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취소한다고 해도 될까?

주변의 조언과 현실적인 고민

by 하만다

"나 퇴사할 거야"


거실 소파에 앉아 티비를 보던 나는 퇴근하고 집에 들어온 동생에게 아무 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네가 상관할 바 아니잖아'라는 투였지만 어떤 반응이 나올지 궁금해 곁눈질로 동생의 표정을 살피고 있었다.


"퇴사한다고?"


동생은 옷을 갈아입으려다 말고 자기 방에서 나와 표정이 살짝 구겨진 채로 물었다. 쌍수 들고 찬성하진 않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반응을 보니 잔소리를 좀 들을 것 같았다.


"응, 회사에 말도 했어. 올해 말까지만 다니고 퇴사할 거야."


'이제 다 끝난 일인데, 네가 어쩔 테냐'하는 심산이었다.


"퇴사하고 뭐 할 건데?"라고 묻는 동생에게 나는 "그냥 좀 쉬면서 지금까지 해보고 싶었던 거 해보려고." 대답했다. 상황이 꽤 진지한 것을 알아챘는지, 아니면 나를 이대로 두면 안 되겠다고 판단했는지 동생은 자세를 고쳐 잡고 말했다.


"누나, 잘 생각해. 누나 이제 그런 고민할 나이는 지났어. 당장 돈 못 벌면 뭘로 살 건데. 설사 모은 돈으로 산다고 하더라도 지금처럼 좋은 직장 또 잡을 수 있을 거 같아? 월급도 누나 나이에 그렇게 벌기 쉽지 않아."


역시나 예상한 대로 듣기 싫은 소리를 쏟아내는 동생에게 "내가 알아서 할 거야"라고 말한 후 내 방으로 들어왔다.


'지가 뭘 안다고 그래. 내가 얼마나 힘들게 돈 버는지 알기나 하나? 뭘 안다고 훈수야.'


동생은 대학병원에서 방사선사로 일하고 있다. 코로나 시국이었지만 병원에서 일하다 보니 재택근무는 할 수 없었고 휴가도 자주 그리고 길게 사용하지는 못했는데, 코로나 이후 많은 시간을 집에서 일하면서 휴가도 많고 원할 땐 2주 넘게 쉴 수도 있는 내 직장이 아주 좋은 직장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뭐, 돈도 많이 주고 말이다. 크게 틀린 말을 한 것은 아니기에 동생에게 하지 못한 말을 속으로만 생각하고는 침대에 냅다 누워버렸다.


침대에 누워 빈 천장을 바라보며 동생이 한 말을 곱씹다 보니 얼마 전 친구가 한 말이 떠올랐다. 동생이 한 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고등학교에서 지리 교사를 하고 있는 친구는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쉬겠다고 하자 퇴사를 하고 무얼 할 것인지, 얼마나 쉴 예정인지, 그 이후 계획은 어떻게 되는지 물었다. 친구는 구구절절한 내 대답을 듣고선 다시 취업하는 게 쉽지 않으니 확실한 것이 없으면 퇴사해서는 안된다며 내 퇴사 결정에 동의할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표정을 감추려고 노력했던 것 같지만 좀 전에 동생이 지었던 못마땅하다는 표정이 친구의 얼굴에서도 옅게 묻어 나왔다.


내게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다. 짧게는 3개월, 길게는 6개월 정도 쉬면서 운동도 하고 또 그간 회사와 학교 핑계로 하지 못했던 여러 도전들을 해볼 참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선 별 고민 없이 취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이력서를 쓰고 면접을 보러 다녔다. 그렇게 들어간 첫 회사에서 4년 전 처우가 더 좋은 지금 회사로 이직했었다. 2년 전부턴 대학원까지 다니면서 쉴 틈 없이 달려왔던 기간이었다. 지금까지는 무작정 앞만 보고 달려왔다면 이번엔 좀 멈춰 서서 내가 잘하는 건 무엇인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시간을 갖고 생각하고 싶었다. 좀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나는 그것이 돈을 벌고, 남들과 같은 궤도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 무언가를 이뤄내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동생과 친구가 "그래서 퇴사하면 계획이 어떻게 되는데?"라고 묻는 말에 똑 부러지게 대답하지 못했던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현실적인 고민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모아둔 돈은 있었지만 딱 6개월 정도를 버틸 수 있는 금액이었다. 6개월이란 시간이 길지도 않지만, 갑작스레 무슨 일이 생긴다면 퇴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취업 준비를 해야 할지도 몰랐다. 취업이 쉬운 것도 아니거니와 그렇게 잡은 직장이 지금 직장보다 더 좋은 곳이라는 보장도 없었다. 게다가 내년 10월엔 9년 넘게 사귄 남자친구와 결혼을 할 예정이었다. 결혼 준비하는 친구들을 옆에서 보니 결혼이라는 게 순 돈 들어갈 곳 천지라, 결혼 자금을 미리 모아뒀지만 추가로 지출해야 될 상황이 생긴다면 생각만 해도 막막했다.


퇴사하고 가지게 될 자유와 앞으로 펼쳐질 꿈같은 미래에 대한 상상으로 부푼 마음에 들떠 있던 나는 동생과 친구의 말에 급격히 현실로 주저앉았다. 그들의 말이 나를 계속 옭아매었고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을 직시하게 만들었다. 결국 여러 생각 끝에 '내가 괜한 짓을 했나'하는 후회가 들었다. 불을 끄고 애써 잠들려고 노력했지만 동생이 한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누나, 이제 그럴 나이는 지났어"


나는 잠에 들지 못한 채 실장과 본부장이 말한 '병가'라는 카드를 계속 만지작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