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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민 Aug 04. 2023

빵의 노래를 듣는 소녀

키티 테이트·앨 테이트 에세이 《오렌지 베이커리》

특별한 사건 없이도 사람은 무너질 수 있다. ‘오렌지 베이커리’의 공동 운영자 ‘딸’ 키티 테이트(이하 키티)와 ‘아빠’ 앨 테이트(이하 앨)가 함께 쓴 에세이 《오렌지 베이커리》(이리나 역, 윌북, 2023)에 담긴 이야기처럼. 항상 웃던 열네 살 막내딸 키티는 어느 날 우울이라는 절망에 빠졌다. 앨은 그 순간을 이렇게 기억한다. “진짜 절망은 과장된 슬픔의 모습을 하지 않는다. 침대에서 일어나고, 먹고, 씻고, 심지어 잠을 자는 가장 단순한 일상의 기능을 포기하는 게 진짜 절망의 실체였다.” 키티가 학교도 못 갈 만큼 깊은 어둠에 빠진 이유는 무엇인가.

     

누구나 소중한 사람이 아프면, 특히 환부가 마음이라면 그 이유를 알려고 한다. 원인을 알아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리라. 그런데 원인 찾기는 언제나 유용한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첫째, 정확한 원인을 찾기 어려워서. 둘째, 찾는 동안에도 고통은 쉬지 않아서. 셋째, 찾는다 한들 해결(회복)을 장담할 수 없어서. 더구나 원인은 당사자와의 문답을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는데, 마음이 병들면 무언가에 반응하고 스스로 판단하는 회로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그런 당사자에게 자신도 알지 못하는 원인을 들으려 한다면 되레 병이 악화되고 말 것이다.

     

그래서 키티의 부모는 ‘왜’라는 질문을 지우고, ‘지금’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키티가 집중할 수 있는 활동을 찾아주려고 여러 시도를 하고 있었고, 빵 굽기도 그중 하나였다. (앨)” 앨이 빵을 굽자, 키티의 내면에 변화가 생겼다. “아빠가 오븐을 열면 빵에서 듣기 좋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 빵의 노래를 들으면 목덜미 털이 곤두섰다. 꼭 연금술 같았다. 돌멩이처럼 아무것도 아니던 것이 정말 찬란하게 변신했다. 지푸라기로 금을 만들어내는 동화 속 소녀처럼, 나도 그렇게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다시, 그리고 또 다시 빵을 구웠다. (키티)”

     

결론을 말하자면 키티는 빵 굽기로 웃음을 되찾았다. 책의 원제가 ‘Bread Song’이듯, 빵의 노래를 들으며 스스로 일으켜 세운 것이다. 아빠와 함께 어둡고 긴 터널을 통과한 키티의 앞에는 ‘오렌지 베이커리’가 있었다. “오렌지베이커리는 내 머리를 진정시키고 마음을 안심시키는 장소다. 나는 이곳에서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고, 조금도 불안하지 않았다. 정말 행복한 곳이었다. (키티)” 그래서 나는 이 이야기를 하나의 성공담으로 읽었다. 사업의 성공보다는 회복의 성공. 그 과정에는 낯선 이름이 자주 등장했다. 그들을 도운 사람들의 이름이었다.

     

“감사하게도 모든 이들이 우리를 위해 귀한 시간을 선뜻 내주었다. 우리가 만난 사람은 하나같이 엄청나게 바쁜 이들이었는데도 기꺼이 자신의 지식을 나눠주며 돕고 싶어 했다. (앨)” 실제로 수많은 베이커가 키티에게 경험과 조언을 전수해 주었고, 이웃과 손님들도 기술과 자원을 지원해 주었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다리 건너 이어지는 소개와 소개는, 마치 동화 속 주인공을 위한 우연 같았다. 그들이 없었다면 빵집도, 키티가 다시 웃게 되는 일도 없었으리라. 키티와 앨도 그들을 잊지 않았다. 그들의 이름 하나하나를 책에 담고 고마움을 전했다. 마치 수상소감을 전하듯이.

     

이웃과 공동체의 도움을 받은 키티와 앨은 빵집 운영도 그들과 함께했다. 꿀, 달걀, 우유, 밀가루 등은 지역 생산 재료를 사용했고, ‘망한 빵’은 버리지 않고 손님의 반려 돼지에게 전해주었다. 한 마을이 함께 만든 빵의 맛은 어떨까. 나는 잠시 궁금했지만, 진짜 바람은 따로 있다. 이 작품을 영상으로도 보고 싶다. 짧은 영화보다는 긴 호흡의 OTT 시리즈였으면 한다. 물론 책은 책 자체로 완전하며, 영상화는 더 높은 위치나 다음 단계를 가리키는 말이 아님을 안다. 이번에도 그랬듯 책을 읽다가 영상화를 바라는 이유는 언제나 두 가지. 재경험과 재발견을 위해서다.

     

다시 경험하고 싶은 장면은 이렇다. 사물과 집기에 이름을 지어주는 사랑스러운 부녀가 빵을 만드는 과정. 어둡고 긴 터널을 함께 통과하는 가족들의 모습. 그리고 키티의 언니와 오빠, 그들의 표정과 사정을 재발견하고 싶다. 절망에 빠진 사람과 그것을 지켜보는 절망을 겪는 사람. 그들의 분투를 책으로 경험했으니 이번엔 그 뒤편에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써나갔을 두 사람의 이야기를 확인하길 바란다. 형식이 변할 때 이야기는 얼마쯤 수정될 수 있다. 새 이야기에는 각자 자신만 들리는 노래를 발견하는 장면이 들어있었으면 한다. 여기 ‘각자’ 안에는 물론, 우리도 포함된다.



(2023. 08. 04.)

(@dltoqur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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