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탕면 집에서 있었던 일

부사수에게 피부를 들키다.

by 하만다

점심시간이었다.

오전 내 있었던 긴 회의를 마치고 오늘은 특별한 걸 먹겠다며 회사 근처 홍콩식 완탕면 집에 갔다.


뜨끈한 국물 한 숟갈에 회의에서 쌓인 스트레스가 가시는 것 같다. 완탕을 매콤한 라조장에 찍어 맛보고 에그 누들은 입안 가득 넣고 씹자니 이것이 행복이지 싶다. 완탕면과의 만남에 한창 심취해 있는 내게 같이 간 부사수가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피부 괜찮으세요?”


오전 회의에서 누군가 내 피부를 보진 않을까 노심초사했던 차였다. 밝은 회의실 맨 앞이 내 자리였는데 하필 바지 길이가 애매해 의자에 앉으니 발목까지 피부가 드러나는 것이다. 테이블 앞 마주 앉은 사람들은 몸을 굽혀 테이블 밑으로 고개를 숙이지 않으면 내 발목을 볼 일이 없겠으나, 내 뒤에 앉은 사람들은 볼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역시나 내 뒤에 앉았던 부사수가 본 모양이었다. 못나고 흉해 들키고 싶지 않은 피부인데, 창피한 마음이 들었다.


“아까 회의 때 선생님 발목이 보이더라고요.”


괜찮냐고 묻는 부사수의 말에 나는 조금은 충동적으로 퇴사할 계획이라고 말해 버렸다.


갑작스러운 고백에 그녀는 놀란 눈치였지만 이내 어쩐지 그럴 것 같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나와 함께 주문한 완탕 튀김을 먹다 내려놓으며 짐짓 비장한 표정을 짓더니, 자신도 고백할 게 있다고 했다. 뜨끈한 완탕면이 식어가는 건 아쉬웠지만 저리 진지한 표정으로 고백할 게 있다는데 완탕면이 대수랴. 젓가락을 내려놓고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저도 퇴사하려고요.”


예상치 못한 고백이었지만 너무 놀라면 어쩐지 쿨하지 못한 것 같아 최대한 평정심을 찾고 자초지종을 물었다.


미국 로스쿨에 지원하기 위해 올해 말부터 공부를 시작할 예정인 점, 시험을 본 이후에는 만난 지 7년이 된 남자 친구와 결혼을 할 계획임을, 그리고 최근 더 심해진 우울증 증상까지 그녀는 꽤 많은 그리고 새로운 소식들을 전해 주었다.


그녀의 퇴사와 결혼 소식보다 그녀가 깊고 오래 앓고 있었던 우울증이 더 나를 생각에 잠기게 만들었다. 우리는 왜 살려고 나온 직장에서 삶을 갉아 먹히고 있을까. 돈을 벌고자 한 것인데 왜 그 대가가 건강이어야 할까. 그녀의 고백은 나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그저 버티고 있었던 것임을 알게 해 주었다. 내가 힘겨워했던 것, 내가 참을 수 없던 것, 내가 지쳐 포기했던 것 모두 내 옆의 동료, 상사, 부사수까지 우리 모두가 겪고 있던 것이었다. 다만 다들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숨기고 껴앉고 버티고 있던 것이다.


함께 일하는 사람이 우울증이라니 미안하다고 전하자 나 때문에 버틸 수 있었다고 그녀는 말했다. 모든 게 괴롭게 하더라도 기댈 수 있는 사람 딱 한 사람만 있으면 버티게 되는 것 같다며. 그녀가 말한 게 진실일지, 아니면 미안하다고 말하는 내 마음을 위로하고자 했던 그녀의 사려 깊음에서 나온 말인지는 알 수는 없었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퇴사하고 응원할 사람이 나 자신 말고도 한 사람 더 생겼다는 사실 말이다. 회사를 떠난 그 길이 언제나 꽃길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그녀의 길은 항상 꽃길이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