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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만다 Oct 18. 2023

#2. 유럽, 이렇게 먼 줄 알았으면 안 갔지! (2)

두 번 다신 못 올 유럽

"아휴, 이거 좁아서 못 쓰겄다."



비행기에 탑승하고 이륙하기 전부터 아빠는 좁디좁은 좌석에 답답함을 호소했다. 우리가 이용했던 에티하드 항공은 다른 항공사 비행기보다 아주 조금이지만 넓은 편이라 나는 나름 만족하고 있었는데, 해외여행, 특히 장시간 비행하는 여행을 자주 하지 않았던 아빠는 이래나 저래나 좁아터진 이 비행기 좌석을 아주 답답해했다. 계속되는 아빠의 불평에 나는 아부다비에 가는 비행기에서 한 번도 의자를 뒤로 젖히지 않았다. (아빠 좌석이 바로 내 뒤였다.) 아빠는 그 사실을 몰랐는지 여행 막바지에 들어서도 비행기 좌석이 좁아 아주 불편했다고 하길래 "아빠 때문에 저는 뒤로 젖히지도 않고 갔다고요!"라고 말하자,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뭐 하러 그랬어, 뒤로 젖히지~"



비단 좁은 좌석만을 탓한 것은 아니었다. 호기심이 많고 경치 구경하는 것을 좋아하는 아빠를 배려해 창가석을 예약했는데, 뒷 좌석에서 비행기 날개 때문에 창밖이 잘 안 보인다는 말이 들려왔다. 처음에는 "아니, 이거 비행기 날개 때문에 잘 안 보이네."라고 하시다가 앞에 앉은 내가 묵묵부답이니 다시 한번 "OO야, 다음에 예약할 땐 날개 피해서 예약해야겠다. 창 밖이 잘 안 보여~"라고 다시금 꼬집었다. '신경 쓸 게 얼마나 많은데 그것까지 고려할 새가 어딨겠냐고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나는 아직 때가 아님을 알고 꾸욱 참았다.



아부다비 공항에 도착해 비행기에서 내리자 가족 모두가 멈춰 서서 나를 바라보던 모습은 아직까지도 잊히지 않는다. 한 무리의 미어캣 가족 같기도 했던 그 모습은 당시엔 귀엽다기 보단 공포스러웠는데, 그도 그럴 것이 나도 아부다비 공항과는 초면이었고, 10년 전 밴쿠버에서 한국으로 돌아올 때 샌프란시스코에서 환승한 걸 제외하면 처음 하는 환승이라 가족들이 "어디로 가야 해?"라고 묻는 질문에 단번에 "여기야!"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그 와중에 우왕좌왕 당황하는 모습은 보여주기 싫어 정신줄을 단단히 부여잡고 라운지를 찾아갔다.



여행 전 인터넷에 검색해서 아부다비 공항에 라운지가 있다는 것을 알고 미리 이용권을 구매했었다. 공항 체류 시간이 4시간 이상이라 짧은 시간은 아닌데, 아무래도 부모님과 하는 여행이고 공항 벤치에서 노숙하기보다는 라운지에 가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라운지가 있는 위층으로 올라가 내리자마자 펼쳐진 풍경에 나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라운지 입구는 많은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는데 무슨 아이돌 팬 사인회라도 열린 줄 알았다. 아부다비 공항이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허브 공항이다 보니 라운지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아 그런 것 같았다. 지친 기색이 역력한 엄마, 아빠, 그리고 동생을 뒤로하고 나와 남편은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렸다.



직원: "무얼 도와 드릴까요?"


나: 미리 이용권을 구매해 왔는데, 라운지 이용이 가능한가요?


직원: 가능합니다.


나: 혹시 이 이용권으로 샤워실 사용이 가능한가요?


직원: 안타깝게도 이 이용권에는 샤워실 사용이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블로그에서 봤던 후기가 맞았다. 역시 미리 구매한 이용권에는 샤워실 사용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숙소에 가서 샤워하겠다는 엄마를 제외하고 4명 인원에 대한 샤워실 사용 비용을 지불하고 나서 라운지로 입장했다.



라운지에서는 짧지만 꽤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사람들이 북적대긴 했지만 공간이 넓어 우리 가족이 함께 머물 곳이 있었고, 또 좌석도 굉장히 편안했다. 맛있어 보이진 않았지만 음식들도 준비되어 있었고, 한쪽엔 술을 마실 수 있는 바도 있었다. 우리 가족은 한 샤워실을 쭉 이용하기로 해, 한 명씩 차례에 맞춰 샤워를 했다. 제일 먼저 샤워를 마친 아빠는 음식이 준비된 곳으로 가더니 샐러드와 방울토마토, 올리브를 한 접시 가득 채워 자리로 돌아왔다.



"아빠, 기내식 드시고 또 드실 수 있으세요?"


"이건 풀이잖아. 금방 소화돼."



올해 들어 소화가 잘 안 된다고 하던 아빠였지만 피곤해 지쳐 축 처진 것보다야 낫다고 생각했다. 비싼 돈 주고 들어온 라운지인데 누군가 뽕빼는 것도 좋겠지 싶었고 말이다.



짧은 휴식을 가지고 다시 6시간 비행을 한 후 빈 공항에 도착했다. 이전 비행보다는 시간이 짧기도 했고 기분 탓인지 좌석도 좀 더 넓어 훨씬 견딜만했다. 다른 가족들도 공통된 의견이었다.









"왜 미리 구매해 뒀어! 열차가 자주 있어서 미리 예약 안 해도 되는데 말이야."



빈 중앙역으로 가는 오전 9시 OBB 열차를 취소하고 좀 더 빠른 시간의 기차표를 구매하려고 직원에게 물어보자 직원이 말했다. 현지 시각 오전 6시 55분에 공항에 도착할 예정이었고 짐 찾고 뭐 하면 얼추 시간이 맞겠다 싶었는데, 짐을 다 찾고 나와도 오전 6시 30분이었다. 예상보다 일찍 도착한 탓이었다. 엄마, 아빠와 가는 여행이라 최대한 미리 예약하고 가 기다리는 시간을 단축하고 싶었고, 열차 티켓이 매진이면 부다페스트로 가는 열차 시간에 맞춰 도착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한국에서 미리 티켓을 예약해 두었는데 글쎄 직원 말로는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됐을 거라고 했다. 그걸 이제와 알면 뭐 하겠나. 환불이 안된다니 꼼짝없이 열차 시간까지 2시간을 기다리기로 했다.


 

공항에 있는 카페에 앉아 커피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다. 계속되는 이동에 다들 잠을 편히 못 자 피곤이 묻어나는 얼굴이었다. 기내식은 계속 제공되는데 일어나지도 못하고 앉아만 있었으니 소화도 안되고 컨디션이 영 꽝인 듯했다.



그래도 나는 처음 와보는 도시의 공항에 약간 설레는 마음이 들었는데, 이는 아빠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기다리는 것 말곤 할 게 없으니 휴대폰으로 이것저것 보고 있던 아빠에게 카페 옆에 있는 마트에 가보지 않겠냐고 하니 흔쾌히 따라나섰다.



"어디 오스트리아 마트 한 번 가볼까?"



특별한 건 없었지만 또 특별한 것으로 가득했다. 평범한 식료품들이었지만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것들이라 신기했고 하나하나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잘 모르겠는 것들은 서로 무엇인지 추측하며 담소를 나누다 보니 시간이 훌쩍 갔다. 쇼핑이 취미인 아빠는 맛있어 보이는 빵 두 개와 카카오 함량이 높은 초콜릿을 하나 샀다.



"빵은 네 동생이 좋아하고, 초콜릿은 엄마 주려고."



괜히 동생과 엄마 핑계를 대는 아빠였다.







 


OBB 열차를 타고 빈 중앙역으로 이동했다. 생각보다 큰 규모의 역에 깜짝 놀랐다. 이곳저곳 구경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일단 부다페스트로 가는 열차가 문제없이 도착할 것인지, 또 승강장은 어디인지 미리 확인하느라 바빴다. 몇 번을 다시 확인하고 문제가 없다는 것을 알고 나서야 안도감이 들었다. 식당가 좌석에 얌전히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는 엄마 아빠에게 다가가 말했다.



"우리 사진 한 장 찍자."



여행을 시작하고 같이 찍은 첫 사진이었다.



기차를 타고 가족들은 그래도 눈을 좀 붙이는 것 같았는데, 나는 어째서인지 비행기에서부터 잠을 자기가 어려웠다. 어딘지 익숙하지만 낯선 풍경을 보면서 기차에서 내리면 할 일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약 3시간 기차를 타고 부다페스트 델리 역에 도착했다. 드디어 부다페스트에 도착했다는 기쁨도 잠시, 이제는 숙소에 가는 일이 남았다. 미리 휴대폰에 다운받아 가입까지 마친 <Bolt> 앱을 열고 택시를 불렀다. 우버나 그랩은 써본 적이 있었지만 볼트는 처음이라 잘 될지 걱정이 되었다. 게다가 지금 나는 혼자가 아니지 않나. 한국에서 부다페스트까지 무려 23시간(진짜 미쳤다.)을 날아서 달려서 온 다른 가족들이 택시를 기다리느라 지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앱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생각보다 빠르게 잡힌 택시는 얼마 안 있어 우리 앞에 멈춰 섰다. 택시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가족들은 숙소 앞에 도착해 택시에 내리면서 구겨졌던 몸을 다시 폈다. 그리곤 기다렸다는 듯 아빠가 한 마디 던졌다.



"유럽 두 번은 못 오겠다."










가족 유럽여행 꿀팁!


No. 1. 이동은 최소화하기

- 비좁은 비행기 좌석에서 부모님들은 우리보다 몇 배는 더 빨리, 그리고 많이 체력이 바닥난답니다.





*<K장녀의 (동)유럽 가족여행> 이전 편이 궁금하다면, https://brunch.co.kr/@manda/96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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