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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만다 Oct 17. 2023

K장녀의 (동)유럽 가족여행

프롤로그 및 등장인물 소개

프롤로그


지난 6월, 우리 가족은 헝가리 부다페스트와 오스트리아 첼암제, 비엔나를 여행하고 돌아왔다. 8박 11일이라는 짧다면 짧은, 길다면 긴 여행이었다. 대학 입학을 위해 홀로 상경한 후, 부모님과 함께 이렇게 긴 시간을 보낸 것은 거의 처음이었다. 서울에서 지내다 오랜만에 본가에 내려가 부모님을 뵐 때면 반가운 마음이 드는 것도 잠깐, 얼마 못가 당장 내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마음먹게 되는 일들이 많이 있었다. 하물며 여행이라니,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텐데 여행 가기 전 나는 왜 그걸 몰랐는지 참. 앞으로 어떤 일들이 닥칠지 상상도 못 한 채 나는 무언가에 씐 것처럼 같이 여행 가자며 가족 한 명 한 명을 꼬셔댔다.



"같이 가자, 재밌을 거야!"



우리는 그 짧고도 긴 기간 동안 가족이란 이름으로 묶여 2인 3각을 하듯 유럽 여기저기를 쏘다녔다. 체력도 다르고 취향도 다른데 이미 짜인 스케줄(내가 짰다.)에 맞춰 한 몸처럼 움직였다. 가족 중 누군가는 힘들긴 하지만 최대한 스케줄에 맞춰 다니고자 애썼고, 또 누군가는 왜 나는 고려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정한 일정을 강요하냐며 화를 냈다. 우리는 서로 오해하고 다퉜고, 울고 토라졌다. 여행을 마치고 인천공항에 도착했을 때 나는 다시는 가족여행을 가지 않겠노라 다짐하며 스스로 영상을 찍어 남기기까지 했다. 내 굳은 의지의 표명이었다. 여행에서 돌아온 지 4개월이 지난 지금, '돌이켜 보니 좋은 추억이었어', '다시 간다면 저번보다는 괜찮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그럴 때면 나는 내 양 뺨을 스스로 갈기며, '안돼, 다시 가면 절대 안 돼!'를 외치고 있다. 우리 가족의 여행은 그런 여행이었다.










여행을 다녀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부모님 여행 십 오계명>이라는 제목의 글을 인터넷에서 우연히 발견했다. 자녀들과 해외여행 시 부모님들이 하지 말아야 하는 말과 행동에 관한 리스트였다. 아니, 이런 게 있다는 걸 미리 알았으면 여행 전 프린트하고 코팅해서 엄마, 아빠 지갑에 넣어 떠나는 날 전까지 달달 외울 수 있도록 일러두는 건데 왜 이제야 알게 되었나 하고 아주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가 자세히 읽고는 우리 부모님껜 해당되는 사항이 별로 없어 안도(?)했다.



인터넷에서 발견한 해외여행 금지 십 오계명



얼마나 많은 자녀들이 부모님과의 여행에서 고충을 겪었으면 십계명, 십 오계명까지 나왔을까. 함께 멋진 곳에 가서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즐기기 위해 떠난 여행이었을 것이다. 더 좋자고 어렵게 기회를 만들어 떠난 여행에서 아주 사소한 일들 때문에 속상하고 아쉬웠을 자식들의 처지가 상상되고 공감되었다. 동시에 지난 여행을 통해 부모님들이 자녀들과의 해외여행에서 어떤 마음이 드는지, 카리스마 넘치는 아빠가 왜 난생처음 눈물을 보였는지 알게 되어 십 오계명을 읽으면서 괜스레 마음이 씁쓸해졌다



많은 사람들에게 '좋아요'를 받은 그 십 오계명을 읽고 공감이 된 부분도 있었지만, 각자 집안마다 분위기, 관계, 성격, 취향이 다르기 때문에 모든 가족에게 적용되기는 어렵겠다고 느꼈다. (우리 집만 해도 가장 크게 다툰 것은 이 십 오계명에 명시된 내용 때문이 아니었다.) 이번 여행에서 우리 가족이 경험한 것 역시 다른 가족들의 여행에 완전히 적용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래도 멀고 먼 유럽에서 11일 동안 농축해서 겪은 우리 가족의 여행 이야기가 사랑하는 부모님, 가족들과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 글을 쓴다.





등장인물


[아빠]



나와 동생을 '공주님', '왕자님'으로 부르는 유일한 사람. 우리가 어렸을 땐 엄격한 아버지였으나, 성인이 된 지금 오히려 더 많은 애정표현을 한다. 아마도 옛날에 좀 더 다정하게 해주지 못한 것이 마음에 남아 있는 듯. 자식들에 대한 걱정이 많지만 기본적으로는 잘할 거라 믿어주는 스타일. 음식 하기, 설거지하기, 청소하기 등 집안일은 손 하나 까딱 안 하는, 엄마에게는 전형적인 가부장적인 남편. 그렇지만 엄마가 먹고 싶다는 음식이 있으면 저녁 약속을 취소하고 엄마와 레스토랑에 가 먹고 싶다던 음식을 함께 먹고, 갖고 싶다는 신발이 있으면 몰래 백화점에서 사 와서는 "오다 주었다"를 시전 하는 츤데레. 애정이 많은 만큼 본인에게도 애정을 갈구하는 편. 온 가족에게 잘 삐지고 상처받는다. 갱년기 겪고 있는 중.


여행 스타일


새로운 것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이 많아 여행지에 가면 천천히 살펴보고 관찰하고 즐기려는 스타일. 쇼핑하는 것도 좋아한다. 건강 관리를 이유로 지나치게 기름지거나 튀긴 음식이 아니라면 새로운 음식에 대해서도 편견이 없고 도전하는 것을 좋아한다. 관광과 휴양을 모두 즐긴다. 단체주의적 성향이 있어 내가 즐기는 것을 다른 사람도 함께 즐기기를 바라고, 그런 마음이 간혹 강요로 이어지기도 한다. 풍경 사진이나 본인을 피사체로 한 사진을 찍는 것을 좋아한다.





[엄마]



가녀린 소녀 감성을 지녔다. 눈물이 많아 드라마를 보다가도 울고 나와 싸울 때도 논리에 밀리면 꼭 울어 결국 나를 나쁜 딸로 만드는 장본인. (나도 눈물이 많은데) 아빠보다는 네 살 어리다. 궁합도 안 본다는 네 살 차이지만 이 때문에 내가 궁합을 안 믿는다. 다혈질인 다른 가족 구성원 못지않게 다혈질이지만 가정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성격을 참아가며 발란스를 잡으려고 노력한다. 특히 아빠와 동생 간의 기싸움을 해결하려고 애쓰는데 보통 동생을 달래는 쪽. 걱정이 많은 성격이지만 자식들에 대해선 믿고 지지하며 항상 잘할 수 있다고 독려한다. 당뇨가 있어 음식을 가려 먹어야 하지만 "자주 먹는 게 아니니까"라는 주문을 무한 반복하는 탓에 건강 염려증 아빠의 잔소리를 매일같이 듣는다.


여행 스타일


걷는 걸 좋아하지만 몇 년 전 무릎 건강이 안 좋아져 조심하는 중. 여행 가서 안 걷기보다는 약을 먹고서라도 걷는 것을 좋아한다. 낮에는 잘 돌아다니지만 겁이 많아 어두워지면 밖에 다니지 않고 숙소로 들어가 쉬려고 한다. 새로운 음식에 대한 거부감이 높은 편이고 특히 위생이 청결하지 않으면 절대 입에 대지 않는다. 새로운 곳에 대해서 알고자 하기보다는 그 자체를 느끼고 즐기는 편이다. 가자고 하면 잘 따라다니지만 어딘지 모르고 따라다녀서 간혹 어디에 다녀왔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특히 지명) 쇼핑 자체를 즐기지 않고 허튼 곳에 돈 쓰는 것을 싫어한다. 전반적으로 어딜 가고 무얼 먹느냐보다 가족들과 함께 있는 것 자체를 좋아하며 감사하게 여긴다.





[나]



K장녀. 할 말은 하고 사는 성격에 다혈질이다. 스스로 성격을 많이 개조했다고 여기고 있고, 실제로 엄마와의 싸움 빈도는 예전에 비해 거의 없다시피 할 정도로 줄었다. (항상 나를 못된 딸로 만드는 엄마의 가스라이팅이 언제나 내 발작 버튼이기는 하다.) 동생보다는 아빠와 쿵작이 잘 맞는 편이다. 엄마, 아빠 중 누구라도 통화하는 목소리가 좋지 않거나 울적해하는 게 느껴지면 같이 울적해지는 요상한 공감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곤 왠지 내가 해결해야 할 것만 같아 만사 제쳐두고 본가로 내려가 기분을 풀어주고 와야만 속이 풀린다. 올해 초 회사를 때려치우고 백수로 지내고 있던 와중 노느니 여행이나 가자 했던 것이 가족 여행이 되어 버렸다.


여행스타일


새로운 곳에 가고 보고 체험하는 것을 좋아한다. 관광과 휴양 모두 좋아한다. 가리는 음식이 특별히 없고 새로운 음식에 대한 장벽도 높지 않지만 위생상태가 내키지 않으면 입에 대지 못한다. 낮과 밤 모두 잘 돌아다니지만 치안이 위험한 곳에선 항상 주의하거나 안전한 지역에 숙소를 잡고, 조금이라도 불안하면 사주경계하며 미친 여자인 척 소리 지르며 뛰어 달아난다. 무리해서 돌아다니기보단 하루 중 잠깐이라도 카페에서 쉬거나 숙소에 돌아가 낮잠을 자며 휴식을 취하는 편. 큰 맥락에선 아빠와 여행스타일이 비슷하고 디테일에선 엄마와 비슷하다.





[동생] 



가족 구성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만만치 않은 다혈질. 사회의 모진 풍파를 겪고 이제 나보다 더 성격이 더러워진 것 같다. 나보단 두 살 어리고 나이로는 우리 집에서 서열이 가장 낮음에도 핀트가 나가면 언성이 높아지고 삐져 버리는 바람에 아빠와 함께 우리 집 경계 대상 1, 2호를 다툰다. 내가 학교 방학 때 본가에 내려가면 내가 좋아하는 만화책을 빌려 두거나 간식을 사두곤 하는, 마음은 누구보다 따뜻한 녀석이다. 아빠를 닮아 전형적인 츤데레. 가족 중 가장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 다른 가족 구성원들과 종종 마찰을 빚곤 한다. 특히 아빠와의 마찰이 가장 심한 편.


여행 스타일


피로를 풀고 조용히 쉴 수 있는 곳을 여행하는 것을 좋아한다. 도시보다는 휴양을 선호하는 편이다. 대학병원에서 서서 일하고 있어 여행 시 걷는 것을 무척 싫어하고 피로가 쌓이는 것에 아주 예민하다. 새로운 음식을 잘 시도하는 편이지만, 한 번 입맛에 안 맞는다고 판단하면 절대 입에 대지 않는다. 가족들과 다 같이 움직이는 것보다는 혼자서 쉬는 것을 좋아해서 이번 여행 전에도 중간중간 자기에게 자유시간을 줄 것을 요구했었다.





[???]



유일하게 이번 가족 여행 구성원 중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인물. 계획적이고 준비성이 좋은 편이라 필요한 것들을 미리 찾아 꼼꼼하게 준비한다. 동시에 위기 상황에서 대처 능력도 좋아 당황하지 않고 해결책을 찾는다. 생각하면 바로 해야 실행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때문에 조금은 느긋한 우리 가족의 여행에서 중요하고 잡다한 일을 많이 도맡아 했다. (물론 내가 제일 많이 했지만) 먹는 것을 아주 좋아하는데 다른 가족 구성원들이 밥보단 간식파인 것에 비해 전형적인 밥파. 게다가 한식을 제일 사랑하는 한식 러버다.


여행 스타일


새로운 곳에 가서 보고 경험하는 것을 좋아한다. 휴양지보다는 도시를 좋아하는 편. 먹는 것을 좋아해 여행지에서 맛집 찾는 것을 제일 좋아한다. 음식을 가리지 않고 다 잘 먹으며 위생상태가 썩 좋지 않더라도 개의치 않는다. 사 먹는 것보다 요리해 먹는 것을 좋아해 주방이 있는 숙소라면 직접 요리해먹기도 한다. 유적지를 가거나 미술관, 박물관을 관람하는 것에는 흥미가 없고 스포츠 경기를 직관하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무리해서 돌아다니기보단 하루 중 잠깐이라도 카페에서 쉬거나 숙소에 돌아가 낮잠을 자며 휴식을 취하는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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