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갈래?"
이 말에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좋아"하고 대답했다. 이렇게 나의 대책 없는 캐나다 생활은 시작됐다.
나는 얼마나 외국 생활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었나. 그 소소함에 남들은 비웃겠지만 말이다. 정확히 어디인지는 모르겠으나 노란 머리 파란 눈의 외국인(외국인에 대한 이런 막연한 이미지는 내가 얼마나 '외국인'에 대해 편협한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 나중에서야 알게 됐다)들이 바글바글한 커피숍 한 구석에서 잘생긴 외국인 친구와 앉아 영어로 대화하는 내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상상 속의 영어 대화는 들리지 않았지만 내 모습은 분명 멋져 보였다.
"캐나다 갈래?" 어쩌면 나는 누군가가 이 말을 해주길 기다렸는지도 모르겠다.
'어떻게든 되겠지'가 나의 모토랄까? 나는 막연히 뭐든 '잘 되겠지'라고 생각했다. 캐나다로 떠나기로 마음먹은 당시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와중에도 목표라는 걸 세웠는데, 하나는 영어 또 하나는 생존이었다.
어렸을 때 내가 꼭 부러워하던 부류의 친구들이 있었다. 영어를 잘하는 친구들을 나는 무척 부러워했다. 한 번은 친구와 같이 길을 걷고 있는데 한 백인과 마주쳤다. 여자였는지 남자였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금발이었던 것은 확실히 기억난다. 우리 동네는 지방의 조그만 아파트촌이었는데 외국인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었다. 아마도 그(녀)는 내가 마주친 첫 외국인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오 미국인이다'(당시 나에겐 미국인과 외국인은 동의어였다)하며 신기해하던 그때, 내 옆의 친구가 그 외국인과 인사를 나누었다. 초등학생이던 나는 순간 놀랐다. 친구와 아는 사이라는 것도 놀라웠지만 영어로 대화를 나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몇 마디 오가지도 않았을 그 대화에 나는 그 친구가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멋져 보였다.
고등학교에 가서는 다른 과목의 성적 좋은 아이들은 관심 밖이고 오로지 외국어 영역에서 좋은 성적을 받는 친구들을 부러워했다. 어쩌면 나는 영어는 타고나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였을까? 영어 실력이 단순히 책상에 앉아 단어 몇 개 외워서 는다고 생각하지 않았다.(사실이다. 몇 개 외워서는 절대 안는다) 실전으로 익히는 것이야말로 영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게 영어를 잘할 수 있는, 아니 잘할 수도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나는 이 기회를 십분 활용하기로 했다. 영어 실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기회로.(나중에 알겠지만 내 특유의 게으른 성격 탓에 목표는 거창하게, 실행 계획은 전무했다.)
부모님께는 아무 대책 없이 떠나는 딸 걱정시키기가 싫어, 캐나다에서 돈도 벌고 영어 공부도 하고 돌아올 테니 걱정 말라며 큰소리 빵빵 쳐놨다.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일종의 생존이 또 다른 목표가 되었다. 내 앞가림하면서 영어 공부하기. 이렇게 목표를 정했다. 역시 구체적인 계획 따윈 없었다. 가서 생각하지 뭐. 가면 남는 게 시간인데.
캐나다는 넓디넓어서 어느 도시에 가서 사느냐를 정하는 것도 큰 문제였는데 생각보다 쉽게 정해졌다.
춥지 않은 곳으로 가자.
나는 추위는 딱 질색이다. 물론 차가운 바람을 뚫고 카페에 들어가 마시는 따뜻한 라테나 전기장판 위에서 이불을 턱밑까지 덮고 몸을 지지면서 손끝이 노래지도록 까먹는 귤은 겨울이 있어서 행복한 일이지만. 그래도 이왕 날씨를 고를 수 있다면 추운 곳보다는 따뜻한 곳으로 가겠다고 마음먹었다. 특히 캐나다의 추위는 보통이 아니라고 익히 들었기 때문에 구글맵을 켜고 어디가 따뜻할까 눈에 불을 켜고 찾았다. 결국 캐나다에서 따뜻하다는 밴쿠버로 정착지를 결정했다.
캐나다는 아메리카 대륙에서도 북쪽에 위치해 본토 대부분의 날씨가 춥지만 중부와 서부지역은 날씨가 따뜻하다. 그중에서도 캐나다의 왼쪽 아래에 위치한 밴쿠버는 여름에는 서늘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날씨로 유명하다. 겨울에는 눈 대신 비가 와 별명도 레인쿠버다. 게다가 시애틀과도 가까워 당일치기로 놀러 갈 수 있다고 하니 나에게는 퍽 낭만적인 곳으로 느껴졌다. 시애틀 하면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밖에 모르지만. 물론 그마저도 안 봤다. 어쩐지 비가 보슬보슬 내리고 야경이 끝내주게 멋진 곳일 거라고 나는 어렴풋이 상상했다. 이 상상은 딱 들어맞았다.
이외에도 워킹비자 발급받기, 1년 동안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는 잡다한 물건들 챙기기, 밴쿠버 공항에서 나와 내 짐을 픽업해 줄 민박집을 구하는 것까지 온갖 일들을 해내고 나니 한 달가량 시간이 남았다.(응?) 이럴 수가. 내가 빠릿빠릿했던 걸까 아니면 그냥 대충 챙겼던 걸까... 하여간 시간은 남았고 그냥 놀 수는 없겠다 싶어 영어 회화 학원을 등록해 다녔는데 일주일 넘게 다녔나, 생전 한 번 걸린 적 없던 편도선염에 걸려 집 밖으론 옴짝달싹할 수 없게 됐다. 며칠 안 나가니 흥미가 떨어져 일주일에 하루 이틀 나가다가 말았다. 그렇게 회화 학원으로 내 피 같은 돈을 날렸다. 한 푼이 아쉬웠을 때 말이다.
캐나다로 떠나기로 결정하고 이것저것 준비하던 때 나는 새로운 곳에 대한 설렘과 더불어 일종의 결의에 차있었다. 지지 않고 돌아와야겠다는 그런 결의. 지지 않겠다는 대상이 누구인지는 여전히 모르겠지만 말이다. 스물넷 어린 나이였고 좀 더 즐기고 왔어도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지금은 든다. 결의에 찬 마음과 항상 놓지 않았던 긴장감은 내가 캐나다에서 적어도 실패하지 않을 수 있었던 요인이기도 했지만 캐나다에서의 생활을 마음 깊이 즐길 수 없었던 이유도 이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약간의 긴장과 두려움, 그렇지만 새로운 곳에 대한 설렘과 다시 돌아올 거라는 확신에 내 발걸음은 가벼웠다. 2013년 4월 18일, 나는 밴쿠버로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