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저 Jan 01. 2019

우리 사회에 스며든 기자의 甲질

“너 ○○○라고 알아?”  


토요일 오후를 만끽하고 있는데 신도림 사는 친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씩씩대면서 다짜고짜 따져 묻는 말에 잠시 어안이 벙벙하다가 그게 누구냐고 되물었다. 그랬더니 일장 하소연이 시작됐다. 통화가 길어지겠다 싶어 나는 TV 볼륨을 줄이고 소파에 비스듬히 누웠다.     

통화의 요지는 이거였다. 자기가 살고 있던 신축 오피스텔 주인과 방금 한 판 벌였다는 거다. 오피스텔 창가 벽에 결로가 심해서 곰팡이가 잔뜩 생겼다. 언니는 집주인에게 전화해 뭐라도 좀 해달라고 요청했다. 집주인은 관리 못한 세입자 책임이니 오히려 물어내고 방을 빼라고 길길이 날뛰었단다. 말다툼이 점점 심해지자 집주인이 소리를 지르면서 갑자기 직업을 ‘커밍아웃’했다.

“내가 ○○방송사 기자예요. 이거 분쟁으로 가도 못 이겨요. 내가 아는 검사 판사만도 수두룩한데.”

     

언니는 너무 황당하면서도 판검사 소리에 움찔해서 전화를 끊자마자 나한테 연락을 해온 것이다. “내 동생도 기자라고 말하려다가 참았어.” 언니와 전화를 끊고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사진이 실린 인터뷰 기사도 있었다. 그의 얼굴을 봤다. 곰팡이 때문에 판검사 친구 이름을 팔아먹을 사람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내가 기자란 이름을 팔아먹지 않았다고 자신할 수는 없다.

어느 하루는 엄마가 너무 화가 나서 연락이 왔다. 등산의류 매장에서 옷을 하나 샀는데 집에 와서 가격표 스티커를 떼 보니까 엄마가 지불한 가격보다 더 쌌단다. 한 번은 동생이 고속도로를 운전하고 가는데 앞 화물차에서 떨어졌는지 낙하물이 동생 차에 떨어지면서 큰일 날 뻔한 적이 있었다. 이럴 때 우리 가족은 “이런 건 왜 기삿거리가 되지 않냐!”며 무슨 신문고라도 되는 듯 나한테 전화를 해댔다. 친구들도 의료 사고부터 중고나라 사기, 뺑소니 누명 쓴 일까지… 애매하게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뭣도 모르는 나에게 전화를 걸어서 물어봤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공통점이 있었다. 그저 기자라고 전화 한 통 그쪽에다가 해달라는 거다. 기자가 지켜보고 있다, 기사로 나갈 수도 있다,라고 말하는 것만으로 그쪽에서 충분히‘쫄’ 거란다. 꼼수 안 부리고 정석대로 처리할 거라는 것이다.

     

본격적으로 언론고시를 준비하며 내 머릿속엔 나름의 언론관이 생겼다. 힘이 센 사람이 어리고 약한 사람을 무차별적으로 마구 때리고 있다. 이때 한 명이 나타나 그 폭행을 낱낱이 바라보면서 기록으로 남긴다. 그러면 힘센 사람은 그 눈이 두려워 전처럼 때리지 못한다. 그게 언론의 힘이라고 생각했다.  

지인들이 나에게 바라는 것도 그 언론의 힘을 알기 때문이다. 기자가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공직자는 힘을 자기 맘대로 휘두를 순 없다. 이 사안을 지켜보고 있다는 걸, 여차하면 기사가 나온다는 걸 알게 된 이상 허투루 판단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전화 한 통 걸어달라는 주변의 마음을 이해한다. 실제로도 전화를 걸어서 기자 신분을 밝히고 저간의 과정을 물어본 적도 몇 번 있다. 누군가를 윽박지르는 곰팡내 나는 전화는 한 적은 없지만.   

영화〈내부자들〉을 본 친구들이 전화해서 묻는다.   

“그런 일이 진짜 있을 수 있는 거야?”

난 어물쩍 넘어간다.

“나 같은 일개 평기자가 어떻게 아냐?”


영화 〈내부자들〉

     

그렇게 말하면서도 나는 모히또에 가서 몰디브 한 잔 하는 정도의 터무니없는 얘기만은 아니라고 속으로만 생각한다. 팔목 썰어버리는 극악한 정도는 아니더라도 자잘하게 비겁한 일들은 여느 조직과 마찬가지로 언론사에서도 수시로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 번은 기자가 되고 싶다며 한 대학교 4학년생 인턴기자로 들어왔다. 내가 좀 한가해 보였는지 부장은 나를 인턴의 일대일 멘토를 전담하라고 지시했다. 인턴은 키가 크고 활달해 보이는 청년이었다. 커피 한 잔을 사주며 왜 기자가 하고 싶니 물었다. 난 심사위원이 아니니까 그냥 선배라고 부르고 편하게 대하라고 했다. 그랬더니 한숨 푹 쉬더니 분한 표정으로 바뀌며 말했다.

     

“선물 받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요.”

     

그건 마치 동네 공터에서 평화롭게 배드민턴을 치고 있는데 반대편에서 테니스공이 날아온 것 같은 난데없는 답변이었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그는 회사 인턴 기간에 서러운 일을 많이 겪었다고 했다. 그러던 와중에 명절 연휴가 끼었는데 그때 회사가 그에게 시킨 일이 명절 선물을 돌릴 명단을 한 무더기 종이로 주더니 일일이 자택 주소를 체크하는 전화를 돌리라고 했다는 거다. 그중에는 기자가 꽤 있었다고 했다. 그걸 보고 그는 차라리 기자가 되자 마음먹었단다.

“모멸감이란 게 있잖아요. 거기서 당한 착취며 멸시란 진짜…. 그래서 기업 때려잡는 기자가 돼서 꼭 다시 그 회사에 쳐들어가고 싶어요.”

     

2주 동안 나는 기자가 하는 일이 그렇게 기업 때려잡는 건 아니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날마다 취재현장에 데리고 다녔다. 간단한 기사를 직접 써보게 하고, 잘못 쓴 걸 고쳐 주기도 했다. 그는 말귀를 잘 알아듣고 곧잘 해내는 편이었다. 그러다 멘토링 기간이 끝나갈 즈음 갑자기 나에게 물었다.  

“선배, 그런데 사회의 불법을 비판하려면 기자 자신부터 결백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야 그렇지.”

“그런데 왜 선배는 자꾸 무단횡단을 하십니까?”

      

회사 앞 왕복 2차로 –신호등이 유명무실해진- 횡단보도를 막 건너 다녔던 걸 지적한 거다. 다시  한번 말문이 막혔다. 단정하게 해 줄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무단 횡단하는 나를 보면서 그것조차도 이중적인 기자의 모습이라고 느꼈을까?       

우리는 그렇게 헤어졌고, 그 인턴이 계속 기자의 꿈을 이어갔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기자를 하겠다는 대학생들을 보면 가끔 그 인턴이 생각난다. 그 뒤로 여러 명을 더 멘토링 했다. 그들은 여러 언론사에서 건실한 기자가 됐다. 하지만 그가 기자가 됐다는 얘기는 결국 들려오지 않았다. 여러모로 기자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을 나까지 심어준 것 같아 조금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    



《이 매거진은 연재가 끝났어요!
브런치 구독을 부탁드려요~  :D 》

해당 글이 포함된 에세이는 《오늘도 울컥하고 말았습니다》 란 제목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이전 01화 폭력과 직면하게 되는, 택시라는 공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