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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민 Feb 23. 2024

넌지시 짚어주는 사람

엄지혜 에세이 《까다롭게 좋아하는 사람》

나의 오래된 화두. 소중한 이들과 함께 살아가려면 어떤 태도가 필요한가. 정답은 없겠지만 최선의 답은 있지 않을까. 혼자 고민하거나 가까운 사람에게 조언을 구해 본다. 가끔은 책을 뒤적인다. 정제된 언어로 태도에 관한 통찰이 쓰인 책은 갈피를 잡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뾰족한 해답을 발견하지 못해도 만족한다. 나의 화두를 저자의 문장에서 확인할 때. 그러니까 ‘같은 고민’이 담긴 책을 읽다 보면 소중한 사람에게 속엣말을 털어놓는 순간처럼 무언가 해소되는 기분이 들어서다. 얼마간 의지가 되는 것도 사실이다. 믿을 만한 사람에게 내 이야기를 꺼내 놓거나 그이의 사정을 듣는 일이 매번 그러하듯이. 같은 이유에서 엄지혜 작가의 첫 책 《태도의 말들》(유유, 2019)은 나의 오래된 대화 상대였다.

     

5년 만에 동 저자의 신작 《까다롭게 좋아하는 사람》(마음산책, 2024)이 출간됐다. 신뢰하는 저자가 궁금한 주제(사람)로 오랜만에 책을 냈으니 제대로 소개해 보고 싶은데, 거의 한 달간 곁에 두고 지냈음에도 엄두가 나지 않는다. 내가 가진 솜씨로는 이 책의 좋음과 앞으로 내게 미칠 영향을 정확히 설명할 자신이 없어서다. 그렇다고 한정된 지면 안에 ‘좋았다’라거나 ‘큰 도움이 되었다’라는 표현만 반복하면 책 소개에 실패함은 물론, 책을 만든 분들에게도 실례가 될 테니 난감하다. 이럴 땐 억지 부리지 말고 물러서야 마땅하겠지. 다행히 온라인을 통해 책 반응을 찾아보니 독자들의 관심과 만족도가 높아 보인다. 그러므로 자세한 설명은 다른 분들에게 맡기고, 나는 기억하고 싶은 것 한 가지만 말해보려고 한다.

     


우선 인상적인 대목을 함께 보자. 어느 대목을 옮겨와도 될 듯한데, 오늘은 ‘정확하게 칭찬하는 사람’이라는 제목의 꼭지를 가져왔다. 작사가 김이나와 나눈 인터뷰를 바탕으로 작성된 이 꼭지에서 저자는 “남들이 미처 보지 못하는 장점을 발견하는 눈,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칭찬하는 말들, 그리고 자신의 의견을 겸손하면서도 줏대 있게 밝히는 모습”(67쪽)에 반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나의 장점을 정확하게 발견해주는 한 사람만 있어도 우리는 살아갈 힘을 낼 수 있다.”(70쪽) 옮기고 보니 기시감이 든다. 이 책이 하는 일과도 다르지 않은 듯해서다. 책에는 저자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유형이 담겨 있다. 예로 든 사람들은 가상의 이상형이 아니라 저자가 직접(또는 작품을 통해) 만나온 사람들이다.

     

그들이 이 책을 읽고서 ‘살아감 힘’을 얻었는지 확인할 수 없지만, 자신의 장점은 발견할 수 있었으리라 짐작한다. 또 “하루 중 꽤 많은 시간을 타인의 행동을 파악하는 데 쏟는”(7~8쪽) 저자는 사람을 ‘그냥’ 좋아하지 않고 ‘까다롭게’ 좋아한다고 썼으니 그 까다로움을 통과한 대상에게 이 책은 연서로도 읽히리라. 그러면 일면식 없는 독자를 향해 저자가 남긴 것은 무엇인가. 직접 조언하지는 않는다. 어떤 사람이 되라는 충고도 없다. 다만 스스로 좋아하는 사람을 말한다. 그 사람을 닮고 싶은 마음을 담아서. 그렇게 조언과 충고 대신 선호와 다짐을 통해 ‘넌지시’ 짚어준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내가 되고 싶은 사람과 다르지 않다고. 역으로 인식해도 유용하리라. ‘내가 되고 싶은 좋은 사람’은 ‘지금 내 곁에 있음’으로.

     


마지막으로 목차를 보자. ‘불편한 관계를 받아들이는 사람’부터 ‘끝인상이 좋은 사람’까지. 기분 좋아지고 마음 편해지는 예순 가지 제목이 나열돼 있다. 목록을 내리며 이런 사람을 곁에 두고 싶다고 바라다가 스스로 되지 못함에 반성한다. 좋은 사람이 되는 건 왜 이렇게 어려운가. 비슷한 의문을 가진 분들을 향해 발문 일부를 옮겨 본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건 불가능하다. 나쁜 사람에게는 나쁜 사람이 되어야 할 때도 있으니까. 다만 내가 바라는 것은 손 내밀어주길 바라는 사람의 신호를 모른 체하지 않고 살아가는 삶, 고마운 마음을 애써 꽁꽁 싸매지 않고 자주 표현하며 살아가는 삶이다.”(205~206쪽) ‘함께’의 삶을 바란다면 이것만 기억해도 좋을 것 같다. 내 곁의 좋은 사람을 알아채기 위해서 또는 스스로 되어가기 위하여.


(2024. 02. 23.)

(@dltoqur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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