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는 그래도 돼
어느 날 당신이 좀 아팠다. 마음의 문제였다. 걱정에 체한 사람처럼 아무것도 먹지 못했고 진종일 불안해했다. 그러는 동안 나는 가만히 허둥대고 있었다. 당신에게 가끔 물을 가져다주었지만 대게는 언어를 잃은 사람처럼 침묵할 뿐이었다.
TV를 켜니 저녁 뉴스가 끝나가고 있었다. 기상 캐스터가 들뜬 목소리로 내일 날씨를 예고했다. 비가 온다 하면 우산을 준비하고, 기온이 내려간다 하면 외투를 입으면 그만인데 내일처럼 화창한 날엔 무얼 해야지 하는지 그는 끝내 가르쳐주지 않고 방송을 끝냈다.
날씨는 기분과 닮았다. 흐린 날도 있고 화창한 날도 있으며 진종일 차가운 날과 무턱대고 뜨거운 날이 있다. 일주일은 비슷하지만 그 다음 일주일은 다를 수 있다. 지난 주 우리는 턱이 빠지게 웃었던 것도 같은데 무엇이 우리에게 웃음을 짓고 지나간 것인지 지금은 도통 알 수 없다. 하긴 지난 주 날씨를 기억하는 일은 또 얼마나 고되고 하찮은 일인가.
더 알 수 없는 것은 밤이 되자 우리가 같은 마음이 되었다는 점이다. 불안은 이제 당신만의 것이 아니므로 나는 어서 우리에게 번진 불안을 끄고 싶었으나 방법을 몰랐다. 위로가 되지 못할 몇 마디를 혀끝으로 만지작거리는데 문득 당신이 말했다.
괜찮을 거야.
다 괜찮을 거야.
괜찮을 거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괜찮지 않아서 불안한 건데 아무 근거 없이 괜찮을 거라니. 상대가 안온하길 바라는 그 다정한 마음을 모르지 않으나 대책 없는 낙관에 힘 빠지는 날이 많아서 반갑지 않았다. 하지만 그 순간은 달랐다. 괜찮을 거라는 당신의 말을 구원처럼 믿고 싶었다.
당신이 건넨 괜찮을 거란 말은 예상이 아니라 바람이었다. 우리가 평화롭길 바라는 간절히 마음. 그 바람은 우리의 마음 아래 침전한 불안을 서서히 밀어냈다. 불안은 밤과 같다. 한없이 깊어지던 어둠이 한줄기 희미한 빛을 만나 서서히 환해지는 밤. 그날, 우리는 뜻밖에도 단잠을 이뤘다.
계절이 바뀌는 동안 좀 아팠다. 익숙한 커피 향 대신 소독약 냄새로 하루를 시작하는 날이 잦았다. 그럼에도 한동안 병원은 낯설었다. 시간이 흐르자 누군가 앓는 소리가 의미 없이 켜둔 TV소음처럼 무신경하게 느껴졌다. 비로소 환자라는 직업에 익숙해진 거였다. 그렇다고 고통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아픔은 늘 새로웠고 거의 모든 생활이 불편했다. 내 옆에서 걱정하는 당신에게 습관처럼 전한 말이 있다.
괜찮아.
괜찮아질 거야.
어느 밤, 당신에게 배운 말이었다. 위로란 설득도 치유도 아닌 그저 한순간 견딜힘을 더해주는 일이라는 것을, 힘을 주는 일에는 근거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도. 마음의 문제는 논리로만 해결할 수 없다는 것 역시. 당신이 내게 준 섣부르고 진심 어린 위안이었다. 그리하여 누군가 해결할 수 없는 불안에 빠져 있다면 어떤 근거도, 그럴듯한 가능성도 전부 지우고 이 한마디를 전할 테다.
봄에는 두꺼운 외투를 벗어놓듯 무거운 고민을 조금 내려두어도 좋겠습니다. 무턱대고 낙관하고 근거 없이 서로를 응원하며 걱정을 낭비해도 좋겠습니다. 한 해에 한 철은 그래도 된다면 봄이 적당하겠습니다. 너르고 무른 하늘을 가진 계절이기 때문입니다. 순한 바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먼발치에서 낙관의 눈빛으로 당신을 응원합니다. 차마 위로가 되지 못한다 하여도 봄을 핑계로 빈손을 건네 봅니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