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퇴사 선언

퇴사를 말하는 순간, 잊을 수 없는 희열

by 하만다

퇴사를 말하기로 결심한 날이다. 내 뒷자리에 앉아 있는 상사에게 어느 틈에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자꾸만 엉덩이가 들썩들썩한다. 회의실, 키친, 화장실을 왔다 갔다 하던 상사가 드디어 자리에 앉아 진득이 업무를 보기 시작했다. 앉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퇴사하겠다고 말하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 또 한참을 기다리다 지금이지 싶어 뒤를 돌아 컴퓨터 화면을 뚫어져라 보고 있는 상사에게 물었다.


“선생님, 혹시 지금 시간 괜찮으실까요?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네, 괜찮아요.”


“그럼 회의실에서 말씀드릴게요.”


약간의 긴장과 엷은 미소를 내 표정에서 읽지는 않았을지, 내가 무슨 말을 할지 눈치채지는 않았을까 걱정했지만 평소와 다르게 회의실에서 보자는 나의 요청에도 그는 어떠한 낌새도 알아채지 못한 것 같았다. 펜과 수첩을 챙겨 일어나는 그의 얼굴은 아무런 미동도 없고 어쩐지 순진해 보이기까지 한다.


조그마한 회의실에 마주 보고 앉았다. 약간의 정적이 감돌았다. 수십수백 번 이 순간을 상상했었는데 막상 닥치니 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 마른 입술이 더욱 바짝바짝 마른다. “이제는 말해야지.’ 침을 꿀꺽 삼키고 천천히 입을 떼었다.


“저 퇴사하겠습니다.”


말을 내뱉은 순간, 나는 오랜만에 형용할 수 없는 희열을 느꼈다. 일종의 해방감 또는 개운함같기도 했는데 마치 밤고구마 열 개를 연달아 먹어 꽉 막힌 목구멍에 500ml짜리 사이다 한 통을 콸콸 들이붓는 것 같았다. 퇴사 사유가 건강 악화인 만큼 진지하게 말하고 싶었지만 나는 결국 웃음을 참지 못했다. 퇴사를 말하는 내 얼굴에는 마치 조커처럼 미소가 담겨 있었다.


“네? 뭐라고요? 아니 잠깐만, 이게 무슨 말이에요, 선생님!”


상황에 맞지 않는 내 미소는 상사에게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는 나의 퇴사 선언에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나는 오히려 상사가 이렇게 당황하는 것이 놀라웠는데, 그도 그럴 것이 내가 퇴사를 말한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 퇴사를 하겠다고 말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이렇게 나 스스로를 혹사시키면서 일하는 게 계속되면 퇴사를 할 수도 있겠다고 협박 반 진담 반으로 말한 것이 여러 번이었다. 이렇게 말한 것이 그에게는 내성이 되어 내가 항상 퇴사를 입버릇처럼 말하는 실없는 사람으로 인식되었는지 모르겠으나 퇴사를 말했던 매 순간이 나는 진심이었다. 그걸 몰랐다니 답답함에 한숨이 절로 나온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안 되겠냐는 상사의 말에 나는 바지를 걷고 그가 잘 볼 수 있게 다리를 책상 위로 들어 올렸다. 드러난 발목의 피부를 본 상사는 “아이고..”라며 입을 다물었다. 장기 병가 권유에 다시 돌아올 걱정 없이 푹 쉬고 싶다고 하자 그때서야 그도 포기한 것 같았다.


퇴사를 선언한 후, 이제 퇴사가 현실이 되었다는 생각에 오히려 마음은 차분해졌다. 물론 약간의 설렘과 기대도 함께 말이다. 그야말로 멘붕 상태에 빠진 상사를 앞에 두고 나는 그제서야 평정심을 찾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