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부를 좋아하는 진짜 이유는

그래 내 기분에게 물어보자

by 진저

좋아하는 음식이나 식재료를 순서대로 줄 세워 얘기해 보라고 하면, 난 아무래도 두부를 첫 번째로 꼽고 싶다. 흰 두부는 그 자체로 고소하기도 하거니와 어느 생소한 요리에 풍덩 들어가 있더라도 ‘내가 아는 가장 안전한 맛’이어서 늘 편안한 마음으로 젓가락이 간다.

어릴 때 엄마가 김치찌개를 끓이면 늘 두부만 삭삭 골라서 건져먹었다. 그러면 엄마는 거의 줄지 않은 김치찌개 위에 두부 반 보를 곱게 썰어 다시 올린 다음 한소끔 끓여서 다음날 아침에 상에 올렸다. 김치찌개는 금세 새것으로 둔갑했다. 그럼 어린 편식쟁이는 다시 마음을 놓고 김치찌개의 두부를 먹어댔다.

회사에 다니면서 컵라면이 물릴 때는 집 근처에 꽤 괜찮은 두부요리점에 가서 4천 원짜리 손두부 한 모를 사다가 저녁밥 대신에 먹기도 했다. 어떤 날은 치즈 안주 대신에 두부 한 모를 접시에 담아서 와인 한 병을 혼자 홀짝홀짝 마시기도 했다. 역시 두부는 배신하지 않아, 새삼 감탄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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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내가 두부를 좋아하는 진짜 이유를 의외의 장소에서 알게 됐다.

치과에서다.


치과에 가기 싫다는 건 똑같은 마음이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 강도가 약해진다. 치과에 제때 안 가면 나중에 더 크게 고생할 걸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서른이 넘어서부터는 치통이 감지되면 재빨리 치과 예약을 잡는다. 나이 들수록 양치질을 하는 시간도 늘었다. 칫솔질에 정성도 더 들어간다. 양치를 이렇게 열심히 하다니, 격세지감이 들 정도다.

몇 년 전부터 아예 치과 한 곳을 정해놓고 가기 시작했다. 처음 갔을 때 치과 원장은 내 구강 사진을 심각하게 응시하더니 대뜸 물었다.


“뭐 씹을 때 아프지 않아요?”

“아뇨.”

“이상하네, 이 정도면 아플 텐데.”


턱 교합이 맞지 않아서 딱딱한 걸 씹을 때 통증이 분명 있을 거란다. 교정기를 당장 껴야 할 정도로 좋지 않은 상태라고 했다.


구멍 뚫린 녹색 천을 얼굴에 덮고 흉측하게 입을 벌린 채로 누워있으면서 나는 문득 깨달았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이 하나부터 열까지 부드러운 성질의 것뿐이란 걸 말이다. 게장처럼 딱딱한 것, 질겅질겅 씹어야 하는 조개류, 닭발같이 맵고 쫀득한 것들을 멀리했다. 그저 부드럽고 연한 것들만 찾았다. 이를테면 두부나 만두. 잘 불은 면 요리, 푹신한 빵 같은 류 말이다.

어쩌면 내가 이런 것들을 찾게 된 것은 딱딱한 걸 먹었을 때 턱관절이 아프다는 걸 무의식적으로 알았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래, 내가 잘 먹고, 오래오래 잘 살아보려고 무의식적으로 선택한 음식들이었던 거다!


그러고 보니, 내가 음식을 빨리 먹는 것도 아마 치아로 음식을 잘게 으깨는 걸 잘 하지 않으려고 몸이 무의식 중에 정해버린 습관인 것 같다. 야무지게 씹으면 턱이 아프니까. 대충 뭉갠 다음 목구멍으로 불성실하게 넘겨버리는 식이다. 음식을 하도 빨리 먹어서 신혼 어느 날엔 이런 일까지 있었다. 퇴근 후 저녁에 남편과 둘이 TV를 보며 고향만두 한 봉지를 쪄서 먹는데 다 먹고 나니 남편이 나를 보면서 물었다.


“네가 지금 만두 몇 개를 먹은 줄 알아?”

“글쎄, 왜?”

“만두 15개가 있었는데, 내가 4개를 먹을 동안… 넌 11개를 먹어치워 버렸어.”

“설마.”


남편은 그 작은 고향만두를 또 굳이 반씩 나누어 느긋하게 먹고 있었다. 반면 나는 TV에 몰입하면서 아무 생각 없이 젓가락질을 했던 것뿐이다. 내 치아가 아래위가 어긋나게 자리 잡아 있지 않았다면,

게눈 감추듯 만두를 먹어치워서 두고두고 놀림을 받는 흑역사는 없었을 텐데.


tofu-4081697__340.jpg 두부 tofu




한편으론 궁금하다.

저작운동을 할 때 아래 위 턱이 아프지 않도록 교정기를 몇 년간 착용하거나, 극단적으로 수술까지 감행한다고 하면 그 이후의 나는 두부 입맛을 졸업하고 더 고급화된 쪽으로 입맛이 바뀌게 될까? 철근을 씹어 먹고 전봇대로 이를 쑤시는 정도는 당연히 아니겠고, 해물탕 위에 수북하게 올라온 싱싱한 전복이나 낙지를 야무지게 먹고 그 감칠맛이 너무나도 좋아 환호성을 지르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지금의 나는 그저 미나리나 휘휘 건져먹고 반찬으로 나온 다 식어빠진 김치전과 마요네즈로 범벅이 된 마카로니에 더 집중하는, 형편없는 입맛의 소유자일 뿐이다.


그 뒤로도 치과는 꾸준히 다녔지만 결국 교정기는 끼지 않기로 했다. 따라서 입맛도 그 수준 그대로다. 바뀐 건 없었다. 다만, 내 입맛이 취향의 결과물이 아니라 몸의 결과물이라는 걸 알게 되고부터는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졌다. 어른스럽지 못한 입맛이 정당화가 되었달까.


남들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남들처럼 해 보려고 해도 도통 안 되는 것들이 있다. 그게 평범한 수준이라고들 하는데, 나에게는 유독 어려운 일들이 있다. 아니, 살면서 그런 일 투성이다. 몇 번은 시도해볼 가치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영 맞지 않는다면 어느 순간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것은 노력과는 완전히 별개 성질의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내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모든 게 이뤄지는 건 아니다. 턱관절이 '아작' 나지 않도록 보드랍고 무해한 두부를 좋아하는 쪽으로 내 몸이 이끄는 것처럼 말이다. 중요한 건, 지금 할 수 있는 선에서 자연스럽게 움직이면 된다. 교합이 되면 되는 대로, 아니면 아닌 대로 씹으면 된다. 무리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건강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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