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은 살아있을 때 잘래요

무기력증: 잠살자파 모집

by bip orange


오랜만에 눈을 뜬 것 같다. 아직 내 세상은 여전히 밤이다. 0시부터 다시 0시까지, 그저 잠을 자야하는 시간으로만 채워진다. 가루가 되어 다 부스러지고 잔해만 남은 몸뚱이가 침대에 너덜거리며 붙어있다. 생은 달콤함 뒤 떫고 쓴 맛이다. 어제의 나는 하늘 위에서 사람들을 내려다 보았고, 오늘의 나는 바닥의 구석에서 일렬로 처음 솟은 새싹들과 인사했다. 살갗에 스치는 쓰레기들이 역겹지 않았다. 익숙하게 보아온 자신이었기 때문에.


잡초가 지배한 곳에서 움튼 나는 간간히 오는 빗물을 먹고 자라고 있었다. 그래서 비가 오지 않을 때면, 한없이 기다렸다. 언제 어디에서 내릴 줄 알고, 얼마나 올 줄 알고, 하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내 머리를 적셔주는 그 한 방울이면 나는 다시 깨어날 수 있었다. 그럼에도 고약하게, 긴 날동안 하늘에 아무런 반응이 없는 건 역시 내 탓인 것 같았다.



어둠이 모이는 자리는 의외로 흔적이 남겨지기 쉽다. 눈가에 작게 긁힌 상처, 바닥을 구르는 매캐한 먼지 냄새와 손톱 조각들.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나에 할당된 모든 것들인 수명과 고질병과 피부 껍질, 작은 방 한 칸과 쓸모없는 종이뭉치들, 잔고 상태. 한없이 아래로 떨어져 무거워진 몸뚱이가 내려앉고 마는 것이다.


증오라는 간단명료한 단어로 가볍게 나에게 폭력을 행사하지만, 맞고 때리는 관계는 성립하지 않는다. 조용히 무뎌지는 시간 속에서 즈려 밟아지기를 반복했다.

그러고 나면, 갑자기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어떤 기억도, 내가 존재했던 그 순간까지도.



잠겨 가라앉고 싶은 음악이 많아지고, 열심히 발을 구르며 헤엄치던 날들이 야속하다. 알 수 없는 형체 위에 아슬아슬하게 떠있는 내가 보인다. 묽게 색칠된 불안 끝에 쓰라린 상처가 쌓여있다. 그 위에 물만 묻혀 덧그린 나는 다시 어항 안으로 잠수한다. 다른 평행세계의 나는 안전하길 바라며.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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