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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만다 Oct 18. 2023

#1. 유럽, 이렇게 먼 줄 알았으면 안 갔지! (1)

머나먼 동유럽

"빠진 거 없이 잘 챙겼는지 봐바"

"액체류는 트렁크에 넣어 두는 거 잊지 마!"



어제저녁 마트에서 산 라면과 볶음 고추장을 이미 짐으로 꽉 차 자리가 부족한 내 트렁크 속에 쑤셔 넣으며 나는 말했다. 엄마와 아빠는 짐을 싸서 어제 올라왔기 때문에 오늘은 짐을 챙길 필요가 없었지만 나는 왠지 모르게 스치는 불안에 다시 소리쳤다.



"여권은 잘 챙겼지?"



그러자 일찌감치 나갈 준비를 마치고 소파에 앉아 내가 짐 싸는 모습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던 엄마가 말했다.



"아휴, 시끄러워. 너만 챙기면 돼, 너만!"



머쓱해진 나는 마저 짐을 싸는데 열중했다. 비행기 이륙 시간이 오후 5시 55분이라 시간이 넉넉할 줄 알았는데 막상 계산해 보니 그렇지 않았다.



- 비행기 이륙 시간: 오후 5시 55분

- (비행기 이륙 시간 2시간 전까지 공항에 도착해야 하므로) 공항 도착 시간: 오후 3시 55분 --> 인원이 많아 수속 준비하는데 시간이 더 소요될 것을 고려하여 오후 3시

- 공항버스 출발 시간: 오후 1시 50분

- 버스 정류장까지 이동하려면 넉넉하게 30분 전에 출발해야 하니까 집에서 출발해야 할 시간: 오후 1시 20분



늦는 걸 끔찍이 싫어하는 엄마가 일찍 나가자며 12시 반부터 거실을 어슬렁어슬렁 다니며 눈치를 주는 바람에 우리 가족은 점심을 먹고 후다닥 정리한 후 오후 1시가 조금 넘어 집을 나섰다.



부모님은 어제 오후 지방에서 올라와 성남에 있는 우리 집에서 주무셨다. (*여기서 우리 집은 나와 남편의 신혼집이다. 등장인물 소개에서 '???'으로 표기된 인물은 남편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곳이라 잠을 설쳤던 건지 아빠 얼굴엔 약간 피곤한 기색이 비치는 듯했지만 묘하게 들떠있는 것 같기도 했다.



서둘러 일찍 온 탓에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30분 넘게 기다렸다. 늦는 것보단 일찍 서두르는 게 낫다곤 하지만 엄마는 항상 너무 이르다. 이번 여행에서도 누구보다 먼저 준비를 마치고는 나머지 가족들을 독촉할 엄마 모습이 상상되었다.



'어째 불안하구만'



그렇게 찝찝한 불안감을 안은 채 시간 맞춰 도착한 인천공항행 버스에 올랐다.










공항에 도착하니 동생이 먼저 와 있었다. 이로써 온 가족이 다 모였다. 어버이날 봤으니까 그리 오랜만도 아니건만 동생을 만난 엄마, 아빠 얼굴엔 연신 웃음꽃이 피었다. 일찍 도착한 덕에 여유 있게 출국 수속을 마치고 면세점에서 쇼핑도 하다 시간 맞춰 비행기에 올랐다. 우리 가족이 다 같이 해외여행을 가는 건 중국 상하이에 갔었던 2019년 이후 4년 만이었다. (결혼 전이라 남편은 없었다.) 그때는 비행시간이 고작 2시간이었는데 오늘은 무려 16시간이다.



우리의 대략적인 이동 일정은 이렇다. 일단 인천 공항에서 아랍에미리트의 아부다비까지 비행기를 타고 9시간 45분을 간다. 아부다비 공항에서 내려 4시간 20분 대기하다가 비행기를 타고 5시간 55분을 가면 오스트리아 빈에 도착한다. 현지 시각 오전 6시 55분이다. 여기서 끝이라면 참 다행일 텐데, 우리는 헝가리 부다페스트로 이동해야 하므로 공항에서 기차를 타고 빈 중앙역으로 가서 (...)



<총 비행시간>

*이동시간이 아닌 비행시간이다.

- 인천에서 아부다비까지 9시간 45분

- 아부다비에서 4시간 20분 스탑오버

- 아부다비에서 비엔나까지 5시간 55분

- 총 15시간 40분 (환승 시간 포함 총 16시간)



혹시라도 누군가가 '왜 한국에서 부다페스트로 바로 가지 빈으로 가 부다페스트로 힘들게 이동하느냐', '직항은 없었느냐'라고 물으신다면, 우리에게도 이를 선택한 몇 가지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


우리는 애초에 부다페스트를 갈 생각이 없었다. 8박 11일이 여러 나라를 구경하기엔 긴 시간이 아니라고 판단했기에 우리는 한 나라에서 여러 도시를 구경할 생각이었다. 그러다 다 같이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어렵게 시간을 내 유럽까지 갔는데 한 나라만 가는 게 아깝지 않냐는 아빠의 말에 계획을 틀어 빈에서 멀지 않은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가기로 한 것이다. (나도 아빠와 비슷한 생각이기도 했고 예전부터 부다페스트에 가보고 싶기도 했다.)



두 번째,


빈에 도착하는 시각이 오전 7시경이므로, 시내에 도착하더라도 이른 아침이다. 호텔 체크인 시간은 오후 2, 3시경이니 어딜 구경하려면 짐을 맡기고 돌아다녀야 하고, 또 오랜 비행으로 지칠 대로 지쳐있을 테니 관광하는 것이 쉽지 않겠다 싶었다. 그러느니 차라리 눈 딱 한 번 더 감고(?) 기차 타고 바로 부다페스트로 가자는 게 내 의견이었다. 비행기보다는 공간도 넓고 편한 좌석이니 기차에서 잠을 청할 수도 있고 말이다.



세 번째, 


직항 비행기 티켓 값이 비싸도 너무 비쌌다. 오스트리아 빈으로 가는 직항 티켓 가격이 환승 티켓 가격보다 40~50% 더 비쌌다. 작년 말부터 코로나로 인한 방역 지침이 완화되면서 하나 둘 해외여행을 떠나기 시작하더니 올해 들어선 비행기 티켓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여파로 유가가 상승한 것의 영향이 있다고도 들었다. (이 전쟁으로 최단 경로를 이용하지 못해 2시간가량 비행시간이 늘어난 것도 덤.) 아무튼, 혼자 가는 거라면 조금 비싸더라도 '몇 번 친구들 안 만나고 외식 덜하면 되지'하고 지를 수 있었을 텐데, 여럿이 가는 여행이니 5명 분의 비행기 티켓 값이면 그 값이 만만치 않았다. 하는 수 없이 환승을 결정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미치지 않고서는 짤 수 없는 스케줄인데 (다시 말하지만 이건 가족여행이다.) 그때 당시 나는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부다비에서 쉬어 가려고 라운지도 예약했고 기차도 넓고 편한 좌석에 앉아갈 테니 말이다. 뭐, 얼마 지나지 않아 밝혀졌지만 이건 내 착각이었다.



나와 남편, 동생은 젊다지만 엄마와 아빠는 연세가 있기 때문에 체력이 우리와는 다르다. 몸 이곳저곳이 쑤시고 아프기도 하고. 좁디좁은 비행기에 앉아 꼼짝없이 16시간을 가야 하는 건 젊은 우리에게도 고역인데, 엄마, 아빠에게는 더 힘든 일일 것임을 크게 생각하지 못했다.



더불어 부모님의 컨디션만큼 중요한 것은 이 여행의 모든 것들을 계획하고 진행한 나의 컨디션이었다. 계획도 내가 하고 열차 티켓이며 숙소 예약, 여행자 보험 가입까지 사전 준비 또한 내가 하고, 식당에서 결제하는 것(돈은 각각 보탰지만 최종 관리는 내가), 여행지에 관한 정보도 미리 공부해서 가족들에게 안내하는 것도 내 몫이었다. 이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내가 20시간 가까이 가족들 수발을 들면서 "이제 어디로 가야 해?", "얼마나 더 있어야 해?" 질문 폭탄 세례를 견디는 것은 정말 미칠 노릇이었다. 내가 무너지면 그 스트레스는 가족들에게 돌아갈 게 분명했다. (나도 짜증 게이지가 제한선을 넘어가면 절대 참지 않는 성격이다.)



우리 가족 중 누구도 이 계획이 처음부터 잘못되었음을 알지 못한 채 드디어 떠난다는 설렘을 앉고 비행기에 올랐다.



- 다음 편에서 계속 -





*<K장녀의 (동)유럽 가족여행> 이전 편이 궁금하다면, https://brunch.co.kr/@manda/95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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