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반려 병
이건 젊은 사람 맥이 아니에요
엄마가 퇴원하고 이틀이 지나고부터였다. 익숙한 직업병이 내 몸을 덮쳤다. 목과 어깨가 쑤시고 팔이 저렸다. 늘 가던 동네 통증의학과를 가도, 다른 동네의 병원에 가도, 디스크 전문 병원에서 약을 먹어도 효과는 잠시뿐. 누워 있을 때조차 몸이 아팠다. 큰 병원에 가기 싫어 한의원에 갔다. 진료를 기다리는데 간호사가 오더니 회원 관리 때문이라며 사진을 찍어갔다. 어쩐지 머그샷을 찍은 거 같기도 한데. 이번엔 교도관··· 아니, 간호사를 따라 검사실에 들어갔다. 의자에 앉아 혈압계와 비슷하게 생긴 기계 안으로 팔을 집어넣었다. 한 번 더 해볼게요. 검사가 잘되지 않는지 간호사가 당황한 눈치였다. 왜 이러지. 한 번만 더 해볼게요. 나중에 안 사실인데, 그 기계는 맥을 짚는 맥진기였다.
한의사는 젊어 보였다. 어쩌면 나보다 어릴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는 ‘젊은 사람들에게 한의원이란, 이 병원 저 병원 돌고 돌다 마지막에 오는 곳’이라고 했다. 그럼 당신은 어디를 돌다 왔나요. 그런 생각을 하는데, 그가 내 증상을 보고 사각근증후군이라고 진단했다. 편두통, 불면증, 손목터널 증후군, 목디스크, 일자목 증후군, 과민성 대장 증후군, 극장 공포증에 이어 나의 새로운 반려 병의 이름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그건 그렇고, 불면증이 심하신가 보군요.”
한의사 손에는 맥진 검사지가 들려 있었다.
“아, 네.”
“굉장히 오래되신 것 같은데요?”
나는 입술을 꾹 누르며 웃었다. 정신과에서 상담을 받다가 마음을 들켜 버린 순간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기도 한다던데 나는 고작 오래된 불면증을 들키고서 당황한다.
“맥을 보니, 아주 오랜 시간 잠을 못 자고, 스트레스가 심하신 것 같아요. 이런 분들이 또 소화기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아요. 전체적으로 기운도 없고요. 그런 상태에서 다른 병이 생긴 거라서 아마 통증이 더 심하셨을 거예요.”
통증은 일상과 멀어지는 신호다. 바쁘다는 핑계로 통증을 모른 체하면 꼭 탈이 난다. 다만 이번에는 신호를 듣지 못했다. 지난 몇 달간 투고를 준비하며 몸에 피로를 성실하게 누적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엄마가 아프셨다. 몸살인 줄 알다가 복통 때문에 응급실에 찾고서야 통증의 원인을 알게 되었다. 엄마의 간에 농양이 생겼다고 했다. 엄마는 입원 후에도 고열과 항생제 부작용에 시달리셨다. 복부에 배액관을 연결해둔 터라 옆으로 돌아눕지도 못하셨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없었지만, 손이라도 되려고 매일 병원에 갔다. 한달 넘게 입원실에 출퇴근한 것이다. 그때는 내가 아픈 줄도 몰랐다.
엄마가 잠들거나 의사가 찾아오면 보호자 대기실에 앉아 있었다. 잔뜩 몸을 구기고 휴대전화로 책을 읽었다. 글은 쓰고 싶지 않아서 남의 쓴 글을 읽고 또 읽었다. 그럴 때마다 몸이 동그랗게 움츠러들었다. 직업병이 머물기 좋은 자세였다.
“이런 말씀 드려도 될지 모르겠지만, 환자분 맥은 거의 할머니 맥이에요.”
한의사는 이백만 원이 넘는 탕약을 권했고, 나는 또 입술을 꾹 누르며 웃었다. 돈은 사람을 웃기는 재주가 있다. 병원을 나와 작업실에 가려다 발길을 돌려 집으로 향했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엘리베이터에서 7층 할머니를 만났다. 이 동네에서 7층 할머니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왕성한 활동량을 자랑하는 7층 할머니는 사시사철 빨간 옷을 입는다. 외투도 빨강, 바지도 빨강, 가끔은 슬리퍼도 빨강. 빨강 할머니는 오늘도 숨으로 노래를 부른다. 음높이가 크게 다른 들숨과 날숨이 좁은 엘리베이터 안을 가득 채운다. 나는 빨강 할머니의 맥이 궁금했다.
한 달 넘게 약침을 맞고, 물리치료를 받고, 일을 멈췄더니 몸이 제법 정상으로 돌아왔다. 이런 순간마다 나는 관대한 사람이 된다. 정신이 맑아지고 사람과 일상 앞에 겸손해진다. 이것은 내가 아픔을 겪어본 사람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상으로 돌아온 나는 작업을 재개했다. 밀린 분량을 채우려면 몸이 버텨줘야 할 텐데. 내가 하는 몸 관리는 스트레칭과 산책밖에 없다. 작년에는 몇 달간 웨이트 트레이닝을 했는데 사정이 생겨 멈춘 후로 어영부영 끝났다. 칠 킬로쯤 쪘다가 다시 칠 킬로쯤 빠졌다. 글쓰기도 몸 쓰기가 필요한 일이다. 긴 시간 몰입할 체력과 목을 감싸줄 근력 정도는 필수인데. 그래서 운동을 해야 하는데, 생각에서 그친다. 해로운 것을 멀리하라는 의사가 흡연과 음주를 즐기듯, 알면서도 실천하지 않는 나의 소신이 놀랍다.
일보다 몸이 더 중요하다고들 말하지만, 그건 당연한 소리지만, 몸만 신경 쓰면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무리하지 않고, 꾸준한 운동으로 관리해도 자주 쓰는 몸의 어딘가는 결국 아프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직업병은 일의 일부라는 생각도 얼마쯤 한다. 세상에 공짜는 없고, 몸은 마음보다 기억력이 좋다. 어쩌면 글을 쓰기 위해서는 통증에 익숙해져야 하는지도 모른다.
어제는 오랜만에 목이 아닌 다른 곳에 통증이 찾아왔다. 저녁을 먹고 다시 작업을 하려는데 머리가 아팠다. 속이 울렁거리고 몸을 가누기 힘들었다. 침대에 누워도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다. 안정을 취하면 나아질 줄 알았는데 자리에 눕자 어지러움이 심해졌다. 그때 엄마에게서 연락이 왔다. 나는 상황을 짧게 설명하며 다시 연락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로부터 눕지도 앉지도 못한 채 한 시간쯤 헤매다 먹은 것을 다 토해내고 겨우 잠이 들었다.
몸을 가누지 못할 만큼 아플 때마다 그 순간 한 번씩 죽는 것이 아닐까 종종 상상해 본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다른 세계로 건너가 현실의 나를 대신 끊임없이 죽는 상상. 그런 상상을 할 때면 우리의 생은 하나지만, 죽음은 여럿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몸이 회복하면 다시 태어나는 기분이 드는 것도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다음 죽음이 오기 전까지 이번 생은 더 잘해봐야지, 무서워하지 말아야지, 용기 내게 된다.
늦은 새벽 서늘한 기운에 눈을 떠보니 몸은 신열에 젖어 있었다. 머리까지 덮은 이불을 밀어내고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문자가 두 개 와 있었다. 하나는 자신도 그런 적이 있었다며 찬물을 마시고 안정을 취해보라는 내용이었고, 두 번째는 한 시간쯤 지나고서 보낸 것이었는데 여전히 나의 상태를 걱정하는 내용이었다. 발신자는 엄마였다. 어떤 문장은 마음의 통증을 덜어주는 힘이 있다는 것을 몸으로 배운 새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