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일간의 여정을 마치고
한 달은 뭔가 아쉬워 기어이 며칠 더 붙여 총 38일을 제주에 있다가 돌아왔다. 제주에 대한 내 호기심과 애착은 생각했던 것보다 깊었을지도 모르겠다.
일상으로 돌아온 후 나는 한동안 제주를 떠올리지 않았다. 그리운 건 더더욱 없었다. 제주의 모습이 떠오르고 그리웠던 건 한참 뒤였다.
일상을 살아 내다가 힘들고 지칠 때, 쉼이 필요할 때, 잘 걷고 있다가 괜히 한 번쯤 뒤를 돌아보고 싶을 때, 그럴 때 나는 제주를 떠올렸다. 바람이 많이 부는 날, 그렇지만 햇살은 아주 따스한 날, 그런 날에도 제주가 생각났다. 그리곤 코끝이 시큰해져 고개를 세차게 흔들고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뭐야, 궁상맞게."
처음 말했던 것처럼 별 기대를 하지 않고 갔던 제주 한 달 살이었다. 이 기간이면 유럽을 갔을 텐데, 하필 코로나 시국이라 외국에 나가기는 솔직히 겁이 났다. 그렇게 시작했던 제주와의 만남이었다.
기대한 만큼 실망이 크다는 말, 그 말을 반대로 하면 기대가 적을수록 만족이 크다일 것이다. 바라는 게 적었던 만큼 좋았던 날들이었다. 때론 혼자라 쓸쓸하고, 때론 같이라 지쳤다. 다시 혼자라 기뻤지만, 또다시 함께라 즐겁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나 자신에 대해서 알게 되어 행복했던 날들이었다.
장장(?) 38일간의 제주 살이를 마친 후 느낀 점과 권유 사항 몇 가지를 공유하고자 한다. 혹시라도 제주 한 달 살이를 계획하고 계시는 분들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느낀 점>
1. 혼자도 좋지만 함께도 좋다.
2. 언제나 내 몸과 마음을 지킬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특히 혼자일 때는 말이다.
3. 인생은 심플할수록 행복하다.
4. 시간이 많더라도 하고 싶은 걸 다 하기에는 부족하다. 그러니 우선순위를 정하자.
5. 평범한 날들이 행복한 날들이다. 어쩌면 행복은 도파민이 아니라 평온한 상태에서 오는 걸지도.
<제주 한 달 살이를 계획한다면>
1. 겨울 제주는 가급적 피해라.
: 따뜻한 제주라도 겨울은 겨울이라, 춥고 해도 빨리 져 어렵게 시간을 내서 왔는데 제주를 더 보고 느낄 수 없어 아쉬움이 크다.
2. 날씨 예보를 너무 믿지는 말아라.
: 비가 온다고 해도 금방 그치고, 맑다고 하더라도 금방 비가 오는 곳이 제주다. 고로 어떤 날씨라도 초탈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3. 짐은 무조건 단촐하게 싸라.
: 이것도 저것도 필요하다고 챙기다 보면 돌아올 때 고생할지도 모른다. 제주는 한국이니 꼭 필요한 물품은 내려가서 구매하고, 없어서 조금 불편한 정도라면 한 달간은 참아보는 것도 추천한다.
4. 잦은 SNS 활동은 자제하되, 사람들과의 적당한 관계는 유지할 것.
: SNS는 사람들과 나를 이어주는 중요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이지만, 보고 느낄 제주가 눈앞에 펼쳐져 있는데 하루 종일 휴대폰만 들여다보는 것은 자원 낭비다. 그렇지만 적당한 관계는 유지하는 것이 좋다. 결혼식엔 못 가더라도 축의금은 꼭 하는 것처럼.
5. 갑작스레 운동을 한다면 준비운동을 철저히 해라.
: 주변에 자갈이나 넘어질만한 게 있지는 않은지 확인하는 것도 필수다. (사연이 궁금하다면, https://brunch.co.kr/@manda/51 )
6. 숙소 근처에 병원이나 약국이 멀지 않은 곳에 있을 것. 파출소도 빠질 수 없다.
: 한 달 살이 기간 중에 아프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24시간 불을 밝히고 있는 파출소가 근처에 있는 것만으로 마음의 위안이 된다.
누군가 내게 그때로 다시 돌아가 제주 한 달 살이를 하겠냐고 묻는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예”라고 대답할 것이다. 제주 한 달 살이는 내게 힘들었던, 가끔은 지옥같이 느껴졌던 곳에서 벗어나 평범하고 고마운 일상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비 오고 바람 불어 도저히 걷기 어려울 것 같아 집에 돌아갔다가 다시 내리쬐는 햇살에 허탈한 마음이 들게 했던 제주의 변덕스러운 날씨도, 잘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정겨웠던 해녀 할머니들과의 인사도, 무엇보다 항상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은 새파랗고 맑은 세화 바다도, 나는 언제나 그리워할 것이다. 그리고 제주 한 달 살이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도 말한다. 무얼 상상하든 그 이상의 것을 보고, 느끼고, 경험하고 올 것이라고. 그리고 제주를 지금보다도 더 사랑하게 될 것이라고.
*두서없이 써 내려간 제 제주 일기를 읽어 주시고 응원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는 말씀 전합니다. 평범했던 일상들을 글로 쓴다는 게 쉽지 않았지만, 읽어 주시는 분들이 계신다는 사실 덕분에 끝까지 쓰게 되었습니다. 제 글을 읽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앞으로는 더 재미있는 일상과 여행 이야기로 찾아뵐 예정이니 염치없지만 계속해서 관심과 애정 부탁드리겠습니다.
<제주 한 달 살이> 첫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https://brunch.co.kr/@manda/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