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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만다 Oct 18. 2023

#3. 너무 다른 취향, 가족 맞아?

2 대 3

"난 안 갈래, 방에서 좀 쉬어야겠어."



어제 긴 이동으로 피곤해서 못 간 어부의 요새에 가 유럽의 3대 야경 중 하나라는 부다페스트 야경을 보자고 했더니 동생이 한 말이다.



'저거, 저거 내가 저럴 줄 알았다. 언제나 저렇게 비협조적이지.'



오늘 오후 시티 파크를 한 바퀴 돌 때부터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더니, 회쇠크 광장에서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는 맥도널드까지 30분가량 걷고 난 후부턴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은 표정의 동생이었다.



'누가 당장 가자고 했나, 좀 쉬고 나서 가자고 했지. 엄마, 아빠랑 온 여행이면 같이 으쌰으쌰 하면서 다녀야지, 힘든 티 팍팍 내니 이거 눈치 보여서 살겠나, 참.' 뭐라 하진 못했지만 동생이 마음에 들지 않은 나는 입을 삐쭉거렸다.



"그럼 나도 OO(동생)이랑 숙소에 있을게, 셋이 다녀와."



무릎이 불편한데도 걷느라 피곤했던 엄마도 나가지 않고 쉬겠다고 했다. 많이 걸어 뻑뻑한 무릎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혼자 숙소에 남아 있을 동생이 마음 쓰였을 것이다.



동생은 대학병원에서 방사선사로 일하고 있다. 동생 말에 따르면 수술실에 들어가서 일을 하기 때문에 하루 종일 서있어야 하고, 또 방사선을 차단하기 위한 무거운 옷을 입어야 해서 일을 마치면 그야말로 녹초가 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한국에서도 가족들과 나들이를 가거나 쇼핑을 갈 때면 "안 가" 또는 "난 집에서 쉴게"라고 하거나 조금 오래 거를라 치면 가장 먼저 지쳐서는 잔뜩 인상을 쓰고 뒤따라오기 마련이었다. 안 간다는 동생을 '오랜만에 만났으니까', '가족인데 함께 해야지'를 핑계로 꼭 데리고 가는 다른 가족들도 문제지만, 이왕 함께하는 거 좀 웃으면서 다닐 수 없냐는 게 내 속마음이었다.



이는 아빠도 마찬가지였고, 그러다 보면 아빠는 동생에게 "너는 왜 항상 인상을 쓰고 다니느냐", "운동을 안 하니까 체력이 안 좋고 다리가 아픈 거다." 잔소리를 하기 일쑤였다. 동생은 "내가 애초에 안 가겠다고 하지 않았냐", "평일에 일하고 나도 주말엔 좀 쉬고 싶다."라고 대답해 가족 나들이는 결국 파국으로 끝나기 마련이었다. 그럼 나와 엄마는 뒤에서 한숨을 푹 쉬고는 각자 아빠와 동생 비위와 기분을 맞춰 주느라 바빴다. 평소 때처럼 엄마는 오늘도 피곤해하는 동생 옆에서 함께 있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엄마는 여행지에서 본인이 즐기는 것보단 가족 내 발란스를 유지하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하니까 말이다. 물론, 동생은 혼자 숙소에서 쉬는 걸 더 좋아했을지도 모르지만.



아빠는 말을 꺼내진 않았지만 숙소에 있겠다고 하는 동생이 못마땅한 것 같았다. 평소 같으면 한 마디 했을 테지만 먼 곳까지 추억 만들자고 왔는데 분위기 흐리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여행한 지 이틀 만에 우리 가족은 흩어졌다. 2대 3으로.










날씨가 덥지도 춥지도 않은 게 걷기에 참 알맞았다. 티셔츠 위에 트레이닝 재킷을 입고 나온 아빠는 어부의 요새 가는 길에 있는 기다란 계단을 걸으며 땀이 나 안 되겠다고 하곤 재킷을 벗었다. 한국에서는 아침마다 집 근처 산에 오르고 주말에는 친구들과 전국 방방 곡곡의 산을 도장 깨기 하듯 오르는 아빠에게 이 길이 그리 어려운 길은 아니었겠지만, 어제부터 쌓인 피로 때문인지 조금 지쳐 보였다. 그래도 아빠는 우리 셋 중에서 가장 앞장서서 걸었다.



오르막길과 계단 끝에서 만난 마차시 성당은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고혹한 색깔의 성당 지붕과 검게 변하기 전 짙은 파란색의 하늘이 마치 딴 세계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들게 했다. 성벽 가까이에서 야경을 본 우리 셋은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오밀조밀 붙어 있는 낮은 높이의 건물들이 내뿜는 은은한 불빛들과 이와는 대조적으로 다뉴브강 너머로 노랗고 밝게 빛나는 국회의사당이 정말 아름다웠다.



하루종일 한국인 한 명을 만나지 못했었는데, 부다페스트에 있는 한국인들은 모두 여기서 모이기로 했던 것인지 여기저기서 한국말이 들려왔다. 우리 셋은 어부의 요새 여러 스팟을 옮겨 다니며 사진을 찍다가 몇 프로 부족한 그 사진들을 보고 '도대체 어디서 찍으면 잘 찍었다고 소문이 날까'하고 고심하고 있었다. 그러다 왠지 비싸 보이는 장비를 들고 있는 사람과 그와 함께 서 있는 남녀를 보고 '저기다'하고 조용히 자리를 옮겼다. 아니나 다를까 웨딩 스냅을 찍으러 온 한국인 커플과 사진사였다. 외국 여행에서 만났을 때 반가운 것 1위가 한식이라면 2위가 관광 명소에서 사진을 찍어 줄 수 한국인이 아닐까? 사진을 찍어달라고는 못하겠지만 웨딩 스냅을 찍는 이곳이라면 우리도 인생샷 하나 정돈 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역시 여기네, 여기였어."



다정하게 사진을 찍는 그 커플이 사진을 찍는 모습을 바라보며, 우리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속닥였다. 사진을 다 찍은 커플과 사진사가 떠나자 우리도 그 커플이 서 있던 자리에 서서 사진을 찍었다. 커플의 포즈를 차용하기도 하고, 우리가 개발한 포즈를 취하기도 하면서 그렇게 한참 사진을 찍다가 숙소로 돌아왔다.










"오늘 하루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낮에 마트에서 산 맥주를 잔에 따르고 부딪히며 외쳤다. 엄마와 동생은 각자 방에서 자고 있어 잔뜩 낮춘 목소리였다. 평소엔 술을 마시지 않는 아빠였지만, 하루 종일 걸어 고된 하루를 보낸 후 마시는 맥주 한 모금은 구미가 당겼는지 같이 한 잔 하자는 우리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으셨다.



맥주를 다 마신 아빠가 방으로 들어간 후, 나와 남편은 눈을 마주치곤 서로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듯 살짝 웃어 보였다.



"자, 이제 빨래하자."



오늘 오전 세체니 온천에 다녀와 젖은 옷가지들이 있었다. 에어비앤비에서 묵고 있으니 이왕 이렇게 된 거 숙소를 옮기기 전 빨래를 하기로 했었다. 나와 남편은 한 번 봐서는 사용법을 도통 알 수 없는 세탁기에 나머지 가족들의 세탁물까지 모두 넣고 이 버튼 저 버튼 눌렀다. 한참을 씨름하다 세탁기가 정상 작동하자 우리 둘은 무소음 환호를 질렀다. "아싸, 됐다!"



이제 한 시간만 기다렸다가 다 된 빨래를 널고 자면 된다. 남편은 소파에 들어 누었고, 나는 식탁 의자에 앉아 내일 일정을 정리하다 좀 전에 어부의 요새에 가기 전 동생이 지 방으로 들어 가려다 말고 했던 말이 불현듯 떠올라 고심에 빠지고 말았다. "나 내일 절대 깨우지 마."



'내일 아침에는 브런치를 먹으러 나가기로 했는데, 이를 어쩌지. 혼자 굶어도 되려나' 싶다가 '저 울퉁불퉁한 얼굴을 다시 보느니 내가 안 깨우고 만다'하고 다짐했다.



'내 손해냐? 네 손해지!"



내일은 2대 3이 아닌 1대 4가 될 예정이었다.










K장녀의 (동)유럽 가족여행 둘째 날 코스



세체니 온천





헝가리는 온천으로 유명한 나라다. 부다페스트에만 약 100여 개의 온천이 있고, 헝가리 전역에는 약 1,000여 개가 존재한다고 하니 실로 엄청나다. 부다페스트에 있는 여러 온천 중 세체니 온천은 페스트 지역에 최초로 설립된 온천으로 1931년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유럽 내에 있는 온천 중 가장 큰 규모이고, 내부에 온천탕만 13개라고 한다. 타월과 샤워 가운, 슬리퍼 등은 제공되지 않으니 미리 챙겨가는 것이 좋다.



로빈손 레스토랑 (Robinson Restaurant)




현지 요리 및 지중해식 요리를 선보이는 레스토랑. 시티 파크 내에 있고 세체니 온천과 멀지 않아 온천을 마치고 나와 점심 식사를 한 곳이다. 호숫가에 있어 호수를 바라보면서 식사를 할 수도 있다. 직원들이 친절하고 영어가 가능하다. 헝가리의 대표 요리 굴라쉬부터 돼지고기에 곁들여 먹는 덤플링(만두가 아니다.), 스테이크와 햄버거를 맛보았는데, 모두 맛있었다.



버이더후녀드 성


가는 길



시티 파크 안에 있는 성으로, 세체니 온천과도 멀지 않은 곳에 있다. 헝가리 건국 이후 1,000년이 지난 것을 기념해 지어진 성이다. 트란실베니아의 드라큘라 성을 모티브로 설계되어 드라큘라 성이라고도 불린다.



영웅광장 (회쇠크 광장)



헝가리 건국 천년의 역사와 위대한 인물들을 기념하기 위해 1896년 만들어진 곳이다. 36m의 밀레니엄 기념탑이 있고 탑 꼭대기에는 하느님이 자신들을 지켜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가브리엘 대천사 동상도 볼 수 있다.



맥도널드 (Budapest, Teréz krt. 55, 1062 헝가리)




한국에서도 실컷 갈 수 있는 맥도널드를 왜 헝가리에서 가라고 하냐고?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맥도널드라고 소문이 났기 때문이다. 처음 입장했을 때는 명성에 비해 아쉬운 마음이 들었으나, 둘러보면 둘러볼수록 다르긴 다르구나 하는 마음이 든다. 계속되는 낯선 음식에 지쳤다면 한 번쯤 방문해도 좋을 듯.



K마트 (Budapest, Honvéd u. 38, 1055 헝가리)


이천쌀도 판다



숙소를 에어비앤비로 잡았는가? 그렇다면 이곳에 한 번 들러봐도 좋겠다. 일반 슈퍼에서도 쌀은 구할 수 있지만, 김치나 깻잎절임, 쌈짱에 매운 라면까지 타지에서 헛헛한 마음을 달래줄 음식들이 있다. 우리도 이곳에서 반찬들을 사 와 저녁마다 한식을 해 먹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한국에 돌아올 때까지 한식이 그립지 않았다는 후문.



마차시 성당




헝가리 왕이었던 마차시가 교회의 남탑 건설을 명령하면서 그의 이름이 붙은 교회이다. 헝가리 국왕들의 대관식이 열리는 곳이다. 저녁에 방문했던 우리는 내부로는 들어가지 못하고 밖의 모습만 구경했는데, 그만으로도 아주 만족스러웠다.



어부의 요새




중세시대 왕궁을 지키는 시민군이었던 어부들이 적을 막기 위해 방어를 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마차시 성당 바로 앞에 있다. 저녁에 방문하여 건물 내부로 들어가지는 못했고 성벽 너머 야경을 바라봤는데 이 역시 만족스러웠다.



다뉴브 강


숙소에서 보이는 국회의사당



유럽의 여러 나라를 거치는 강으로, 부다페스트에서는 부다와 페스트 지역이 이 다뉴브 강을 기점으로 나뉜다. 어부의 요새에서 내려와 숙소 앞 다뉴브 강 앞에서 국회의사당을 바라봤는데, 어부의 요새에서 바라본 야경보다 더 아름다웠다.





가족 유럽여행 꿀팁!


No. 2. 숙소는 호텔 대신 에어비앤비로

- 보통 부모님들은 깔끔한 호텔을 선호하시지만, 오래 계속되는 유럽 여행에선 한국 음식을 해 먹을 수 있는 에어비앤비가 더 좋을 수도 있어요. 세탁기도 있으니 더러워진 옷과 양말도 빨기 쉽고요. 동유럽은 넓고 깔끔하면서도 가격은 저렴한 방들이 많이 있으니 잘 활용해 보세요.

- 제일 중요한 것! 방은 인원수 또는 커플 수(?)대로 예약하세요. 아무리 가족 여행이라도 숨통이 트일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 필요하니까요.





*<K장녀의 (동)유럽 가족여행> 이전 편이 궁금하다면, https://brunch.co.kr/@manda/97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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