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타민 B

처음으로 들은 '잘했다'는 말

by 하만다

처리할 일이 있어 사무실로 출근을 했다. 직원 대부분이 재택근무를 하고 있어 사무실에서 마주칠 사람이 많이 없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들었지만 본부장이 사무실에 나와 있어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한 월요일 아침이었다. 자리에 앉아 업무를 보고 있는데 내 옆 자리의 인사팀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던 본부장이 코너를 돌아 내 자리로 오는 것이 곁눈질로 보였다.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퇴사를 하겠다고 말한 것이 실장의 귀까지 들어갔으니 본부장이 알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직원들이 퇴사 전 본부장과 식사나 커피 한 잔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 곧 내게도 그녀가 말을 걸어올 것을 예상했었다.


내 자리로 온 그녀는 대뜸 “좀 쉬었어요?”라며 말을 건넸다. 우리 회사는 코로나가 시작되고 언제부턴가 전면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데, 당연히 각자 업무에 따라 사무실에 출근하기도 했다. 스스로 계획한 사무실 출근 및 재택근무 일정을 직원 모두가 접근할 수 있는 파일에 기록하고 있어 누가 사무실에 올 것인지, 누가 재택근무를 하는지 미리 알 수 있었다. 스케줄표에 기록한 것과 달리 움직이기도 했는데 오늘 본부장이 그랬다. 나는 가급적 그녀와 마주치고 싶지 않았기에 사무실 출근 직원들이 누구인지, 불편한 상대(주로 본부장)가 없는지 확인한 후 출근했었다. 아무튼 이렇게 스케줄을 관리하다 보니 자연스레 휴가 계획이나 출장 일정도 전 직원이 스케줄표에 공유하게 되었는데 아마도 이 스케줄표를 통해 내가 금요일에 휴가를 낸 것을 아는 것 같았다. 금요일에 하루 휴가 낸 거 가지고 쉬었냐고 묻다니, 고까운 마음이 들었지만 권력에 순응하는 소시민답게 “네, 조금 쉬고 왔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오늘 점심 아니면 있다가 5시쯤 차 한 잔, 언제가 좋아요?”라고 그녀가 내게 물었다. 둘 다 좋지 않았지만 그렇게 대답할 순 없었다. 어느 쪽이 좋을지 고민하다 그녀와 밥을 먹으면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알 수가 없어 음식을 음미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자리가 불편한지 항상 먹고 나면 속이 좋지 않았던 터라 5시쯤 차를 마시는 게 좋겠다고 대답했다. 게다가 점심시간은 직장인에게 낮 시간 중 가장 소중한 시간이 아니던가. 그 시간을 빼앗길 순 없었다.


회사를 다니는 4년 반 동안 내가 그녀와 따로 식사한 것은 단 한 번 뿐이었다. 이 회사에 입사한 지 1년이 좀 지난 시점이었다. 갑자기, 그리고 처음으로 점심을 먹자는 그녀의 제안에 걱정 반 호기심 반으로 자리에 나갔었다. 식당은 내가 좋아하는 회사 근처 베트남 음식점. 그녀는 우리 팀에서 가장 높은 직급일 뿐만 아니라 그녀의 보스는 한국에 없기에 사실상 한국 사무실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고 있다. 그런 그녀와 단 둘이 조그마한 2인용 은색 테이블에 마주 앉아 있자니 긴장이 되어 나는 마치 갓 부서 배치를 마친 신입사원처럼 군기가 바짝 든 채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그녀의 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몇 마디 오가지 않은 그 자리에서 그녀는 “본격적인 이야기는 식사가 끝나면 하겠다”고 선언을 해버렸다. 그래서였을까, 밥은 몇 술 뜨지 못했지만 체하고 말았다.


목적이 있는 만남인 것을 알고 있는데 내 목숨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상대방이 꺼낼 카드가 부탁인지 협박일지 알지 못한 채 음식만 꾸역꾸역 넘겨야 하는 그 자리가 나는 굉장히 힘들게 느껴졌었다. 취미는 무엇인지, 가장 좋아하는 넷플릭스 프로그램은 무엇인지를 묻는 그녀의 질문에 대답은 했지만 입사하고 1년 만에 다시 면접을 보는 것 같았고, 그녀가 묻는 사적인 질문도 나에 대한 관심이라기 보단 단순히 시간을 때우는 것처럼 느껴졌다. 좋아하는 쌀국수를 반이나 넘게 남기고 그렇게 식사를 마쳤다. 나와 그녀는 음식점 근처 카페로 가 커피를 테이크 아웃하곤 사무실까지 걸어갔다. 잠시 정적이 이어지더니 그녀는 드디어 준비했던 말을 꺼냈다.


“지훈 씨, 어때요? 같이 일하는데 힘든 점 없어요?”


너무 생뚱맞은 질문에 나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지훈 씨는 우리 팀 동료로, 나보다는 1년 먼저 입사한 직원이었다. 맡은 업무를 성실히 잘 해내지만 방어적인 성격이라 다가가기 어렵고 편하게 대화 나누기는 어려운 사람이었다. 점심을 같이 먹기로 약속을 잡은 이후부터 커피를 사고 나와 사무실로 걸어가는 순간까지 나는 오늘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게 될지, 그녀가 대체 내게 궁금해하는 것은 무엇일지 머리를 이리저리 굴려 보았지만 동료 김지훈 씨 이야기가 나올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네? 무슨 말씀이신지요?”


적지 않게 당황한 채 묻는 내게 그녀는 지훈 씨에 대해 여러 제보를 받았다며 그가 팀 내에서 어떤 어려움을 만드는 ‘트러블 메이커’인지, 그 구체적인 사례를 말해 달라고 했다. 카페에서 사무실까지는 그리 길지 않은 거리였지만 나는 그 거리를 걷는 시간이 길게만 느껴졌다. 왜 그녀가 내게 그런 질문을 하는지, 내가 어떤 답변을 해야 하는 것인지, 내 답변이 지훈 씨에게, 내게 그리고 우리 팀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인지 복잡한 셈을 하느라 바빴다. 나는 결국 그녀가 원하는 답변은 해주지 못했고, 팀 내 사정은 알지도 못하는 바보가 된 채 대화는 끝났다.




참으로 불편했던 점심 식사 이후 2년이 훨씬 지났지만 그 기억은 강렬했기에 나는 다시 그녀와 식사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추측컨대 나를 붙잡는 말을 할 것 같아 어떻게 말해야 일부 측근을 제외하곤 모든 직원을 눈엣가시로 생각하는 그녀에게 적이 되지 않고 그 상황을 잘 넘길 수 있을 것인지 답변을 정리했다. 그리고 5시가 되었다.


키친에서 만난 본부장이 물었다. “뭐 마실 거 사러 나갈까요?”


개인 텀블러에 둥글레차를 담아 마시고 있던 나는 “아뇨, 저는 차가 있어서 이걸 마시면 될 것 같아요.”라고 대답했다.


“좋아요, 그러면 A 회의실이 비었던데 거기로 가요.”


사람이 없는 커다란 회의실, 긴 탁자 앞에 그녀와 나는 서로 마주 보고 앉았다. 건강이 많이 안 좋냐는 질문부터 시작한 대화는 본부장 자신이 일을 하면서 아팠던 경험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병가를 쓸 생각을 해보지 않았냐는 질문에 병가 제도가 있는 줄 몰랐다고 솔직하게 답변했다. (복리후생과 관련해 이야기하는 것을 쉬쉬하는 인사팀은 혹시 직원 중에 이와 관련해 묻는 사람이 있으면, 본사에 묻거나 인트라넷에서 직접 규정을 찾아보라며 말하곤 곧장 본부장에게 '누가 이런 걸 묻더라며' 고자질하는 바람에 누구도 인사 규정을 묻지 않았다. 회사 규정을 묻고 정당하게 사용하는 데 상사에게 찍힐 각오 해야 한다니 참 웃기는 회사다.) 본부장은 자신이 아팠을 때 6개월 정도 병가를 갖고 쉬다 돌아오니 다시 일하는 재미를 찾았다며 병가를 쓰고 쉬는 게 어떤 장점이 있는지 설명해 주었다. 그녀는 쌩둥 맞게도 회사는 내가 없이도 잘 굴러가고 일하는 모든 직원은 대체 가능하다고 말했는데, 아마도 얼마 전 실장에게 병가를 써도 여러 이유로 마음이 불편해 그냥 퇴사를 하겠다고 한 것이 본부장 귀에도 들어간 것 같았다. 그녀가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나는 '모든 사람은 대체 가능하다'는 말이 대화 내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나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며 자신이 어떻게, 그리고 왜 회사에 다시 돌아왔는지를 꽤나 자세히 설명하던 본부장은 이번에는 주제를 바꿔 자신의 행동에 대해 사과를 하기 시작했다. 본부장 자신이 직원들에게 혹독하게 이메일을 쓸 때가 있는데, 그 경우 대부분 다른 사람을 겨냥하여 쓴 것인데 내가 본인이라고 생각하고 모든 십자가를 진 것 같아 미안하다고 말이다. 물론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겨냥한 말이란 것을 알기도 했지만 내 책임을 피하기 어려운 것도 있었을뿐더러 다른 팀원에게 하는 매정한 말이 언젠간 나를 향한 말이 될 것임을 모르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런 말이 오가는 팀 분위기가 살얼음판이라는 것을, 대상이 내가 아니라 동료였다고 하는 말이 내게 위로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왜 그녀만 모르는지 도통 알 수 없었다.


그녀는 내 안의 경쟁심을 자극시키고 싶었는지 “어려운 시기 팀을 성장시켰고 성과 또한 만들어 냈는데 왜 아깝게 그걸 다른 사람에게 주냐”고 말하며 능청스럽고 짓궂은 표정을 지었다. 순간 내가 퇴사한 후 남은 직원들이 지금까지의 성과를 토대로 공로를 치하받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내가 저 자리에 없어도 되나?'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없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자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 "병가 이외에 다른 옵션은 없는 걸로 생각하라"는 협박 아닌 협박과 "어떤 선택을 하든 당신의 결정을 지지하고 응원하겠다"는 다소 모순되는 이야기로 대화는 마무리되었다.


대화가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그녀가 내게 무언가를 책상 위로 내밀었다.


“이건 자기 선물”


언뜻 봐도 영양제 같이 생긴 그것은 가까이서 보니 비타민이었다. 비타민 B. 피로해소에 좋다며 그녀가 건네는 비타민 B를 받아 들었을 때 묘하게 기분이 나빴는데 그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내가 회사에 바란 것은 어쩌면 인정과 지지였을지 모르겠다. ‘잘하고 있다’는 말, ‘힘든 거 알고 있다’는 말, ‘같이 열심히 해보자’는 그 말이 필요했던 것 같다. 결국 나는 그 말의 부재로 회사를 떠나려는 것이었다. 돈이나 사회적 인정, 만족스러운 처우 등 회사를 다녀야 할 이유는 차고 넘쳤지만 회사를 떠나야 하는 이유는 간결했다.


돈을 받고 일하는 계약관계의 '을'로서 내가 일을 잘 해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일을 잘 해내지 못한다면 그것은 내 능력 부족이었고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제 몫을 못하는 사람이고 회사에 필요 없다는 게 윗분들의 생각이었다. 어쩌면 당연한 것이지만 인간이 그리 단순하지 않지 않은가.

나는 이 비타민 B 영양제가 그녀가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낸 인정과 격려인 양 한참을 설렘과 씁쓸한 마음으로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