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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솔 Oct 21. 2023

매일 밤 돈 셜리가 마시던 위스키가 '커티샥'인 이유

그린북(Greenbook). 2019

좋은 영화를 골라 보고 싶을 때에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수상한 작품들을 참고하여 보는 경우가 있다. 2019년 아카데미에서 작품상과 남우조연상, 그리고 각본상으로 3관왕을 차지한 '그린북(Green Book)이라는 영화가 우연히 눈에 띄길래 망설임 없이 보게 되었다.


상반되는 두 캐릭터가 나와서 갈등이나 우정을 주고받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린북은 설정부터 극단적이다. 1960년대 미국 배경에서 잘 나가는 피아니스트 흑인과 그의 조수겸 운전수 역할을 하는 백인의 이야기. 게다가 실화를 모티브로 만들었다니 영화 초반부부터 흥미진진하다.





"Can you see to it that there's a bottle of Cutty Sark in my room every night?"


두 주인공이 콘서트 투어를 시작하면서 셜리는 토니에게 매일밤 자신의 방에 커티샥 한 병을 가져다 놓을 것을 요청한다. 그리고 매일밤 혼자서 커티샥을 마시며 외로움을 달랜다. 


흑인들 무리에서도 잘난 체하며 깔끔 떤다고 끼지 못하고, 도망치듯 나와 바에서 한잔 할 때도 백인들에게 두드려 맞고 쫓겨난다. 어디에도 끼지 못하는 셜리에게는 혼자 마시는 커티샥만이 그에게 유일한 위안이 되었으리라 생각된다.




왜 하필 커티샥인가?


당시의 유색인종들에 대한 차별을 고려했을 때 돈 셜리는 남다른 삶을 살았다. 격식과 교양은 물론 천재적인 재능과 재력까지 갖추었고, 그에 맞게 항상 깔끔한 슈트를 입고 다니며, 손으로 음식을 먹지 않고 항상 식기를 이용한다. 무릎을 덮은 담요가 더러워지는 것을 싫어하고 작은 돌 하나 훔치는 것도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함께 다니는 토니에게 공석에서는 욕설을 자제하고 말투를 교정할 것을 부탁하는 모습 등을 보면 그의 남다른 품격을 알 수 있다.



이런 셜리가 마시는 술이 1960년도 당시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던 위스키인 커티샥인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실화 바탕이다 보니 실제 인물이 이 술을 좋아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영화적으로만 보면 분명히 매끄럽고 자연스러운 설정이다.


게다가 당시의 가장 빠른 범선을 대표하는 '커티샥'이라는 네이밍 자체가 그 배를 탄 선원들의 자부심과 진취적인 이미지와 도전정신을 나타내기도 하는데, 이는 영화 내에서 돈 셜리가 토니와 함께 차별에 맞서 부딪히며 투어를 해 나아가는 모습과 어느 정도 일맥상통 한다.


셜리는 분명 이 여정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걸 이미 짐작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여행의 시작과 함께 토니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위스키인 커티샥을 요청했고, 매일밤 숙소에서 혼자 마시는 그 한잔만이 그에겐 따듯한 위로이자 동시에 정신적 지주가 되어주지 않았을까?



거칠고 우여곡절 많았던 8주간의 항해를 겪은 셜리와 토니는 고향으로 돌아와 크리스마스를 함께 맞이하는 것으로 이 이야기는 훈훈하게 마무리된다. 셜리의 손에 든 뵈브클리코와 함께.





이전에 근무하던 곳에서는 커티샥이 구비되어 있어 동료들과 함께 퇴근주로 종종 '커티삭 하이볼'을 마시곤 했다. 퇴근 후 집에 가기 전에 들렀던 바에서 유쾌한 바텐더 형님이 대충 타주시던 커티샥 하이볼의 맛도 기억한다. 값비싼 술은 아니지만 낭만이 있던 시기와 장소에서는 그 어떤 술보다도 값어치가 있었다.


요즘 유행하는 싱글몰트에 비해서는 확실히 퍼포먼스도 약하고 덜 정돈된 맛이 나기도 한다. 가격도 저렴하다 보니 대체할 것도 많아서 구비해 놓는 바를 찾기가 쉽지는 않다. 만약 발견하게 된다면 주저하지 말고 하이볼로 한잔 마셔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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