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몰입, 제 전문입니다

조울증: 상상력 전문직 합격의 시그널

by bip orange


나는 그랬다. 아무리 바빠도 커피 한 잔으로 혀에서 쓴 맛을 느껴야 했고, 목구멍으로 넘어가자마자 올라오는 원두의 향이 필요했다.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은 항상 있었다. 카페에서 떠드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꺼려지면서도 발걸음은 카페로, 모순적인 마음이었다. 그들 사이에서 '나는 글을 쓰겠다'는 고집이며, 의지였다. 거리에 지나가는 사람들은 항상 의심스러웠고, 더러워 보였다.


서점에 가면 새로운 곳을 발견할 수 있는 여행 서적을 찾거나, 세계명작을 집었다. 오늘은 추리소설을 써보겠다는 것이다. 오스트리아 빈에 다녀온 기억으로, 고전 시대극이 좋겠다. 당장에 영상 몇 개를 틀어 잡지식을 채워보겠다고 펜촉을 꾹꾹 눌렀다. 특정 부위의 통증이 짙어진다. 고급 어휘를 사용해야 한다, 흔한 어휘는 전부 배제하고, 문장은 절대 같은 방식으로 끝내지 않는다. 플롯의 사건은 당연히 탄탄해야 한다. 결말은 가장 반전있고 흥미로워야 하며 모든 연결성은 확실해야 한다.



내가 또 왜 이곳에 왔지, 갑자기 강변을 눈여겨 보거나 앞자리에 앉은 사람과 묘하게 느껴지던 긴장감이 줄어드는 사이 쓰려던 글은 바닥 중의 바닥이 되어버린다. 누가 볼세라 나는 그 개구리 발바닥만 못한 것을 힘겹게 한 타씩 눌러 지운다. 그러나 왜 저장하고 싶었을까? 이어지지도 않는 말들을, 매력적이지 못한 캐릭터를 지구상에서 다신 못보게 지워버렸으면 좋겠는데, 걱정이 된다. 눈이 번쩍번쩍하는 슈팅스타 같은 맛의 글을 쓰고 싶었던 내 욕망이 픽셀 한 쪼가리도 남겨지지 않을까봐.


배경은 아침이 좋아. 서늘한 공기랑 냄새가 나야지. 아무것도 방해할 수 없는 '걔'만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거 있잖아. 상상하게 하는 말들을 넣어야지. '이게 살고 싶은 대로 사는 거야? 가장 중요한 걸 잊고 사는 거 아니야? 모든 사람한테는 자유가 먼저 필요한 거 아니야? 그래야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걸 태초부터 시작할 수 있는 거 아니야? 내가 하는 모든 말이 다 부질없고 헛소리, 철없어 보이지. 근데 나는 최소 동경하는 게 생기고 하려면 해. 나도 질투하고, 사랑하거든. 어쩔 땐 너무 보기 싫고, 도저히 볼 수 없어서 피하는데 난 내 마음부터 알거든. 이거다, 아니다.'


이젠 놓아줄 만도 한 전공이지만, 마음에 드는 영화 한 편을 보면 욕심을 버리기가 힘이 든다. 눈으로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의 가치를 파고들어 내가 보지 못하는 곳, 알 수 없고, 해보지 못한 일에 무릎을 꿇고 <존 말코비치 되기>에 나오는 동굴에 들어가 안에서 기생하고 싶다. 세 가지 부류로 말해본다면 8할만 해도 만족할 줄 알고 물러나는 사람, 주어진 것으로 무기를 장착, 스스로 능력을 키워내는 사람, 마지막으로 어리석은 자가 남의 능력만 훔쳐보다가 노인이 되어 동굴에서 걸어나올 힘조차 없어 말라 죽는 것이다.


세상 위에 내가 있는 구조를 만드는 건 쉽다. 그저 한번에 나의 우주를 냅다 뒤집으면 된다. 그러나 부작용은 오롯이 본인이 감당해야 한다. 이상중력의 어지러움, 갑자기 내려앉게 되는 빌딩에 상처가 생기고, 사람들은 나를 믿지 않기 시작한다. 그러면 나는 그래, 오늘 조증이 조금 있었던 것 같다. 다음 예약자를 불러온다. 아주 진하고 차분하고 익숙한 녀석으로. 벌써 차향이 올라오는 것 같다. 우리는 만나면 잠을 잔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