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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민 Oct 23. 2023

시를 모르면 어떤가

문학동네시인선 200호 《우리를 세상의 끝으로》

지난봄부터 나는 한 달에 한 편씩 시 또는 시집에 기댄 글을 공개하고 있다. 누구도 요구한 적 없고, 다른 형식에 기대는 것에 비해 더 쉽지도 않은데 왜? 다만 좋아해서, 좋아하는 데 몰라서, 몰라도 자주 말하면 더 가까워질 것 같아서다. 이상한가. 우리는 사랑하는 존재에 대해 잘 알고 싶어 하지만, 그래서 정확히 아는 채로 사랑하는가. 사랑하는데 침묵하는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여전히 나는 시를 더 말하고 싶고, 세상은 그럴 만한 시집을 계속, 내놓는다. 이번엔 문학동네시인선 200호이다. 100호에서처럼 회고의 잔치 대신 내일의 약속을 담은 ‘티저 시집’을 펴냈다. 그러나 오늘은 시집 속 시는 말하지 않겠다. 그것은 시가 새집을 얻어 찾아올 그때로 미루고, 아래의 질문 하나만 함께 이야기해 보자.


시란 무엇인가. 시집에 담긴 질문이다. 시를 실은 시인들의 답변도 있다. 독자로서는 흥미로운 물음이나 그에 답해야 했을 시인들은 난감하지 않았을까. 자기 삶에 비중이 큰 주제일수록 그에 대한 관념과 감정이 복잡할 테니까. 그러나 그 질문을 받은 게 처음도 아니고, 마지막도 아닐 것이다. 그래서 그런가. 읽다 보니 오래 준비해 온 대답을 듣는 것처럼 무릎 칠 일이 많았다. ‘그래, 시란 이런 것이지.’ 공감하는 시인의 답변은 사람마다 다를 텐데, 시를 읽기보다는 그저 살아보겠다고 다짐한 나는 몇 개의 답변을 연결해 이렇게 정리해 본다. “시란 기필코 스쳐지나가는 시간”(박철)이자 “세상을 아주 느리게 다시 쓰는 것”(정다연)이므로 “다 끝났다고 여겨지는 곳에서 딱 한 마디만이라도 더 써보는 일이다.”(변윤제)

    

문학동네시인선 200 기념 티저 시집 '우리를 세상의 끝으로', 한정원 외 지음, 문학동네 펴냄, 2023년 10월 16일 출간


이번엔 책의 첫머리로 가보자. 이 시인선은 기념호마다 사려 깊은 안내자의 글을 책 문 앞에 두고 있다. 시인선 기획의원인 신형철 문학평론가의 글이다. 50호에서 언론학자 마셜 매클루언의 말을 빗대 “그와는 다른 맥락에서, 시는 메시지이고 또 마사지”라고 쓴 그는 100호에서 시인의 탄생에 관해 일러주었다. 200호에서는 “자신이 하는 일을 정당화해야 한다는 압력”을 느끼는 시인과 시를 “어려워하는” 독자의 고충을 짚으며 그 고충을 해결하는 것이 “시인선의 역할”이라고 적었다. 그의 말대로 “시인과 독자 모두를 편들기”가 이 시인선의 일이자 방향이라면, 독자로서 그 시작을 주도한 사람에 관해 이야기해 봐도 좋을 것 같다. 그것이 시 독자의 역할까지는 아니더라도 모두를 편들어 준 사람에 대한 예의인지도 모르니까.

   

알려져 있듯 문학동네시인선을 기획한 이는 김민정 시인·편집자이다. 처음엔 ‘파격’에 가까운 시집 형태로 인해 내부 반발이 심했다고 한다. 12년이 지난 지금, ‘파격의 시인선’은 국내 대표 시인선 중 하나가 되었다. 200호를 끝으로 시인선의 기획과 편집에서 물러난 그의 노고에 박수를 보내며 이 시인선이 증명한 것을 곰곰 생각해 본다. 어쩌면 이런 것이 아닐까. 파격은 낯설지만, 어떤 낯섦은 시간을 견뎌낼 때 비로소 고유한 무언가가 된다는 것. 시도 그럴 것이다. 아직은 낯선 시가 우리 곁에서 시간을 견뎌낸다면 각자의 시절을 증명하는 고유한 언어가 되리라. 그러니 지금 당장 시를 모르면 어떤가. 짝사랑이면 또 어떤가. 시의 세계에서는 더 사랑하는 자가 이득을 본다. 사는 동안 더 많은 시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2023. 10. 23.)

(@dltoqur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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