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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RI Jul 15. 2018

Helen과 함께한 강렬한 열흘

비앤비 손님이랑 어떤 것까지 해봤니 

심심작업실은 전문 숙소는 아니기에, 짧은 손님을 여러 번 받기보다는 장기 손님을 길게 받는 것을 선호한다. 그래서인지 신기하게도 1달 이상의 장기 손님이 종종 묵어간다. 장기 손님이 되면 작업실 친구들과도 친해지고, 앙꼬와도 친해지게 되어 저녁을 같이 먹거나, 전시회를 같이 보러 가거나 하는 일도 종종 생긴다. 그런데 이번엔 열흘밖에 묵어가지 않는 손님인데도, 너무나 강렬하게 시간을 함께 보낸 손님이 있었다.

헬렌은 한국에는 35년 만에 방문하는 코리안 아메리칸이다. 5살 때 외할머니 생신에 한국에 왔던 이후로, 한국에는 올 기회, 올 생각도 없었다 한다. 헬렌의 부모님도 96년 이후로는 한국을 방문한 적이 없어 21세기의 한국을 전혀 모른 채로, CICA미술관에 전시를 하기 위해서 한국에 왔다. 


헬렌과 처음 만난 첫 주말, 한국말이 서툴다며, 아빠가 한국 오기 직전에 고모 연락처와 이모 연락처를 줬는데 언제 어디서 만날지 약속을 잡아줄 수 있냐며 부탁해왔다. 얼마 전까지도 아버지와 연락했다는 고모와는 쉽게 연락을 하여 약속을 잡을 수 있었다. 연락을 안 한지 오래라는 부산의 큰 이모의 집전화번호는 결번이었고, 지금은 아무도 쓰지 않는 011로 시작하는 핸드폰 번호에 부산 지역번호 051이 붙어있었다. 지역번호 051을 떼고 걸어봐도 역시 결번. 전화 연결이 되지 않으면 집주소로 찾아간다기에 손사래를 치며 말렸다. 한국은 이사를 자주 가서 직접 가도 못 찾을꺼라구. 혹시나 싶어 예전 핸드폰 번호로 새 번호를 찾는 방법을 검색해보니 바로 사이트가 나왔고, ?!! 예전 번호를 넣어보니 지금 쓰는 번호가 바로 짠! 하고 나왔다.

그렇게 난생처음 이모와의 전화통화를 내가 연결해주었고, 헬렌이 하고 싶은 말을 내가 한국말로 전하자 헬렌은 눈물을 찔끔 흘렸다. 안부를 서로 확인하자마자 몇 살이냐, 결혼은 했냐를 물어봐서 당황했다기에 한국의 가족 문화라고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는 살면서 지금까지 나의 유전적 국민성을 고민해 본 적이 없다. 한국인인걸 의심한 적도 없었고, 한국인이 아닐까 봐 조바심이 난 적도 없었다. 그런데 헬렌은 몇 번이나 자기의 유전자를 보내 유전적 국민성 테스트를 했었다고 한다. 첫 번째 검사한 곳에서는 샘플 자체에 한국인이 없어 결과에도 한국인이 0%로 나와 너무 슬펐다고 했다. 그 이유를 나는 헬렌의 전시회에 가서 조금은 알 수 있었다. 35년이나 오지 않았던 한국인데, 주변 사람들은 헬렌을 눈이 찢어진 동양인이라며 놀려댔던 것이다. 헬렌의 어머니는 영어를 배우지 않아 헬렌과 간단한 의사소통만 한국어로 하고, 구글 번역기를 통해 대화했다고 한다. 본인은 미국인이라고 느끼면서도 해소되지 못하는 자기 뿌리에 대한 궁금함과 그리움이 헬렌의 전시에 그대로 녹아 있었다. 

헬렌의 전시. 엄마에게 배운 아침먹고 땡 노래를 전 연령대의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걸 신기해 했다.


헬렌을 따라 전시회도 가고, 다른 컨퍼런스에 축하 퍼포먼스도 촬영해 주러 가면서 나와 작업실 친구들은 헬렌과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이미 퍼포먼스를 하고 있는 친구도 있었기에 헬렌은 부담 없이 마음을 열고 본인의 작업에 초대를 하고, 촬영 작업을 부탁했다. 퍼포먼스는 보지 못했지만, 엄마, 엄마의 나라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깊이깊이 느껴지는 작업이라고 친구들이 전해주었다. 


이후 우리는 많은 것을 함께 했다. 밥도 같이 먹고, 헬렌이 망원시장에서 사 온 과일과 야채를 나눠먹고, 소규모 판소리 콘서트에도 함께 가고, 그리고 요가 선생님이기도 한 헬렌이 마지막으로 작업실 친구와 나누고 싶어 했던 요가 수업까지! 정말 짧은 기간 많은 것을 함께했던 강렬한 손님이었다. 날씨가 무척 더웠던 현충일 오후, 그리 넓지 않은 작업실 마루에서는 4명의 요가 학생과 헬렌 선생님이 바닥에 땀을 뚝뚝 흘려가며 요가를 배웠다. 앙꼬는 인간들의 큰 움직임을 처음 보는 양, 눈을 똥그랗게 뜨고 이리저리 왔다 갔다 헤매다가, 창가에서 우릴 구경했다. 

차투랑가 자세 시범을 보이는 헬렌과 무심히 창밖을 보는 앙꼬

헬렌은 이번 한국행을 계기로 한국에 와서 한 번 살아보고 싶어 졌다고 했다. 그리고 다음번에 만나면, 손님과 호스트가 아니라 친구로 만나자고 하였다. 직접 만든 허브 오일과, 쓰고 있던 허브 테라피 밤까지 아낌없이 나누고 돌아가는 헬렌을 보며, 심심작업실이라는 공간을 통해 만날 수 있었음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한국에서 먹으려고 샀던 식량과 직접 만든 오일, 쓰던 테라피 밤까지 아낌없이 주고 간 헬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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