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불행을 보고 나의 평화에 감사하다

안도감, 그리고 죄책감

by 하만다

오늘도 어김없이 부사수는 내 자리로 오더니 장염 증세가 있어 오늘 일찍 들어가 봐야겠다고 한다. 역시 우리 팀에서 아프지 않은 사람은 없다. 오늘 오후 예정되어 있었던 회의를 미루고 이런저런 업무 이야기를 하다가 대뜸 “서진 씨 이야기 들으셨어요?”라고 묻는 그녀.


“들은 거 없는데요? 무슨 일 있대요?”


“최근 건강 검진 결과가 재검으로 떠서 다시 검사를 받았다고 하는데요.”


“…?”


“암이래요.”


서진 씨는 긍정적이고 에너지 넘치는, 같이 있으면 주변이 밝아지는 그런 사람이다. 우리 팀에 합류한 지는 이제 막 6개월이 넘은 시점이었다. 아직 20대 중반 젊은 나이인데 암이라니. 2, 30대 암 환자들이 늘어났다는 기사를 많이 읽었지만 실제 내 주변 사람에게서 생길 일이라곤 생각해 보지 못했었다. ‘말도 안 된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기냐.’, ‘너무 속상하다.’라는 말을 쏟아 낸 이후에야 무슨 암인지 물어보았다. 갑상선 암이라고 그녀가 말해 주었다.


갑상선 암… 요즘에는 젊은 사람들도 많이 걸리고, 완치율이 높은 ‘착한 암’이라고 부른다는데, 막상 내 주변 사람이 걸렸다니, 착한 암이고 나발이고 암은 암이다. 그 자체로 무섭다. 본인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가 아닌 만큼 아는 척은 하지 않겠다고 했다. 혹시라도 우리가 해줄 수 있거나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해 달라고 서진 씨와 이야기 나눠 주기를 나는 그녀에게 부탁했다. 서진 씨는 재검 결과가 나오기 전 걱정 말라는 동료들의 말에도 계속 부정적인 생각을 멈출 수 없다며 울적해했다고 한다. 지금 심정은 어떨까. 부디 너무 힘들어하지 않고 잘 받아 드려서 치료에 집중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꼭 이겨냈으면 한다.


대화를 마치자 문득 2월에 받았던 내 종합건강검진 결과가 떠올랐다.

‘갑상선 표면이 거칠고 불균일하니 3개월 뒤 재검을 요합니다.’라는 그 결과.


요즘 나도 목에 무언가 불편감을 느꼈던 터였다. ‘혹시 나도…’하는 두려움이 엄습해 하던 일을 급하게 마무리하고 회사 근처 병원을 찾았다. 진료를 기다리면서 아무 일 아닐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혹시 맞으면 어떡하지’, ‘아무 일 아닐 거라며 찾았던 산부인과에서는 자궁 근종이 발견되어 수술까지 했는데’라는데 생각에 미치자 눈앞이 캄캄해진다.


진료실에 들어서고 의사 선생님이 증상을 묻자마자 나는 내가 겪은 증상과 지난 건강검진 결과, 이에 대한 내 걱정들을 동네 일진 언니들한테 삥 뜯기고 들어온 아이가 엄마한테 이르듯 마구마구 쏟아 내었다.


“요즘 목에 이물감이 느껴지고 뭔가 불편해요. (목을 만지면서) 여기에 뭔가 있는 거 같아요. 최근 건강검진에서 갑상선 실질 에코가 거칠고 불균일하고 또 호르몬 수치도 이상 있다고 나왔거든요. 물론 재검했을 때 괜찮았지만요.”


“혹시 위산이 넘어오는 느낌 같은 건 없었어요?”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위염은 없던가요? 그것 때문에 목이 안 좋을 것 같은데.”


“아, 위염이 있었어요, 만성 위염!”


“그럴 줄 알았어, 위염 때문일 거예요. 위산이 넘어오면 목이 아플 수 있거든. 그리고 거기는 갑상선이 아니에요, 더 아래지.”


“…”


갑상선이 목 아래라니, 그런 것도 모르고 난 목 중간에 있을 것으로 추정한 내 갑상선을 걱정했었다. 정확한 진료를 위해서 마스크를 벗고 내시경으로 목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성대 뒤쪽 후두가 주변에 비해 약간 빨간 게 보인다.


“걱정할 정도는 아니고 맵고 짠 거 먹지 말고 떡볶이 같은 거. 커피, 초콜릿도 먹으면 안 돼요. 이거 못 끊으면 잘 안 나아.”


안도감이 밀려온다. 그리고 동시에 나 자신이 참 짠하게 느껴진다. 피부병에 이어 후두염까지 걸리다니 말이다. 반드시 퇴사하겠다고 또 한 번 다짐한다.


머릿속에 다시 떠오르는 서진 씨. 남의 고통을 보면서 나의 평화에 안도감을 느끼다니, 최악이다. 나 자신이 이렇게 못나 보일 수가 없다. 못난 죄책감과 함께 부디 서진 씨가 무사히 잘 치료하고 완치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