉발하고 선물하는 이라고 해야 한다.


- 모든 개체는 짐합체이다. 많은 '분할 가능한' 것이 모여서 하나의 개체를 이룬 것이다. 개체화를 통해 각각 존재하던 것들은 하나의 개체 속으로 말려들어간다. 그렇게 말려 들어가 하나의 개체를 이룬 무리, 그게 곧 '중생'이다. 즉 중생이란 수많은 것이 하나의 '무리'를 이루어 살아가는 개체이고, 그 자체로 하나의 집합체를 이루는 개체다. 무리인채 하나인 생명체인 것이다.


- 이미 확립된 기준에 입각한 정의란 양식이나 상식처럼 많은 사람이 공유하고 있는 분별의 척도를 뜻할 뿐이다. 자크 데리다는 정의를 이와 아주 다른것이라 말한다. 그것은 우리가 갖고 있는 공동의 기준을 모두에게 공평하게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잘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타자성의 영역에 마음을 열고 최대한 이해하려는 것이다.


- 자비란 스스로가 부처로서 자신과 만나는 모든 잠재적 부처들에 대해 갖는 마음이고, 그들에 대해 행하는 바다. 그렇다면 자비란 잠재적 부처인 모든 중생과 또한 잠재적 부처로서의 내가 맺는 존재론적 차원의 우정이요 사랑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 일체유심조의 '마음'은 내 마음이 아니라 나를 둘러싼 것들에 속한 마음이다. 이런 의미에서 마음이란 어떤 것에 작용하여 번화를 일으킬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나의 마음이란 염두에 둔 대상에 작용하여 어떤 변화를 야기하는 능력이다. 바깥에서 다가와 내 마음 속에 들어왔던 것들을 '나의 것'으로 내부화 하는 것이 나의 마음이다. 하여, 우리의 마음은 우리에게 다가온 외부에 대해 나름의 내부화된 방식으로 반응 하며 작용한다.


- 인식능력이라 하든 사고능력이라 하든 능력의 우월이 있다고 말하는 것보다는 능력의 다양성이 있다고 맣하는게 더 적절하다. 사고능력은 특정한 하나의 識이 아니라 六識, 아니 그이하의 다양한 식이 모여 종합되는 과정이다. 영혼이나 정신이 사고하는 능력을 지정한다면 이는 다양한 식이 종합되는 양상에 따라 다양한 '정신'이 존재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의식을 특권화하지 않는 '식'의 개념은 모든 존재자의 평등성을 함축한다.


- 지혜란 내가 포착한 것을 믿고 확장해가는 것이 아니라 무상한 세계 앞에서 그걸 내려놓을 줄 아는것이다. 알고 있는것에서 눈을 돌려 다시 무상의세계를 바라보는것이다.


- '좋은/나쁨'이 윤리학의 범주를 이룬다면 '선/악'은 도덕의 기본 범주를 이룬다. 또 하나 다른 점은 '선/악'의 판단은 조건과 무관하게 행해지지만, '좋음/나쁨'의 판단은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


끝부분에 저자의 생각이 요약되 있는데 이조차 여러번 음미해야 한다.


있음과 없음을 대립시키고 생성을 존재에 복속시키는 전도된 관념 속에서 생에 집착하고 노사를 두려워 하는 마음이 생겨나게 된다. 무상세계의 실상인 생성이란 사실 생과 사가, 탄생과 소멸이 매순간 함께하는 과정이다. 아이의 성장도 성인의 늙음도 새로운 세포의 탄생과 오래된 세포의 죽음이 동시에 진행되는 과정인 것이다. 생성의 과정 가운데 선택된 하나의 우연적 만남이 '유'라고 명명된 것임을 안다면, 거꾸로 그렇게 무언가 만나서 함께하고 있는 우연적 순간이야말로 우리의 생 전체이고, 우리의 생을 직조하는 것임을 기쁘게 긍정할 수 있지 않을까? 모든것이 변하며 떠나가는 것임을 안다면 , 좋아하는것이 아직 떠나지 않고 남아 있는 것을 행운으로 긍정할 수 있게 되지않을까? 변하여 떠나가는 것조차 새로운 '종합', 새로운 생성의 기회로 긍정하고 오는 것과가는 것, 머물러 있는 것 모두를 '있는 그대로' 긍정하게 될수 있지 않을까? '여래'라는 말은 이처럼 연기법을 깨닫고 연기적으로 오고가는 모든 것을 선물로 긍정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이 경우 무상한 세계 자체는 고통의 연속이 아니라 기쁨의 연속이 될 것이다. 윤회하는 생 자체가 해탈이고, 중생이 사는 세계 그 자체가 바로 극락이 된다는 것은 바로 이런 의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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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겨나면 저것이 생겨난다.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으며

이것이 소멸하면 저것이 소멸한다."



책의 구성은 아래와 같다.


1장 : 나의 본성은 내 이웃이 결정한다.

< 연기 : 외부에 의한 사유 >

2장 : 세상에 똑같은 두 장의 나뭇잎은 없다.하지만...

< 무상 : 차이의 철학과 필연적 무지 >

3장 : 나비의 날개를 타고 끼어드는 것

< 인과 : 분석적 인과성과 연기적 인과성 >

4장 : 내가 죽는 곳에서 만인이 태어나느니...

< 무아 : 비인칭적 죽음과 부모 이전의 '나' >

5장 : 존재 자체가 선물이 될 수 있다면..

< 보시 : 불가능한 선물과 절대적 선물 >

6장 : 모든 개체는 공동체다

< 중생 : 공동체의 존재론과 공생 >

7장 : 부처는 똥이고, 소음은 음악이다

< 분별 : 척도의 권력과 타자성 >

8장 : 극단보다 더 먼 '한가운데'

<중도 : 중도의 존재론, 파격의 논리학 >

9장 : 사물의 구원, 혹은 쓸데없는 것들의 존재론

< 공 : 존재의 사유와 순수 잠재성 >

10장 : 죽음의 불가능성이 왜 고통이 되는가

< 윤회 : 영원회귀와 니힐리즘 >

11장 : 연민의 윤리에서 우주적 우정으로

< 자비 : 타자의 윤리학과 존재론적 우정 >

12장 : 자유의지 없는 세상에서의 자유

< 마음 : 마음의 물리학과 능력의 윤리학 >

13장 : 존재하는 모든 것은 영혼을 갖고 있다

< 식 : 분자적 인식론과 식의 존재론 >

14장 : 무지 이전의 무명에서 생멸 이전의 '존재'로

< 십이연기 : 무명의 카오스와 무지의 코스모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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