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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RI Jun 16. 2018

앙꼬는 심심작업실 호스트!

고양이가 있는 에어비앤비 어떠세요?

작업실엔 방이 세 개 있다. 나와 디자이너 친구가 작은 방을 쓰고, 큰 방을 네 명이서 나눠쓴다. 그리고 남은 한 방을 쉬는방 겸 창고용으로 쓰다가 전기세라도 벌어볼까 싶어서 에어비앤비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원래 쉬는 방이니까 손님이 들어와서 쓰면 작업실 운영비도 생기고 쉬는 날엔 우리가 쓰면 되니까, 라고 아주 가벼운 마음이었다. 에어비앤비의 손님으로 묵어본 적은 있지만, 과연 손님이 우리 작업실을 예약할까? 싶은 생각이 먼저였기 때문이다.

기대 반, 의심 반으로 에어비앤비 사이트에 숙소를 등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첫 손님이 예약했다. 독일친구였던 크리스티나의 첫 예약을 시작으로, 작업실 손님방은 오랫동안 비는 일 없이 계속해서 손님들이 머물다 갔다.

처음으로 3개월 장기손님을 맞으며 거울도 달고 옷걸이, 선반도 달았던 날.

작고 오래된 주택일 뿐인데 작업실에 너무나 많은 사람이 함께 쓰는 것 같아 보일지 모른다. 의외로 모든 사람이 한 공간에 함께 머무는 일이 자주 생기지는 않는다. 모두의 생활 패턴이 다르고, 작업실을 사용하는 시간이 제각각이다 보니, 약속을 해야 다같이 한 자리에 모이는 정도다. 가장 성실한 일명 먹물언니 혜수씨는 매일같이 와서 저녁 늦게까지 그림을 그리고, 웹소설을 쓰는 친구는 평일 낮시간에만 와서 집중 근무를 하고, 나를 포함 나머지 친구들은 대중없이 시간 될 때 작업실로 온다. 그러다보니 손님과 마주칠 일이 생각보다 적다. 짧게 머무르는 손님과는 아예 얼굴도 보지 못한 채 떠나보내기도 하고, 다른 친구들만 얼굴 몇 번 보고 가기도 한다. 모두와 시간이 잘 맞을 땐 저녁도 같이 먹고, 치맥도 함께 하고, 프리마켓에 같이 나가거나 요가도 함께 하기도 한다. 


앙꼬는 다른 고양이들에 비해 새로운 사람에 대한 경계가 적은 편이라 에어비앤비를 시작할 수 있었다. 아가였을 때부터 작업실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 버릇 하다보니 새로운 사람을 덜 무서워 하는 것 같다. 아참, 그리고 손님은 ONLY WOMEN만 받다보니 앙꼬가 덜 낯설어 하는지도! (택배배달원이나 수리 기사 남자분이 오면 몸을 낯추고 "우르르르르"하고 경계한다)

무례하게 손님에게 발차기 하는 앙꼬

그치만 앙꼬는 예전에 그 방에 있었던 기억 때문인지 곧잘 손님 침대에 오줌을 싸곤 했다. 손님이 깜빡 잊고 문을 살짝 열어두면 그 사이로 쪼르르 달려들어가 오줌을 싸고는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그루밍을 했다. 초반에 왔던 중국 손님은 유난히 문을 잘 열어두었는데, 4일 밖에 묵지 않았는데도 솜이불 빨래를 두 번이나 해야 했다. 기분이 나빠 나쁜 평점을 주면 어쩌나 했는데, 앙꼬의 귀여움 때문인지 다행히 평점 테러는 면했다.

이제는 비앤비를 시작한 지 2년 정도 되어 가는데도, 아직도 앙꼬는 종종 오줌을 싸곤 한다. 처음엔 자기 방을 빼앗긴 데 대한 복수였다면, 이제는 본인이 마음에 들지 않는 손님이 올 때 오줌을 싸는 것이 아닌가 싶다. 예민한 고양이 특성상 자기를 예뻐해주고 좋아해줄 사람인지 아닌지를 단 번에 파악하는 것이 아닐까. 어떤 사람은 문을 잘 닫는데도 기어코 들어가 오줌을 싸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문을 열어놔도 방에 들어가지 않다가 손님이 밖으로 나오면 야옹거리며 스치기 스킬을 보여준다. 

오줌 싸는 앙꼬말고, 손님으로서 또 하나 곤란한 일이 있다면 그건 탈출하는 앙꼬다. 밖을 나가려고 할 때나 작업실에 들어오려고 할 때 문이 열리는 순간을 기가 막히게 알아서, 그리고 손님은 작업실 친구들 보다 허술하다는 걸 너무나 잘 알아서, 그 때를 캐치해 앙꼬는 밖으로 돌진한다. 앙꼬가 처음에 밖에 나가면 손님들은 본인 때문에 앙꼬가 밖에 나가버린 것 같아 미안해 하며, 또 화들짝 놀라 메세지를 보내온다. 그럴 땐 침착하게 "부엌 창문을 열어놓으면 알아서 들어와요."라고 메세지를 보낸다. 


앙꼬가 있어서 우리 작업실을 숙소로 선택하는 손님도 있을 정도니, 앙꼬도 호스트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고양이를 키우지는 않지만 고양이가 좋아서 여기를 선택한 손님, 집에 고양이를 키우고 있어서 고양이가 있는 숙소를 선택한 손님, 모두 고양이로 하나되는 순간이다. 앙꼬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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