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뻔해

by 이학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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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며 살다 보니 내 글 좀 봐줄 수 없겠냐며 구원 요청하는 사람을 종종 만난다. 때마다 마음속에서 두 가지 목소리가 들린다. 하나는 부족한 내 실력으로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싶은 의문의 목소리. 다른 하나는 그래도 글쓴이로 봐주는구나 싶은 안도의 목소리. 두 목소리 모두 난처하긴 매한가지지만 그렇다고 까다롭게 굴지는 않는다. 여유가 있을 때는 도움을 주려고 노력한다.


소설 쓰기를 물어본 사람이 있었다. 소설 쓸 때 하루에 정해놓은 분량을 채워야 하는지 아니면 매일 최대치를 발휘해야 하는지 내게 물었다. 제대로 아는 바 없지만, 내 손이라도 잡으려는 사람을 뿌리칠 수 없어서 아는 대로 일러주었다. 하루하루 정해놓은 분량을 꼬박꼬박 쓰되, 글이 잘 풀리지 않는 날에도 어떻게 해서든 분량을 채우라고 조언했다. 어차피 초고를 다 쓰면 끝없는 좌절이 반복되는 퇴고가 이어질 테니 억지로 분량을 채워서라도 하루하루 뿌듯함을 느끼는 편이 낫다고 덧붙였다. 각자에게 맞는 방법이 있기 때문에 정답이 없다는 전제를 빼놓지는 않았다.


이십 대 후반에는 자기소개서가 내게 몰려들었다. 한 사람의 인생사를 나열한 글이 내 손을 거친 후 합격 소식이 들려올 때가 제법 있었다. 하지만 “당신 덕분이다” 같은 특별한 반응을 본 적은 없으므로 내가 그들의 당락에 관여한 것은 아니었을 거라 짐작한다.


문장 구원 요청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요청은 몇 해 전 한 지인의 요청이었다. 직장 업무로 블로그 관리를 하는데 소개 문구가 정리되지 않는다며 내게 도움을 청했다. 전문 인력에 맡길 만한 큰일도 아니었고, 요구를 들어보니 어렵지 않은 일 같아서 기꺼이 승낙했다. 작업은 간단했다. 설명이 다 들어 있어서 문장만 명료하게 줄이면 되는 일이었다. 두 시간 만에 끝냈다.


며칠 후 지인이 술을 사겠다고 동네에 찾아왔다. 나는 별로 한 일이 없어서 멋쩍어하고 있는데 그가 소주를 따라주며 말했다. “정리가 안 돼서 며칠 헤맸어요. 정말 고마워요. 역시 전문가는 다르네요.” 한참 글쓰기 자신감이 바닥을 치던 때였다. 다음날부터 멈췄던 작업을 재개할 수 있었다. 다시 쓰게 된 동력은 따뜻한 인정의 말에 있었다.


누구나 익숙한 무언가를 새로이 시작할 때가 있다. 아직 달성하지 못했거나 새로운 달성 목표에 재도전할 때가 그렇다. 해온 일이라서 쉬울 것 같은데 의외로 부담을 느끼거나 불안에 빠지기도 한다. 그럴 때는 구원 같은 한마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일테면 이번에도 잘할 거라는 신뢰의 한마디. 이번에는 더 잘할 거라는 응원의 한마디. 이러한 한마디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나는 모르지 않는다.


그리하여 언젠가 당신이 익숙한 무언가를 새로이 시작한다면 꼭 말해주고 싶다. 이번에도 뻔하다고. 당신은 분명 잘할 거라고. 이번만큼은 내 예감을 꼭 믿어주길 바란다. 이래 봬도 촉은 좋은 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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