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처음 비앤비를 시작했을 때는 작업실의 남는 방을 한 번 실험해 보자는 느낌이 컸다. 큰 방엔 3명, 작은 방엔 2명이 책상을 각각 놓고 작업하는 공간으로 쓰고 있었고, 남은 한 방은 책장을 두고 쉬는 방으로 쓰고 있었다. 그림모임을 진행하기도 하고, 빈 방에 누워서 뒹굴거리기도 하고. 그 해 여름에는 아기 길고양이였던 앙꼬가 그 방의 주인이 되었다. 처음엔 낯설어 그 방에서 숨어서 야옹야옹 울던 앙꼬는 몇 달 사이 꽤나 용감해져 작업실 이 방 저 방을 쏘다녔다. 그래서 이 빈 방을 다른 용도로 사용해 보고 싶었다. 외국인 손님과 만나는 공간으로.
처음에는 5일이나 7일 정도의 짧은 여행을 오는 여행객들이 많았다. 시간이 맞을 때면 같이 치킨도 시켜 먹고 수다도 떨었지만, 일정이 맞지 않아 조용히 떠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다가 비앤비손님과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걸 깊이 알려준 친구가 있다. 미국에서 태어나 5살에 한 번 한국에 온 후 35년 만에 한국 땅을 밟은 헬렌.
헬렌은 요가강사이자 전시, 퍼포먼스를 하는 예술가였다. 김포의 CICA 미술관에서 ‘엄마’에 관련된 전시를 하러 한국에 방문했다고 했다. 아버지가 거의 20년 전에 연락이 끊긴 부산 이모의 주소와 전화번호를 전해주며 연락을 해보라고 했다고 작은 메모를 보여주었다. 011로 시작하는 이모의 핸드폰 번호, 051로 시작하는 부산 번호는 둘 다 결번이었다. 오래 전의 주소만 가지고 무작정 부산으로 찾아가려는 헬렌을 만류하고 예전 번호와 연결된 새 핸드폰 번호를 어찌어찌 찾았다. 2018년까지는 그런 웹사이트가 남아있었던 것 같다. 지금이라면 찾기도 어려웠겠지. 서투른 한국어로 이모와 통화를 하다가 헬렌은 눈물을 찔끔 흘렸다. 헬렌이 이모에게 어떤 한국말을 해야 할지 어려워할 땐, 내가 영어로 들은 말을 이모에게 한국말로 전했다. IMF 때 한국을 떠난 가족과 부산의 가족을 이어주는 메신저가 된 것 같아서 나도 괜히 뭉클했다.
그날 이후로 우리는 마음의 문을 열고 많은 것을 함께 했다. 헬렌의 전시도 보러 가고, 작업 이야기도 듣고, 헬렌이 보고 와서 너무 좋았다는 소규모 판소리콘서트에도 함께 가고, 망원시장에서 사 온 과일과 야채도 나눠 먹었다. 전시를 마치고 일정 마지막에는 작업실 친구들에게 요가도 가르쳐주고 싶다고 해서 요가매트도 없었지만 마룻바닥에서 열심히 요가도 배웠다. 손님에게 이렇게 많은 마음을 받을 수도 있구나, 이만큼 가까워질 수도 있는 거구나, 헬렌에게서 처음 느꼈다. 조금은 어색한 부산 사투리로 ‘나 마흔 살이쟈나.’ 라며 많은 것을 툭툭 사줄 때는 이제 정말 친한 언니가 된 것 같았다.
헬렌과의 인연은 코로나 때에도 이어졌다. 모두가 앞날을 예측을 할 수 없었던 2020년, 헬렌은 일본의 아트 레지던스에서 전시를 준비하고 있었다. 3개월을 예상했던 일본 일정은 코로나 때문에 기약 없이 길어져 9개월 정도를 일본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겨우겨우 미국으로 돌아가는 일정을 잡고, 코로나가 잠시 잠잠해졌을 무렵 서울에 와서 그간의 시간을 나누었다. 그때 헬렌은 나비와 풍뎅이를 활용한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박제 워크샵을 우리와 함께 해보고 싶다고 했다. 아마존에서 배송받은 나비와 풍뎅이들을 물에 적셔서 조금씩 부드럽게 만든 후 조심스레 펼쳐서 핀으로 살짝살짝 고정했다. 나비는 살아남기 위해 겉날개는 나무색과 나무무늬를 가지고 있지만, 펼치면 총천연색의 화려한 무늬를 가지고 있었다. 곤충을 만지는 건, 그것도 죽은 곤충을 만지는 건 어렸을 때 이후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조금 무섭기도 했는데 헬렌이 이 작은 생명의 시간들을 기억해 보자고 하면서 작은 의식처럼 이 박제작업을 하고 있으니 신비로운 느낌마저 들었다. 그날 우리는 오로라 타로 카드도 서로 나누고, 짧게 춤도 추었다. 헬렌이 있었기에 가능한, 헬렌의 에너지로만 가능한 시간이었다.
돌아보면 나는 늘 사람들에게 내가 받은 만큼만 마음을 주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나에게 이만큼의 마음을 주었으니까 나도 이만큼만 줘야지, 손해 보고 싶어 하지 않았고, 더 큰 마음을 주었다가 상처받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런데 헬렌을 만나며 이렇게 자유로운 영혼으로 마음의 크기를 재지 않고 마음껏 애정을 주는 사랑을 배웠다. 그것도 에어비앤비 호스트와 손님으로 만난 사이에서. 나는 가끔 헬렌이 문득 떠오른다. 생각이 나면 크리스마스카드를 보낼 때도 있고, 그냥 생각으로만 그칠 때도 있다. 그래도 우리는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되면 반갑게 허깅하고 그동안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I started hosting Airbnb in 2016, almost as an experiment. There was an extra room in my small studio house, and I was curious about how it might feel to share that space with strangers.
At first, most guests stayed only a few days. Sometimes we shared a meal or a conversation, but often our timing didn’t match and they left quietly.
Then I met Helen.
Helen had immigrated to the U.S. as a child and came back to Korea for the first time in 35 years.
She was a yoga teacher and an artist, visiting for an exhibition about her mother.
She carried a small note with an old phone number and address of her aunt in Busan — someone her family had lost contact with decades ago.
The numbers no longer worked, and she was thinking of going to Busan with just that information. We somehow managed to find an updated contact. When Helen finally spoke with her aunt, she started to tear up a bit. Her Korean was limited, so I helped translate between them. In that moment, I felt like I was quietly connecting two parts of a family that had been separated for a long time.
After that, we grew close.
We visited her exhibition together, shared stories about our work, and went to small performances. She even taught yoga to my studio friends on the wooden floor, without any proper equipment.
Through Helen, I realized something new —
that it’s possible to share more than what feels “fair,” to give affection without measuring it.
I used to be careful with how much I gave to others. I didn’t want to give more than I received. But Helen showed me another way of loving.
Even now, I sometimes think of her.
Sometimes I send a card, sometimes I just hold the memory.
And I know that if we meet again,
we will simply hug and continue where we left of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