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점심을 먹으려고 국숫집에 갔다. 주문을 마치고 조리실을 응시했다. 본다고 얼른 나오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한동안 지켜보다가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사람들은 바쁘게 흩어지고 있었다. 기다리던 국수가 나왔다. 젓가락을 들고 허겁지겁 먹는데, 직원이 쟁반을 들고나오는 것이 보였다. 더 시킨 것도 없고 손님도 나 혼자인데, 뭐지. 직원은 쟁반을 주문대 옆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 지친 표정으로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 순간 국수가 빨리 나오지 않는다고 속으로 채근한 내가 부끄러웠다. 나의 늦은 주문 때문에 누군가 점심을 미루게 된 것 같아서였다.
뷔페에서 아르바이트한 적이 있다. 손님이 오기 전 그리고 모두 떠난 후에만 밥을 먹었다. 정해진 식사 시간이었고 시스템이 그랬다. 식당은 대개 그런 곳인데 왜 이 순간 문득 서글픈 걸까. 밥벌이가 바빠 밥때를 자주 놓치는 사람을 안다. 밥장사하는 친구다. 늦은 밤 술 한잔하려고 만나면 “오늘은 저녁을 제대로 먹지 못했다”며 “그냥 안주로 때우지 뭐” 종종 말한다. 소중한 사람이 밥때를 놓치면 마음이 쓰인다. 그렇다고 밥때에 손님이 몰리는 그에게 밥은 제때 챙겨 먹으라고 잔소리할 수는 없으므로 젓가락을 자주 내려놓고 그를 향해 그릇을 자주 떠민다.
화가 나고 짜증이 날 때 맛집을 찾는 사람이 있다. 나는 스트레스를 받거나 지칠 때 소울푸드를 먹는다. 엄마가 해주는 잔치 국수다. 퇴사 후 입맛을 잃었을 때였다. 직장에 적응하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이었는지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는 좌절감이 원인이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는 뭘 먹어도 입이 써 끼니를 거르는 날이 많았다.
생각해 보면 늘 그랬다. 일이 풀리지 않거나 사람으로부터 상처받은 날마다 나는 깊이 좌절했고 음식을 멀리 했다. 나를 먹이지 않는 것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듯 미련하게 굶었다. 그러면 내 몸은 문제 해결 방식이 틀렸음을 극심한 허기로 항의했다. 그날도 그랬다. 침대에 엎드려 공복을 견디는데, 엄마가 식탁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내 몸은 나보다 엄마와 더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고 느낀 순간이었다.
“너 좋아하는 잔치국수 삶았어. 어서 먹어.”
어릴 적부터 면 요리를 좋아했다. 그중에서도 잔치국수를 가장 좋아했다. 배고픈 와중에 좋아하는 음식이 앞에 있는데도 그날엔 도무지 식욕이 돋지 않았다. 해 준 사람의 성의를 생각해 먹는 시늉이라도 하겠노라 젓가락을 들었다. 소면을 후후 불어 입안에 욱여넣자, 육수의 감칠맛이 은은하게 퍼졌다. 첫 젓가락질은 두 번째 젓가락질로 이어졌다. 짭조름한 김치와 부드러운 면발을 입 안 가득 채웠다. 이상하게도 마음이 충만해진 기분이 들었다. 양손으로 그릇을 들고 국물을 후룩 마셨다. 깊은 육수와 청양고추의 알싸한 맛이 뱃속으로 들어오자 땀도 눈물도 아닌 뜨거운 기운이 나의 몸 어딘가에서 빠져나갔다. 비로소 살 것 같았다. 고작 국수 한 그릇이 해낸 일이었다.
다음 날에도 엄마에게 잔치국수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엄마는 어떤 음식이든 뚝딱 만들어내는 우리 집 가정식 전문가였고, 잔치국수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는 엄마가 삶아준 잔치국수를 좋아했지만, 엄마가 잔치국수를 삶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을 더 좋아했다. 직접 해먹을 때도 많지만 엄마가 해준 맛은 흉내 낼 수 없어서 마음이 지칠 때마다 자주 신세를 진다. 엄마는 기꺼이 국수를 해주신다. 사람이 채워주지 못하는 것을 음식이 채워줄 때가 있다. 얼굴이 좋아 보이지 않으면 밥 먹었는지 확인하고, 가끔은 두 손을 맞잡으며 밥 먹자고 말할 수 있어서 다행스러울 때가 많다. 음식은, 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을 준다고 믿는다.
누구나 일이 바쁘거나 마음이 바빠서 끼니를 거르는 날이 있다. 한 끼쯤이야 괜찮다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간다. 그러나 한 사람의 허기는 그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다른 한 사람의 슬픔이다. 끼니를 거르는 일은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는 의미다. 밥때가 지나서, 배가 고프지 않아서, 기분이 언짢아서, 일이 너무 바빠서 끼니를 거르고 싶을 때마다 나의 허기에 슬퍼할 한 사람을 떠올렸으면 좋겠다.
밥이 넘어가지 않는 날에도 기어이 한술 뜨게 만드는 사람이 내게도 있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을 위해 내 속을 채울 때가 있다. 그래야 그 사람의 단식을 타박할 자격이 내게도 생길 테니 꾸역꾸역 한 그릇을 비운다. 당신도 다른 건 무리하지 않아도 밥을 챙겨 먹는 일만큼은 무리해 주길. 바쁘거나 아픈, 어쩔 수 없는 순간에도 이 부탁은 잊지 않기를. 이따금 부탁을 들어주지 못해도 미안해하지 말고 다음에는 꼭 지키겠다고 약속해 주기를.
이 말을 전하고 싶어서 오늘은 조금 이른 저녁을 먹었다. 매실장아찌가 알맞게 익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