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그 본질에 대해서
하루 종일 회사에서 열과 성을 다해 이리 뛰고 저리 뛰다 지친 몸을 이끌고 퇴근하는 전철 안에서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이렇게 몸과 마음을 바쳐 일하는데, 과연 이 일은 ‘내 일’인가?”
나는 워커 홀릭이다. 특별히 워커 홀릭이라 힘든 점은 없고 오히려 ‘이렇게 내가 열정을 다해도 괜찮은 일일까?’라는 일의 본질에 대한 질문이 나를 괴롭게 했다. 내가 평생 할 수 있는 일일지, 그만큼 내가 좋아하는 일인지, 계속 이 일을 했을 때 훗날 나는 후회하지 않을지 궁금했다. 아니, 사실 답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힘들었다. ‘나는 이 일을 평생 하고 싶지 않다.’ ‘나는 이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좋아하지 않는 일에 내 몸과 마음을 바치고 있다.’라는 내 마음속의 답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일, 내가 몸과 마음을 바쳐도 괜찮은 일, 내가 평생은 아니더라도 꽤 오랫동안 해보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면, 진정 ‘내 일’이 밥벌이가 된다면 좋겠다는 생각에 잠기다 열차 문이 닫힌다는 소리에 놀라 정차역이 왕십리역인 것을 확인하고 황급히 열차에서 내렸다.
나는 기본적으로 내가 하는 일, 함께 일하는 사람들, 내가 속한 조직을 사랑해야만 능률이 나오는 사람이다. 일을 시작하면서 그리고 일을 해내면서 내 일과 주변을 사랑하고자 했지만 결국에는 이 사랑에 금이 가는 일들이 생기고 말았다. 그중에 한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입사하고 2년 뒤, 나는 공석이 된 팀장 자리를 제안받았다. 내가 속한 팀은 몇 년째 저성과를 내고 있었고 마치 침몰하는 배처럼 이 팀의 결말은 뻔한 듯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권한과 책임이 동시에 부여되는 그 일을 나는 꽤나 재미있게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큰 고민 없이 팀장 자리를 맡았다. 내가 팀장이 된 직후 팀 내부 개편 작업을 진행하면서 나는 매주 새벽 1시가 되어서야 사무실을 나설 수 있었다. 팀이 안정되면서 퇴근 시간이 잠시나마 빨라졌지만 곧 코로나를 맞이하면서 주말에도 일을 하기 시작했다.
몇 년째 성과가 최하였던 우리 팀의 성과를 높이기 위해 내가 가장 중점적으로 했던 일은 팀원들의 동기부여였다. 동기부여에는 나를 리더로서 팀원들이 신뢰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 우리 팀의 목적이 무엇인지 나를 비롯해서 팀원들이 정확히 아는 것, 성과를 잘 내는 팀원에게는 그에 따른 보상을 주는 것, 성과가 낮은 직원에게는 다시 일어설 기회를 주는 것이 포함되었다. 한참 부족한 리더였고 이 동기부여의 영향인지 알 수는 없겠지만 우리 팀은 다시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지난 5년 간의 성과 중 가장 높은 성과를 기록하였다. 모든 성과 지표가 높은 건 아니었다. 그렇지만 5년 간의 성과 중 가장 높은 성과를 달성하고 있다는 것은 존폐를 논하던 팀에는 아주 긍정적인 시그널이었다.
드디어 팀의 존폐를 결정하는 우리 지역 지국장에게 팀 결과를 보고하는 날이 결정되었다. 새벽 1시 퇴근이 다시 시작되었다. 보고 장표들을 완성한 후 본부장에게 1차 보고를 했다. 돌아온 피드백은 ‘부족’과 ‘미달’이었다. 성과가 좋은 지표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언급이 없었고 성과가 좋지 않은 지표에 대한 분석을 요구받았다. 극찬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정도는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나는 실망했고 일종의 배신감까지 들었다.
잘 해내지 못한 부분에 대해 분석하고 이를 개선할 해결책을 찾는 것은 담당자의 중요한 역할이다. 특히나 일을 잘 해낸 것은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한 것이므로 당연한 일이지 공치사할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중요한 사실은 우리가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이다. 기름을 넣으면 움직이는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마음을 움직이는 그 무언가가 필요하다. 보수를 받았으니 돈 값을 해내라는 당연한 말이 아니라 ‘수고했다.’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그간 열심히 달려온 우리를 위로하고 다시금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운동화 끈 바짝 동여맬 힘을 주는 것이다. 나는 ‘수고했다.’는 그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말을 무척이나 간절히 원했다. 그 말 대신 ‘부족’과 ‘미달’로 대변되는 차디찬 이메일을 받고 조직에 대한 내 애정 또한 짜게 식어 버리고 말았다.
입사한 지 2개월 정도 되었을 때였다. 내 상사가 갑작스럽게 퇴사를 하게 되었다. 승진에 미끄러져서라는 둥, 둘째 임신 소식에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본부장으로부터 험한 소리를 들었다는 둥 흉흉한 소문이 돌던 그때, 본부장이 나와 동료들을 회의실에 모아 놓고 일장 연설을 했다. 주제는 ‘상사가 떠났으나 동요하지 말아라.’라는 것이었는데, 상사가 떠났으니 여러모로 부하 직원들 마음이 붕 뜰 수 있어 그걸 단속하기 위한 자리였다. 나는 아직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쭈구리였으므로 열심히 본부장의 말에 귀를 기울였고, 잘 듣고 있다는 의미로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녀는 한창 연설을 하다 멈추고 갑자기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그러더니 재미있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넸다.
“뭐 알아? 무슨 말인지 알고 끄덕이는 거야?”
상상치 못했던 저격에 나는 얼떨떨했으나 대답은 솔직하게 해야 했기에 “아니요.”라고 답했다. 실제 그 본부장이 했던 말의 대부분은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이었고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말들은 약어를 많이 쓰는 이 회사만의 언어로, 몇 개월 지나고 나서는 모두 익숙해졌다. 다른 동료들 앞에서 창피를 당했다고 생각한 나는 얼굴이 굉장히 빨개졌었는데, 그녀는 대수롭지 않은 듯 다시 고개를 돌려 동료들을 향한 연설을 계속했다.
“갑자기 상사가 나가 당황스럽고 또 어려운 점도 많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너무 걱정 말고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계속하면 큰 문제없을 거예요. 다들 일에 지쳤다면 휴가도 좀 다녀오고 쉬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그러다 그녀는 다시 나를 쳐다보더니 말을 이어갔다.
“아, 당신은 빼고. 당신은 집에 가서도 회사 일을 생각해야 해. 잠자는 시간 빼고는 회사 일을 생각해야 할 거야.”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나는 휴가를 쓰라는 따뜻한 배려가 나에게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다. 그걸 내가 알아듣지 못하기라도 한 듯, 또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듯이 말을 했고, ‘많은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 꼭 언급했어야 했을까?’라는 의문과 함께 ‘이 사람은 나를 좋아하지 않는구나.’라는 확신이 들었다.
“알겠습니다.”
짐짓 대수롭지 않은 척하려고 했지만 염소 울음소리처럼 떨리는 목소리는 어쩔 수 없었다. 간신히 본래 피부색으로 돌아왔던 내 얼굴은 다시금 빨개졌다. 그렇게 내게는 길게만 느껴졌던 10분 간의 연설이 끝나고 그녀는 회의실을 나섰다. 본부장이 떠난 회의실에서 나는 동료들에게 별일이 아니라는 것처럼 어색하게 웃으며 “몇 대 얻어맞은 거 같네요.”라고 말했다. 이에 동료들은 더욱 별일이 아니라는 것처럼 “신경 쓰지 마세요, 선생님. 본부장님은 새로 들어온 사람에게는 항상 그렇게 반응하니까요.” “맞아요. 우리 모두 겪었어요.”라고 말하며 유유히 회의실을 떠났다.
이런 일을 나만 당한 것은 아니라는 안도감으로 나는 놀란 내 마음을 다독였고, 마음속 깊이 피어난 불안감은 앞으로의 내 회사 생활이 평탄치만은 않을 것임을 조심스레 암시하는 듯했다. 그 이후 그녀가 새로 들어온 직원에게 못되게 구는 것을 목격하지는 못했지만 그녀가 직원들 모두를 못마땅하게 여긴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이끄는 우리 본부는 바람 잘 날이 없었고, 그녀의 변덕과 분노 조절의 피해자가 이번에는 누가 될지 눈치 보기에 급급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의 의미를 몸소 실감했고,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보호색을 띠는 방법을 각자마다 생존 노하우로써 터득해 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 모두 시름시름 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