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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민 Aug 11. 2023

뭘 모르고 하는 소리

공현진 소설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

 공현진 작가의 단편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를 말해보려고 한다. 나는 이 소설을 재난 소설이자 인물 소설로 읽었는데, 이유는 이러하다. 하나, 재난이 나온다. 둘, 그 재난 앞에 놓인 (두) 인물의 내면과 행동이 담겨 있다. 인상적인 점은 소설 속 재난이 가상의 재난이 아니라 현실 속 기후 위기를 의미한다는 점이다. 누군가는 그게 왜 위기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위기를 감지하는 시점과 정도는 저마다 다르므로 아직은 안심하는 사람들도 있을 터. 다만 기후 위기를 당면한 위기로 인식하며 우리의 터전이 멸망을 향해 가고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다. 요컨대 소설 속 두 인물처럼.

     

 10년간 초등학교 교사로 일한 ‘희주’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32쪽) 환경 문제에도 민감했다. 어느 날엔 기후 위기에 관한 자기 인식을 학생들에게 전했다. 아니 정정하자. 인식이 아니라 미래에 관한 추측을 일러주었다. “어차피 우리는 모두 물에 잠길 거다. 잘하면 30년 뒤. 다 같이 죽는 거지.”(33쪽) 사랑해서 한 말. 그러나 사회 규칙에 어긋난 말을 했다는 이유로 희주는 일자리를 잃는다. 1년 후. 그는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해수면 상승과 벌꿀의 실종 같은 위기의 신호를 주의 깊게 살핀다. 물건을 버리고, 사지 않으려고 애쓰며 ‘버리기’를 추구하며 사는 중이다.

      

 두 번째 인물은 ‘주호’. 그가 일하던 사업장에서 한 외국인 작업자가 사출 성형기에 끼어 목숨을 잃었다. 공장은 벌금형을 받았고, 다음 날에도 똑같이 기계를 작동시켰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이건 아니죠”(21쪽) 주호는 그렇게 말하며 사출 성형기를 껐다. ‘김 부장’이 타일러도 계속. 그러기를 여러 번. 애도 기간은 끝났다는 듯 사람들은 주호를 나무랐다. 그런데도 주호는 멈추지 않았다. “그러다 도시가 물에 잠기고 있다는 뉴스를 보았다.”(22쪽) 실재한 기후 위기 앞에서도 책임을 떠올리던 그는 어느 날 문득 수영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한다. 그 후 본능처럼 물속에서 ‘버티기’ 시작한다.

     

 소설 속에서 반복해 나온 표현이 있다. ‘뭘 모르고 하는 소리.’ 오해나 곡해 또는 착각에 대응할 때 쓰는 이 표현은, 주호가 일한 작업장의 벽면에 적힌 포스터 문구를 설명할 때 처음 나온다. ‘안전보다 중요한 건 없습니다.’ 정답처럼 들리지만, 작업자가 보기엔 ‘뭘 모르고 하는 소리’인 듯하다. 현장에서는 안전보다 생산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리라. 이번엔 수영장으로 가보자. 좀처럼 실력이 늘지 않는 희주와 주호에게 강사가 말한다. “부족하면 연습을 해야죠.”(24쪽) 그러자 소설의 서술자가 ‘뭘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반박한다. 두 사람은 강습 없는 날에도 꾸준히 연습해 왔기 때문이다.

     

 사정을 모른 채 속단하는 말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희주가 엄마에게 들은 말. “아무것도 안 할 거야?”(17쪽). 주호에게 김 부장이 한 질문. “아무것도 안 하려고?”(19쪽) 정말 그랬나. 희주와 주호가 본래의 삶을 이탈해 살아가는 건 맞다. 울타리 밖에서 벗어난 후 눈치 없다는 소리를 듣거나 스스로 모순을 느끼기도 한다. 혼란을 겪고 자주 헤맨다. 그렇다고 해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적은 없다. 방식이 다를 뿐 사회 안의 모두가 그렇듯 두 인물도 생존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뭘 모르고 하는 소리’ 아닐까? 

    

 정도를 벗어나거나 적당함을 모르는 사람을 볼 때 속으로 물었다. ‘저 사람은 왜 저럴까?’ 그러고는 사실 확인 없이 편하게 결론지었다. 편해서, 무력해서, 눈치 없어서 그럴 테지. 하나 문학을 읽을수록 타인에 관해 결론을 내리기가 어려워졌다. 무언가를 알았다는 인식보다 점점 더 모르겠다는 감각이 선명해져서 타인을, 타인의 방식을 함부로 판단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것은 내가 믿는 문학의 결론이기도 하다. 모두가 문학의 위기를 말하는 시대이다. 아니 언제나 ‘지금’이 위기라고 말해왔다. 문학의 위기가 소비의 감소가 아니라 속단이 문화가 될 때 찾아오는 것이라면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겠다. 지금은 위기가 맞다.     


(2023. 08. 11.)

(@dltoqur__)



*《소설 보다 : 여름 2023》(문학과지성사, 2023)에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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