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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RI May 13. 2018

쫄보야 잘 지내니,

작업실에 놀러 오던 길고양이 친구

앙꼬를 작업실에 들이면서 자연스레 다른 길고양이에게도 관심이 가게 되었다. 다행히 작업실 동네는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어 길고양이들이 꽤나 풍족하게 살고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곳곳에 사료통과 물통이 놓여 있고, 술집에서 손님이 옆에 와도 느긋하게 자기 자리에서 식빵 굽는 친구, 전용 사료통과 물통이 식당 앞자리에 마련되어 있는 친구 등등 다른 곳보다는 확실히 길고양이들의 생활이 나아 보였다.

작업실 주변에는 사실 동물이 많다. 바로 건너편에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가 있어 그런 걸까, 옆집에는 나이가 구수하게 먹은 골든 리트리버도 있고, 이상하게 비둘기가 참 많이 돌아다닌다. 길고양이도 주변에 보이기에 앙꼬의 식사를 조금씩 나누어 테라스 앞에 놓아두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비둘기가 먹는 건지 고양이가 먹는 건지 알 수 없게 조금씩 없어지더니만 좀 지나 익숙해지니 하나둘씩 얼굴을 내비쳤다.

평일 낮에는 회사에 있는 터라 나는 다른 길냥이 친구들을 많이 볼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제일 자주, 오래 본 친구가 바로 쫄보다. 얼굴은 아주 성깔 있게 생겨가지고는 경계심이 어찌나 많은지 앙꼬가 채터링을 시작해서 창문으로 보러 가면 쏜살같이 사라져 있기 일쑤였다. 그래서 우리가 부르는 이름도 쫄보다. 사람이 보이면 처음엔 보이지 않는 저 먼 곳으로 도망가더니, 몇 번 지나고선 도망은 가지만 보이는 어디 구석에, 나중엔 옆에 서 있어도 먹이는 먹는 정도로 경계를 풀었다. 

똑똑, 심심 작업실 놀러 왔어요,
오늘은 나 밥먹는거 쳐다보는 건 허락해줄게.

이제 우리 친해졌나 봐, 싶어서 한 번 쓰다듬으려고 손을 가져가면 어찌나 야무지게 냥펀치를 날려대는지. 야생에 사는 고양이의 냥펀치는 처음 맞아봤는데 발톱까지 세우고 탁 때리면 금방 상처가 나기 일쑤였다. 

길냥이의 삶은 고달프긴 한 건지 가끔은 쫄보의 얼굴에도 상처가 나 있는 채로 밥을 먹으러 오곤 했다. 상처가 가끔 보여도 어디가 크게 아파 보이진 않았는데, 지난겨울까지는 가끔 얼굴을 비치다가 한 동안 쫄보가 보이지 않았다. 가끔 채워놓는 사료는 줄어들긴 해도 쫄보는 안 보이기에 잘 지내려나 싶었는데, 얼마 전 작업실 친구에게 쫄보를 보았다는 얘기를 들었다. 봄이라 텃밭상자에 씨앗을 뿌리고 씨앗이 나기를 기다리던 어느 날, 뭔가 그 위에 올라가 있는 것이 보여 다가갔더니 쫄보였다는 거다. 그것도 상자라고 거기에 들어가 얼굴을 걸치고 있는 게 웃겨서 가까이 가보니 얼굴에는 상처가 한가득, 코 주위가 한껏 부은 채로 친구를 쳐다봤단다. 많이 아파 보여서 건너편에 있는 카라에 가서 구조할 수 있냐고 물어봤더니 구조는 할 수 있지만 책임을 지고 데려갈 수 있는 고양이만 구조를 해 준다는 이야기에 고민만 하다 돌아왔다고. 그 이후 쫄보는 다시 보이지 않는다.

그때 우리가 좀 더 적극적으로 구조 계획을 잡았어야 하는 걸까, 혹시 마지막 인사를 하러 온 건 아니겠지, 하고 지나고 보니 이런저런 생각이 들고 미안한 마음이 자꾸만 올라오는 것이다. 주변의 많은 길고양이를 모두 데려와 키울 수도 없고, 한 번 길고양이로 살던 고양이를 집고양이로 키우는 것이 쉽지 않고 그게 어쩌면 자유를 빼앗는 것은 아닌가 싶어 길고양이에 대한 것은 참, 어렵다. 그래도 얼굴을 서로 익히고, 조금은 거리가 가까워진 친구가 어느 날 갑자기 보이지 않게 되어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사람 친구든 고양이 친구든 마찬가지다. 그저 지내는 동안 최고로 자유롭게, 최고로 당당하게, 그렇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것뿐....


공손양말 신은 쫄보의 작업실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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