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가 무너진 조직
몇 년 전 내가 이끄는 팀의 송년행사가 있던 날이었다. 홍대의 작은 카페를 빌려 오전에는 팀의 성과와 내년도 계획을 공유하고, 오후에는 맛있는 다과를 곁들여 수다를 떨면서 한 해를 마무리하는 자리였다. 이른 오후, 우리 팀은 아니지만 같은 실에서 근무하는 동료 지원 씨가 업무를 마무리하고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카페에 막 왔을 때였다. 오는 택시 안에서 멀미를 했다며 안색이 하얗게 질린 그녀는 오자마자 화장실이 어디냐고 물었다. 화장실에 다녀온 후 더욱 창백해진 그녀 얼굴에는 시커먼 다크서클이 눈 밑에 내려앉았고 그녀는 너무 미안하지만 병가를 쓰고 가봐야겠다고 했다. 나는 본인이 꼭 와야 하는 행사가 아님에도 이곳에 오느라 속까지 뒤집어진 그녀가 안쓰러우면서도 고마웠고, 미안할 것 없이 어서 들어가서 쉬라고 하며 그녀가 가질 마음속 불편함이 덜어지길 바랐다. 그녀가 인사를 마치고 정신없이 뒤를 돌아서자마자 자리에 함께 있던 본부장은 그 뒤에 대고 대뜸 말했다.
“Inefficient! (비효율적이네!)”
한 번은 이런 적도 있었다. 우리 지역 지국장이 한국에 방문해 우리 팀의 올해 결과를 보고 받는 자리였다. 1차 보고가 끝나고 잠시 쉬는 시간이었는데, 몇몇 팀원들은 화장실에 가거나 부엌에서 물을 마시고 있었고 나는 회의실에 앉아 있었다. 본부장은 프랑스인인 지국장과 안부를 주고받다가 자리를 비운 동료 지원 씨가 곧 결혼을 한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다.
“아참, 지원 씨가 곧 결혼해요.”
“오, 좋은 소식이네요. 그런데 그 소식이 당신에게 좋은 소식일지는 모르겠네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 지국장에게 본부장은 아무런 말 없이 멋쩍게 웃었다.
공익적인 목표를 위해 일하는 조직이고, 다양성 존중이 핵심 가치 중에 하나인 이곳에서 부하 직원의 임신이 상사에게 좋은 소식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말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오갈 수 있다는 데에서 나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작년 6월이었다. 실장은 나를 회의실로 부르더니 상사 그리고 동료 채민 씨와 함께 일하는 것이 어떠한지 물었다. 다소 엉뚱하다고 생각되는 이 질문이 나는 무슨 의미인지 물었고 그녀는 상사와 동료 채민 씨가 내가 일을 하는 데 있어서 어떤 도움이 되냐며 질문을 정정했다. 여전히 질문의 저의가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상사인 기석 선생님께는 제가 팀을 운영하면서 생기는 여러 이슈들을 보고 드리고 있고 문제가 생겼을 때 조언을 얻고 있습니다. 채민 선생님은 팀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업무들을 공유하고 각자의 영역에서 업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내 답변이 시원치 않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녀는 나에게 상사와 동료 채민 씨에 대해 가지고 있는 불만들을 하나둘씩 꺼내기 시작했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업무를 하는 데 있어 큰 교류가 없는 실장이 내게 와서 내 상사와 동료 험담을 하는데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 것일까?
나는 그녀가 말하는 사건들에 대해 내 생각을 이야기했다. 그것은 상사와 동료를 지지하는 발언이기도 했고 어떤 것은 아쉬운 점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러나 나를 포함해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 부족한 부분이 있고, 상사와 동료들로부터 나는 배울 점이 많다는 것을 명확하게 말했다.
나는 그날 이후로 죄책감에 시달렸다. 내가 했던 발언들이 적절했는지, 혹시나 상사와 동료에게 불리한 발언은 아니었는지, 사실에 기반한 내용이었는지, 그날 그 장면을 머릿속에서 수십 수백 번 반복 재생했다. 나는 떳떳하다고 여겼지만 한편으로는 나 자신을 비난했다. 그냥 아무 말도 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모른다고 말하는 것을 왜 어려워했냐고. 상사와 동료에게 있었던 일을 전할까도 했지만 그렇게 되면 그들이 상사를 불신하고 오히려 일을 하는 데 있어 사기가 저하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그러지 못했다.
이 사건은 내게 큰 영향을 미치고 말았다.
같은 달 말 일, 나는 상사에게 퇴사하겠다고 말했다.
2021년 들어, 함께 일하는 부사수 중 한 명이 정기적으로 병원 진료를 받기 시작했다. 산부인과 진료였는데 임신을 위해 방문하고 있다고 내게만 귀띔해주었다. 몸이 약한 부사수가 임신 준비를 하는 게 안쓰러우면서도 건강한 몸을 잘 만들어서 간절히 원하는 임신이 되기를 바랐다. 다른 한 편으로는 팀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부사수가 임신을 하게 되면 생길 어려움이 떠올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걱정이 되었다. 안 그래도 부족한 현재 인력에서 부사수가 출산을 하게 되면 업무 공백이 생길 것이었고, 또 업무 특성상 외부에서 주로 머무는 부사수 업무를 잘 배분해서 부사수가 임신 중에 무리하지 않게 하는 것도 내 일이란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러던 중 본부장으로부터 호출이 왔다. 근 2년 만의 호출 같았다. 내 업무에 대해 이것저것 묻길래 요즘 내가 가지고 있는 고민이라며 자연스레 부사수의 임신 계획과 그로 인해 팀에서 발생할 수 있는 어려움을 공유했다. 그녀가 우리 팀 내 부사수의 임신 계획을 이리저리 떠벌릴 사람이 아니었고 또 관심도 없을 것이었지만 이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내 이야기를 듣더니 본부장은 미소를 지으며 목소리가 한껏 올라간 톤으로 말했다.
"걱정하지 마. 인력이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만다 씨가 트레이닝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거야."
이 말의 의미를 부사수의 임신으로 생기는 업무 공백에 대한 대체 인력은 뽑아주지 않을 것이며 그 업무를 나보고 소화하라는 것이다고 나는 해석했다. 억지로라도 좋게 해석하자면, 내가 업무 전선에서 빠진 부사수의 일까지 하게 되면 부사수가 하는 일에 대해 정확히 알게 되고 그녀와 다른 팀원들을 수퍼바이징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며, 더 나아가 이 분야에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쯤 되겠다. 그러나 결코 이 문제는 그렇게 해석해서는 안된다. 한 사람의 몫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서도 안 되고, 그 일을 넘기면서 맡은 업무를 잘 해낼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 여러 사람의 몫을 한 사람이 다 해낸다면 애초에 업무가 잘못 분장되었거나 설사 그 사람의 능력으로 그 일을 잘 해낸다면 분명 언젠가는 무거워진 업무량에 짓눌려 그 사람의 일과 일상이 모두 무너질 수 있다.
나는 혹시나 내가 가진 고민이 해결되지 않을까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그녀에게 고백했던 것을 후회했다. 역시나 그녀는 일하고자 하는 내 의지를 너무나도 쉽게 무너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