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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저 Dec 18. 2018

폭력과 직면하게 되는, 택시라는 공간

내 생각에,

대한민국 여성으로서 가장 일상적인 두려움에 맞닥뜨리는 순간은 택시에서 벌어진다.  


20대 중반의 한 여자 후배는 근무 때문에 새벽 4시 일산에서 광화문 회사로 가는 택시를 탔다. 기사가 신호도 무시하고 무섭게 질주하기에 “기사님, 신호 좀 지키고 가 주세요.” 라고 했다. 그랬더니 기사는 못마땅한 듯 혀를 차더니 그때부터 시속 50㎞로 자유로를 기어가다시피 운전했다. 너 한번 당해보란 듯이.


할 말은 하는 편인 내 친구는 택시기사가 자기한테 별 이유도 없이 욕을 하자 자기도 욕으로 대차게 받아쳤다고 했다. 그랬더니 기사가 길에 차를 멈추더니 “내려!”  소리 지르며 친구 팔을 잡아서 끌어내렸다. 그리고 사이드미러로 노려보더니 쌩 하고 가버렸단다.

한밤중 인적 드문 그곳에서 차가 출발하기까지 그 몇십 초 동안 느꼈던 공포감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친구는 다리가 풀려서 한참 뒤에야 그 자리를 겨우 벗어날 수 있었다.




업무상 급하게 이동해야 하거나 술자리가 잦은 편이라 나 역시 택시를 종종 탄다. 대부분은 별 문제가 없지만 열 중 한 번은 불쾌한 기억이 남는다.

한 번은 어느 날 오후 택시 승강장에 정차해 있는 택시를 탔다. 엉덩이를 뒷좌석에 붙이자마자 후회가 들었다. 오 마이 갓. 기사는 창문을 아주 조금 내리고 담배를 뻑뻑 피워대고 있었다. 나는 목적지를 말하면서 창문 내리는 버튼을 깊숙이 눌렀다. 아쉽다는 듯 담배를 아주 깊이 두어 번 더 빨고 꽁초를 밖으로 툭 던지고 기사는 택시를 거칠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 분이나 갔을까, 기사의 휴대전화 벨소리가 크게 울렸다. 승객이 없어 내내 공치고 있다는 동료 기사의 말이 스피커폰으로 택시 안을 울렸다.

“나도 이제 겨우 하나 했다, XX. 하루 종일 서 있었어. XX.”


   

내 귀를 틀어막고 싶었다. 말끝마다 욕이 붙는 이런 식의 전화는 가는 내내 이어졌다. 중간에 그냥 내릴까 말까를 내내 고민했다. 스마트폰으로 연예 기사를 아무리 읽어도 목소리가 워낙 쩌렁쩌렁해서 안 들으래야 안 들을 수 없었다.

괴로움에 몸부림치던 나에게 앞좌석 머리받침에 붙어있는 불친절 신고 스티커가 눈에 들어왔다. 정신 차리자. 휴대폰 동영상을 몰래 켜 기사가 통화하고 있는 모습을 찍기 시작했다. 눈치챌까 봐 조마조마하게 앞좌석 택시면허 게시물 쪽으로 휴대폰을 향하며 찍었다.    

떨렸다.

기자 하면서 몰카 찍을 일도 많았던 나인데 많이 떨렸다. 시끄럽게 통화를 하던 기사는 목적지에 멈추기 직전에서야 전화를 끊었다.  

“하아…”  멀어져 가는 택시를 보면서 뒷목이 뻐근해진 것을 느꼈다. 그 오 분 동안 몰래 찍었더니 온몸의 힘이 들어갔었나 보다. 그제야 동영상 녹화 중지 버튼을 눌렀다. 플레이. 이럴 수가. 자칭 몰카의 달인인 내가 이렇게 흔들리게 찍었을 줄이야. 통화 소리는 들렸지만 앞자리에 붙어있던 택시면허증과 차량번호 게시판이 잘 찍히지 않았다. 이 분한 마음을 어떡하지.     

     

택시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은 어릴 때부터 있었다. 중학교 2학년 소풍날 친구들과 택시를 탔다. 40대로 보이는 택시 기사는 가는 내내 우리가 재잘거리는 틈을 기어이 비집고 들어오더니 끝내 나에게 ‘아저씨랑 좋은 데 놀러 갈까?’라고 치근댔다. 연락처가 담긴 쪽지도 우격다짐으로 건넸다. 그 뒤로 나는 택시 운전석 옆자리에는 앉지 않는다.

택시의 악몽, 왜일까?


택시, 정말 왜 이럴까?

택시기사의 사정을 진지하게 들어본 적은 없지만, 일 때문에 알게 된 친구 S가 유일하게 택시기사를 해본 적이 있다. S는 26살에 돈을 벌어볼까 싶은 마음에 지방의 한 소도시에서 법인택시를 몰게 됐다고 한다. 그가 운전대를 잡은 택시 안에서는 별별 손님이 다 있었다. 젊은 티가 나선 지 만만한 게 그의 뒤통수였단다. 어느 날 뒷좌석에 앉은 승객이 발로 머리를 ‘깠다.’ 이유는 면허증 사진이 맘에 안 든다는 것. 어떤 승객은 대낮에 맨 정신으로 그의 목을 손날로 내리쳤다. 예능프로그램에서나 본 ‘넥 슬라이스’였다. 도착지에 다 와서 요금이 왜 이렇게 많이 나왔냐며 내리면서 동전을 차 시트와 바닥에 뿌리고 문을 쾅 닫는 사람도 있었다. 정신 나간 사람들이 세상에 이렇게나 많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결국 6개월도 채 안 돼 택시 모는 일을 그만뒀다.


“그런데, 내가 변하더라.”       

     

S는 그 짧은 기간에 한 가지가 또렷하게 변했다고 했다. 운전실력? 진상 대처법? 아니다. 그것은 승객들에게 불친절하게 된 자기 자신이었다.        

승객들은 택시를 막 잡아타서 앉을 때 운전석에 앉은 S를 보고 대부분 움찔하며 경계하는 기색을 보였다고 한다. 특히 여성 승객들은 젊은 남자와 좁고 폐쇄된 공간에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도 공포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는 거다.

“밤에?

“아니, 낮에도.”

“그럼 더 조심하고 친절하게 했어야 하는 거 아냐?”

     

그게 맘처럼 안 됐다고 했다. 불친절하게, 상스럽게 하면 할수록 자신에게 더 공손하게 대답하는 걸 알았기 때문이란다. 거칠게 대할수록 더 편해졌다. 남자 승객에게 당한 수모를 여자 승객이  타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화풀이를 하게 됐던 건 아닐까? 궁금하면 말 허리를 댕강 잘라내고 꼬치꼬치 캐묻는 나와 달리 내 앞에 앉아있는 그는 차근차근하면서도 느릿하게 대답하고 있었다. 어지간한 일에도 화 한번 내지 않고 차분한 평소 그의 모습을 보면 그 택시 안의 분위기란 게 정말이지 상상이 안 된다.     

     

특정 직업에 대한 편견을 갖는 것은 안 되고, 나도 기자란 직업에 대한 사회적 편견 때문에 상처를 받을 때도 있다. 하지만 택시처럼 직접적으로 여성들에게 공포감을 주는 공간들은 실제 문제의 심각성에 비해 방치돼 있다고 느낀다. 그들의 열악한 노동 환경과 최저임금도 못 건지는 처우는 바뀌어야 하지만 그런 상황에 처한 택시기사들이 그 분노를 여성이나 장애인 같은 이들에게 표출하게 되었을 때 문제는 발생한다.    


이것은 직업군의 문제가 아니라 성별의 문제다. 여성 택시기사가 남성 승객을 마주하게 됐을 때에도 마찬가지일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여성에게 대단히 위험한 나라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보면 그래도 안전한 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 점수가 후하다고 해서 특정 공간에서 불안감이 높다는 걸 방관해선 안 된다.  

이것은 권리를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생존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매거진은 연재가 끝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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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글이 포함된 에세이는 《오늘도 울컥하고 말았습니다》 란 제목으로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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