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기 싫고 사라지고 싶어서

우울증: 고통없는 죽음이 있을까

by bip orange


죽음. 누군가에게는 입에 담지도 못하게 무서운 말이고, 누군가에겐 당장 눈 앞에 닥칠 수 있는 일이자, 누군가는 묘하게 원하기도 하는 것.


모두에게 죽음이란 두렵지 않을 수 없다. 내 뜻대로 주어지지 않은 삶인 만큼 끝내기도 어려운 삶이다. 죽음의 반대는 삶이지만, 삶의 반대는 죽음이 아니기도 하다. 인공지능에게 행복의 반댓말을 물어보니 스펙트럼을 놓고 가장 먼 곳에 있는 것을 말한다. 슬픔, 공허함, 절망. 그것들과 가까이 있는 것이 죽음이 아닐까.



소리가 들릴까 입에 수건을 물고 울었던 날의 나를 동정한다. 침대까지 기어올라갈 힘도 없어서 바닥에 주저앉아 울던 날들에, 대체 어떻게 죽어야 덜 아플까 온갖 술수를 부리고 싶었다. 눈 앞에 보이는 모든 것이 나의 마지막을 도와줄 수 있는 도구들로 느껴졌다. 당신에게는 바람에 아름답게 휘날렸던 커텐이, 날카롭게 잘 정리된 문구용품이 굴러가는 소리가 나에겐 천사가 건네는 목소리로 들렸다.


그 시절엔 기록을 잊었고, 기록을 잊으니 생각하는 법도 잊었다. 흩날리는 멍청한 생각을 먹고 자란 나는 눈물로 젖어 축축해진 것들만 먹고 배가 불러 가라앉고 있었다. 어떻게 쌓인 건지 알 수 없는 찌꺼기에 목이 통째로 막혀 매일 암전되는 세상 속에서 길을 잃으며. 투명한 바다에 현혹되었던 시절의 나는 지금 심해에서 천천히 유영하고 있을 것이다.



한낮에 차 멀미로 살아있음을 느꼈다. 서서히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증발하는 기억들이 두려워 스도쿠를 해보려고, 연필을 들고 뭐라도 써보려고 할 때는 내가 쓰는 흑색 숫자들이 남지 않고 흐려질까 몇 번을 덧그렸다. 안정, 평온, 행복 이런 것들에 허기진 내가 그 곳으로 한 발 들이는 순간 모든 게 깨졌다. 너는 그럴 자격이 없다는 듯 보이지 않는 손은 언제나 내 목을 움켜쥐었다.


고요하고 어둑한 방. 번지는 불길에 녹아내리듯 스러져 잠들면 나조차도 나를 부르지 못하고 잠들어야만 했다. 엉겨오는 머리카락과 후덥지근한 공기, 불쾌한 악몽의 숲에서 내가 어떻게 생겼는지, 무얼 먹고 누굴 만났는지,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다 잊은 채로, 다 잊어버렸다.



안락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일련의 과정이었다. 아무도 모르는 미지의 땅에서 다시 깨어날 수 있을 때의 희망만이 나를 살게 했기 때문에. 여전히 나는 몇 자리 숫자로는 증명하기 힘든 사람들 사이에 숨어있고 싶다. 겹겹의 시간이 지나 새 땅에서 다시 발견될 수 있다면 암호 해독은 '나도 나를 모른다'로 하겠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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